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안하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돈걱정, 자식걱정, 대인관계 걱정,
건강과 노후에 대한 걱정
그리고 이젠 자연 재해에 대한 걱정까지
하나 더 추가되고 있다.
염려란 '목을 조르다', '숨이 막히다', '분열되다' 라는 뜻처럼
가장 은밀하게 사람을 침략해 오는 인생의 복병으로
우리의 삶을 질적으로 질식시키고 있는 존재다.
처음 사람들은 옷도 안 입고
염려도 할 수 없도록 설계 되었는데,
사람들이 하늘에 불순종 하고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면서
모든 질서들이 바뀌고 변질되어버린 것이다.
식물이나 짐승들은 걱정을 모르고 살아가는데,
인간만은 사는 날에 비례하여 염려가 가장 익숙한
친구가 되면서 모든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병의 70%가 심인성에서 오듯이,
염려는 몸의 저항력을 떨어뜨리고
모든 질병을 불러들인다.
심리적으로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곧 시야를 좁게 만들어 소심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염려는 과거도 나쁜 추억으로 만들고
현재도 생각의 노예가 되어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들며
미래란 기대할 것이 없는 졸장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염려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 평생 행복과 불행한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운명의 여신이건만 사람들은 오늘도 습관적으로
걱정과 염려 속에서
기쁨과 웃음이 있는 행복한 인생을 포기하고 있다.
인생은 선택일 뿐이다.
걱정과 두려움 속에 인생을 소진할 것인지
비전을 갖고 개척할 것인지를 날마다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염려에 예외인 사람은 없다.
다만 사람마다 나름대로 비법을 갖고
극복하고 있을 뿐이다.
첫째로 염려 대신에 일을 하라.
톱밥에다 톱질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과거와 같이 이미 잘려져 나간 부분을 붙잡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과거에 묶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현재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염려는 옛 연인처럼 자동으로 찾아온다.
설령 지금 무척이나 걱정되는 일이 있다 해도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행동한다면
염려는 자연히 사라지는 법인데,
환경을 탓하고 핑계만 대는 염려중독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지레짐작 할 뿐
일 할 생각은 안 하고
염려의 쓴 열매를 따먹으면서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쓴웃음만 짓고 있다.
반면에 수고 자체가 복인줄 알고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염려가 사라지고 웃음이 찾아온다.
행복한 사람은 이렇듯 염려 대신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만약에 일하면서도 아니
아예 일도 안 하면서 핑계거리나 찾으며
쓸데없는 잡념에 빠져있다면,
염려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이요
본인이 게으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 내일에 대한 아무 꿈도 없다는 것을
세상에 공개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염려란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하는
주범이라는 것을 알고
염려가 들어올 틈이 없도록
오늘도 땀이 나도록 일하고 운동하고 봉사할 때
염려는 사라지고
행복은 미소지으며 들어오는 법이다.
둘째는 내일보다는 오늘을 택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매일 아침마다 하루 분량의 '만나'를 받았다.
남이 모르게 숨겨 놓아도 그 하루가
지나면 그냥 썩어버리는 '만나'였다.
우리 인생은
오늘 하루 이상 염려할 능력도
또 대처할 능력도 없는 존재이기에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내일 일을 미리 가불해서
염려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현재 우리의 염려가 미래에 가서보면
90% 이상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람들조차도 생을 마감할 때에 가서야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후회하는지 모른다.
비가 오기 전까지는 우산을 펴지 말라는 격언처럼
미리 염려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또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므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는 것이 다음 이유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하루라는 분량이 있다.
행복의 약은 하루에 한 알만 복용해야 한다.
내일 것까지 미리 먹으면 독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과거에 묶여있거나
또 미래를 너무 강조하다보니
오늘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많기에
오늘 이 순간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오직 이 순간뿐이다.
내일과 어제는 우리의 특권도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영역도 아니다.
셋째는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라.
사람은 무슨 일이 잘 되어도 걱정이요
안 되어도 걱정을 한다.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하나님은 모든 염려를 나에게 맡기라고 하신다.
맡긴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가지고 있지 말고 떨쳐 버리고,
내 마음에서 없어지게 하라는 의미다.
그것은 자식이 염려하지 않아도
부모가 대신하여 문제를 해결하듯이
조물주가 대신 권고하기에 맡기라는 것이다.
염려는 환상일 뿐이다.
기상청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 도시에 7개 불럭을 100m나 짙게 깔려 있는 안개라도
압력기로 측정해보면 그 거대한 안개는
한 잔의 물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염려는 실상 아무 일도 아니지만
확장하면 이렇게 큰 문제가 야기되기에
더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무시해버리라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분토와 같아서
아무리 고상한 사람일지라도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근심과 걱정이요
자신의 영광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줄 모르기에
염려가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