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에 의하여 창조된 사람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죄성이 침투하여 불완전하게 변했습니다.
하여, 모든 사람은 육의 장막을 입고 있는 한, 완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부족하여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변화받은 사람인들 완벽하겠습니까?
거듭나도 자칫 방심하면 타락하는 게 사람의 불완전한 모습입니다.
물론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하시므로 끊임없이 돌이키도록
심장을 찌르며 천국을 향해 온전히 가도록 방향을 잡아줍니다.
그것이 은혜의 본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의지가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지 않고
타락하게 된다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면서 성경은 무섭게 경고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본질적 단면입니다.
한번 구원(거듭나면)은 영원히 구원을 잃지 않고 무조건 천국 간다고요?
성경은 절대 그들의 교리처럼 증거하지 않습니다.
(거듭나서)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6장 4-6절)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
그러므로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이라도...
이 땅에서 호흡하는 동안에는 죄의 유발자인 마귀도 같이 존재하므로,
타락하지 않도록, 날 잡아달라고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계속 해야 합니다.
이처럼 은혜는 이런 상황에서 진짜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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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는 뭔가 잘못하면
부모에게 혼날까 봐, 눈치 보면서 자기 잘못에 대한 고백을 주저하며,
깊숙히 찔리는 양심 때문에, 부모와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아이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눈치챕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 잘못을 솔직히 고백할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왜 용서해달라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릴까요...
진정한 고백 없이 그냥 용서해준다면, 아이의 미래는 망할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바람대로 고백하지 않으면, 애보다 부모가 더 근심합니다.
하지만...
부모 바람대로 고백하면 부모는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사실 부모는 이미 용서할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부모는 기쁜나머지 아이를 안아주며, 본인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또한 특별 용돈을 주기도 하고, 아이가 원하는 걸 사주기도 합니다.
탕자를 기다린 주님의 마음과 똑같습니다. (눅15: 20~24)
믿기만 하면(?) 뭘 해도 구원이라며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양심에 화인 맞은 교인들을 제외하고,
보편적으로 죄성을 끊지 못한 채 살아가는 거듭나지 않은 다수 교인들도
기본적인 양심은 있기에 흔한 교회 십자가를 보는 것조차 괴로워 합니다.
본능적으로 '이건 아닌데' 하며 느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주님을 뵙기 괴로워 숨은 것과 같은
그런 똑같은 심리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용서할 준비가 이미 다 된 주님께서는...
빨리 그분 앞에 나아와서 애통히 죄를 고백하며 용서 구함을 원하십니다.
진심으로 죄 사함을 구할 때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이 땅에서는 의인이 없습니다. (롬3: 10)
감히 주님 앞에 떳떳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그의 안에서 육신의 악한 법과 성령의 법이 대립한다며
참으로 괴로운 마음을 애통하게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죄인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는
악한 내 죄성을 해결해줄 분은, 우리 주님 한 분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구원관의 문제도 있지만, 주님과의 관계가 원래대로 회복하는 문제...
그 회복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지금 내 죄성이 부끄러워 아담처럼 주님을 뵙기 민망합니까?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언제까지 그렇게만 서성일 것입니까...
그냥 심장을 쥐어짜는 심정으로 무조건 주님 앞에 굴복하십시오.
그리고 내 악한 죄성을 세리처럼 애통히 고백하십시오.
죄의 무게를 따지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서십시오.
주님은 의인을 부르려는 게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음을 기억하십시오.
바로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서 말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2장 17절)
주님 앞에 서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약 같은 끈적한 죄의 마성을 단호하게 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단호히 돌아서면, 세상을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아가 고침 받는 것이 너무 두렵게 다가옵니다.
다음의 내용과 같이 내 육의 속성들을 부인하길 거부하는 이도 있습니다.
분을 못 이겨 형제에 대하여 증오하는 마음을 먹고 싶습니까?
정의와 거룩한 분노로 위장하여...
