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당에 다니는 분들에게 

'그리스도인입니까?' 라며 정면으로 물어보면... 

자신은 교회당을 정하고, 주일성수 잘하기에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본질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그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죄에 있으려 하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거룩을 소망하리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9절) 

 

위 말씀을 기준해보니... 그래도 나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것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이고, 

내 안의 성령님(말씀)으로 인해, 그분의 향기가 흐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3절) 

 

이런 말씀을 증거해도 대부분 기독교인은 
"나는 교회에 잘 다니거든요, 그러니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증거가.. 열심히 주여주여 하며 봉사, 전도, 주일성수일까요?. 

물론, 구원받을 만한 사람도 이런 것은 대부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를 근거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확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과 구원의 증거라면 대부분 교인들이 구원받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이들 중...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 매우 적다며, 냉정히 경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표적이나 증거가 무엇인지 '죄의 측면'에서 

요한1서에 기록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요한1서 3장 9절) 

위 말씀은... 거듭나면 

죄성이 사라지기에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피조된 사람들 중에... 그런 이들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위 말씀의 의미는... 거듭나 구원받을 만한 믿음의 사람도... 

100% 죄를 안 짓는다 할 수 없지만, 의도적이지는 않다는 말씀입니다. 

즉, 새 생명의 사람은... 죄에 대하여 매일 죽으려고 하기 때문에 

죄를 품고 다니며 내 죄성을 흘리는 것에 몰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거듭난 이들도 거듭나기 전에는, 자신의 행동이 죄인지 아닌지 

숙고해보거나, 악한 일에 깊이 탄식함 없이 살았던 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자기 자신과 죄 사이에는 치열한 다툼이 거의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둘은 서로 타협하는 동료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를 만나 거듭난 후에는... 

죄를 미워하고, 죄로부터 달아나며, 죄에 대항해 싸우기도 하고, 

죄가 불러올 결과를 숙고하며, 자기와 관련해 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며 죄로 인해 실족하면 깊은 탄식을 마다하지 않고, 

모든 죄로부터 구출되기를 애통한 맘으로 간구하게 됩니다. 

죄는 더 이상 그에게 짜릿함의 대상이 아니며, 

예전처럼 죄와 타협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는 그에게 있어서 쳐다보기도 싫은, 혐오의 대상일 것입니다. 

허나, 사탄마귀가 이 땅에서 사람과 공존하는 한 

수류탄 같은 죄성이 자신 속에 숨어있는 것까지는 막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속에 죄성이 없다고 떳떳하게 자신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진리가 그 안에 없는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솔직해야 합니다. 

사탄마귀가 이 땅에 공존하는 한, 죄성은 늘 도사립니다. 

죄가 없는 청정한 환경은 사탄마귀가 없는 천국만이 유일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는 한, 죄의 유혹은 늘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만나 거듭난 진짜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죄와 피 흘려 싸우며 

죄에 대해 죽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삽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죄성에 대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장 31절)

 

위 말씀은 치열한 영적 전쟁의 은유적 표현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죽어야 주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런 모습이 바로 십자가를 만난 성도들의 본질적 모습입니다. 

바울 사도에게 죄성이 전혀 없다면 어찌 날마다 죄와 싸우겠습니까... 

바울처럼 구원받을 만한 분들은.. 진심 죄를 미워하며 배척하게 됩니다. 

허나, 때로는 불순한 생각이 솟아나고, 죄성들이 자신 안에 도사리다가 

가끔 불순함이 의도치 않게 연약한 면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여, 야고보서 기자는 이렇게 전합니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성령께서 죄성을) 제어하는 것이라 (야고보서 3장 2~3절)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은 이렇게 죄에 대해 연약한 면이 있기 때문에 

거듭난 성도 안에 계신 성령께서 죄에 대한 양심을 찔러 죄를 회개시켜 

돌아서게 하는 데, 이게 바로 죄를 이기게 하는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거듭난 자 안에 거하는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회개시키는 주님의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5장 20~21절) 

 

이처럼 죄가 왕 노릇 하며 머무는 곳에는 

내 죄성을 은혜(회개시키는 주님의 은혜)로 제압하는 것입니다. 

하여, 죄성으로 인한 자신의 연약한 부분에 대해 바울 사도처럼 날마다 

죄성을 탄식하며 죽으려는 영성... 이것이 주님의 큰 은혜입니다. 

또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증거입니다. 

 

지금 내 심령 상태는 어떻습니까...  

죄는 어쩔 수 없기에 은혜가 필요하다며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 자는 

주님 은혜로 산다고는 하지만, 실은 주님의 은혜가 머물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죽을 마음도 없이, 사람은 본래 죄성을 갖고 태어났으니 

죄를 가볍게 혹은 어쩔 수 없다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안에 성령이 없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거듭나 주님 은혜가 머무는 성도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바울 사도가 날마다 죽노라 하며 애통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끊임없이...  

무엇이 참믿음이고, 무엇 거듭남이며, 무엇이 구원의 증거인지... 

그 열매에 대해, 계속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되새겨야 합니다. 

이는... 믿음을 오해하여 잘못된 믿음 때문에 멸망 당할까 봐 

항상 뜨거운 경고로 일깨워주는 주님의 배려이오니, 

날마다 죽는다는 말씀을 가벼이 받지 말고 깊이 새겨야 살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구원받을 유일한 기회는... 지금 숨 쉴 때뿐입니다. 

부디~ 지금 돌이키십시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