" 진짜 죽었느냐?"

 

" 너희가 진짜 죽었느냐?"

 

주님.....

 

어떻게 돌아보든 제가 진짜 죽지 않았음을

여전히 펄떡 거리며 자아가 살아 꿈틀거림을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

 

절망이었습니다.

 

어찌 해야 하는가..

 

진짜 죽었느냐? 라는 말씀은 진짜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죽어야 한다는 말씀은 죽어야 산다는 말씀입니다.

 

주님....

제가 진짜로 죽기를 원합니다.

저를 도우소서.....

 

 

주님은 진짜 죽는 것에 대하여 조명하여 주셨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절망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어렵고

죽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알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죽는 자리로 인도하여 주실것을 의지하며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에덴을 창설하시고 손수 빚어 만드신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죄를 인하여 에덴의 행복은 끝이 나고

에덴 밖의 인류는 죄와 함께 잉태된 수많은 후손들로 인하여

그 수를 짐작할 수 없을 많큼 번성하였습니다.

 

죄악의 관영함에

하나님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인류를 심판하십니다.

 

단지 여덟명만을 남겨두시고

모든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셨습니다.

 

무척이나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고

인류는 빠르게 번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전히 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날 때부터 악한지라

세상은 다시 죄악이 관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중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그를 가나안으로 이끄셨습니다.

 

가나안은 에덴을 예표하며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작은 민족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인간이 어떻게 최종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드라마처럼 보여 주십니다.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에 세우신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십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줄것이며

그들이 이 가나안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미 가나안에 서 있는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브라함으로 시작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어느 순간 애굽으로 옮겨집니다.

왜?  죄악을 인함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동생인 요셉을 죽이고자 모의 하다가

장사꾼들에게 팔아 넘겼고

그들에 의하여 요셉이 끌려 간곳이 애굽입니다.

 

이스라엘의 애굽 역사는 이렇게 죄로 인하여 시작되었습니다.

 

급기야 극심한 흉년이 들어

야곱의 모든 족속은 애굽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애굽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장장 4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잊어 버렸고

애굽의 종살이를 하게 되었으며

우상숭배와 죄의 종노릇을 하며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드디어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를 통하여 보이신 열가지 재앙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으며 결국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을 향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녹녹치 않았습니다.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으로의 귀환은 에덴의 회복입니다.

에덴의 회복은 반드시 정결케 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죄로 인하여 시작된 애굽 생활 이였으며

하나님과 단절된 시간이였기 때문에

그만큼 정결케 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이끄시고

아브라함으로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에서 시작하여 애굽으로 그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이끄신 이유는

우리들에게 천국으로의 여정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날 때 부터

악하고 생각하는 것과 계획하는 것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하여는

반드시 정결케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광야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장정 60만명중에 몇명이 가나안에 들어 갔습니까..

 

단지 두명 뿐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뿐입니다.

 

함께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애굽을 모르는 다음세대들 이었습니다.

 

이렇듯

사람이 하나님의 정결케 하는 시간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죄가운데서 단번에 정결케 할 수있는

희생제물을 준비하십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죄인은 누구든지 정결케 하는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하면

죄 씻음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며

죄인이 치루어야 할 죄 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써 단번에 치루셨기 때문에

어떤 죄인이든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 씻음을 받은 자로서 거룩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성도의 거룩한 행실이라 말하고 있으며

좋은 열매라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행실과 좋은 열매 맺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주님이 오신다면 들림을 받을 것이며

육신이 죽는 다면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

 

이것을 어떻게 살 수 있는 가.....

 

답은....

 

진짜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거룩하게 살 수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라

.....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

 

큰 흑암과 두려움이 임하였더니

...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

연기가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창세기 15장 6절~17절)

 

아브라함이 비둘기 새끼를 쪼개지 않아서

후손이 애굽의 종살이를 하게 된것이 아닙니다.

 

쪼개지 않은 제물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계획가운데 정결케 하시는 과정과

그것을 통하여만 가나안에 갈 수있음을

미리 알려 주신 것입니다.

 

즉, 산 제물인 우리들이 완전히 쪼개어 져서

내 안의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고

깨끗게 하여야만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19절~24절)

 

 

육체의 일....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나를 쪼개어 육체의 일을 제거하는 것...

 

이것이 진짜 죽는 것입니다.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곳으로 인도하였느냐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민수기 20장 2절~12절)

 

 

이것은 므리바 물 이라 불리는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된 사건입니다.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어야 하는데 반석을 두번 친 것이

문제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왜 화가 나셨을까요...

 

그것은 모세가 자신의 감정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반역한 백성을 향한 상한 감정과 분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감정에 의한 행동이 나타났고,

하나님은 그것에 대하여 믿음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느낌, 경험, 생각,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들에 의한 삶을 사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거나 분노와 억울함과 시기와 질투와

혹은 열등감과 자괴감 등등등...

수많은 감정과 느낌을

마치 나 자신인 것 처럼 끌어안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다.....

 

믿음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낼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표인 것입니다.

 

진짜 죽는 다는 것은

나를 완전히 쪼개어 더럽고 악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며

내 감정,기분,느낌,경험,지식들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돌감람나무의 가지를 꺾으면 그 가지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지를 참감람나무에 접 붙히면 그 가지는 산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야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2장 20절)

 

우리도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 바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 따릅니다.

몸에서 진액이 다 빠져나갈 때 까지 고통이 따릅니다.

그리고 그 고통 후에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이 따릅니다.

 

그 고통이 두려워 죽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야 삽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셔야 내가 삽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죽으면 고통이 끝난다는 사실을????

 

진짜 죽으면 고통이 없습니다.

 

우리도 진짜 죽으면

내 죄로 인한,

내 못된 자아로 인한 고통이 없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니

진리이신 주님이 우리를 고통가운데서 자유케 하시며

그것이 참 평안인 것입니다.

 

당신은 진짜 죽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