형제를 도마에 올려놓고 판단 정죄하며 난도질하고 싶습니까?
뭔가 기도했는데... 왜 내 뜻대로 안 들어주냐면서 주님을 원망했습니까?
내 유익을 위해 내 이웃 형제를 희생시키고 싶습니까?
인생의 낙을 위해 물질과 향락을 따라다니며 사행심에 젖고 싶습니까?
죄인 줄 알지만, 한번 뿐인 인생의 말초적 쾌락을 한껏 누리고 싶습니까?
외적 표현은 안 했으나 속으로는 형제를 라가(심한 욕)라 하고 싶습니까?
사실... 이것은 모두 우리에게 감춰진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오...
탕자도 그런 모습으로 살다가 결국 결단하고 주님께 돌아갔습니다.
'나 같은 위선자가 어찌 주님 앞에 서겠는가' 이 생각은 아예 접으십시오.
그 생각 자체가 그럴듯한 명분으로 위장한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주님께서는 악한 우리 죄인들을 계속 부르십니다.
불효자식이라도 온전하게 돌아오길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오히려 멀쩡한 자식보다 부족한 자식에게 더 마음이 쓰여지는 법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길 잃은 양을 더 신경 쓰며 찾아 나서시듯...
첫째 아들보다 탕자를 더 애틋하게 마음 쓰시듯...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악한 죄인이라 욕하는)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21장 31절)
화인 맞은 성령 훼방죄를 제외하고
사람이 판단하기에 큰 죄든, 작은 죄든 있는 그대로 나오십시오.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원초적 모습임을 주님이 더 잘 아십니다.
과거에 흉악한 죄인이면 어떻습니까, 육적인 삶을 살았으면 어떻습니까...
옛것을 벗고 새롭게 변화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꾸미면서 다가오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가리지 말고 발가벗은 그 모습 그대로 나오는 것을 원하십니다.
죄로 인하여 찔리는 마음에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주님께 의탁하십시오.
장애 때문에 성경 말씀을 많이 몰라도 괜찮으니 있는 그대로 나오십시오.
그저, 주님 앞에 나와 솔직한 마음으로 죄성을 고하십시오.
뜨거운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속사람이 진심이라면, 그분은 조건 없이 다 용서하십니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 왜 그런 죄를 지었냐며 따지지도 않습니다.
솔직함과 애통함... 그거 하나면 충분해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에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뒤끝 있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는 것은,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으로 변화된 내 모습입니다.
우리는 옷을 빨면서, 어느 부분에 때가 묻었었는지 기억하려 하지 않고,
옷이 잘 세탁되었는지만 관심 가듯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 옛 모습을 호흡이 끊길 때까지 고집하려 들지 마십시오.
그런 마음을 먹는다면 가장 미련한 자이며 주님을 가장 힘들게 하십니다.
돌이킴 없는 죄사함은, 성경 말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공의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호흡할 동안에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언제든 돌아와 내 죄를 고백하길 참고 기다리지만...
호흡이 멈추는 그날에는 냉정한 공의의 하나님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후는 아무리 자비를 구해도 소용없습니다.
모든 기회의 상황은 인생이 로그아웃되는 순간 다 끝나버립니다.
육의 장막을 입고 지금 호흡하고 있을 때만이 구원받을 은혜의 날이오니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미루려 하지 말고, 빨리 돌이키십시오.
시간은 내 계획대로 조절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계속해서... 죄인인 우리을 부르고 계십니다.
"너희들을 회복시켜 천국 백성으로 만들어 영원히 너희와 동행하기 위해
지금도 인내하며 애타게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어서 회개하고 돌아오라"
주님의 이 모습이 우리에 대한 주님의 실상적 마음입니다.
부디 순종하십시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장 7절)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욥기 9장 27절)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요엘 2장 12절)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천국)에 살리라"
(예레미아 25장 5절)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죄의)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에스겔 33장 11절)
주님의 이 간절한 외침을 절대 외면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