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서가 따라야 하는 가장 탁월한 본보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거룩한 영혼의 정서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같은 마음"을 품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합니다.(빌 2:5)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은혜의 주된 부분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묵상해야 하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어떤 이도 영적으로 자신을 합당하게 쓰는 경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고후 3:18) 우리의 이지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룩한 정서의 여러 가지의 사례들을 주목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경우에 우리의 이지가 그 거룩한 사례들과 같이 되도록 복되게 정서를 행사하여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은 그러한 "거룩한 사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에 대하여 표현된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보십시오.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정서 속에 "하나님의 법"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정서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언제나 완전한 질서 속에 놀랍도록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자기 부인, 세상에 대한 경멸, 십자가를 기꺼이 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셨던 그 심령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간다면, 그 본은 우리를 합당하게 변하도록 하는 효력을 낼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지를 자문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이 범사에 그리스도를 본으로 삼기를 즐거워한다면, 이는 여러분의 정서가 영적으로 새롭게 되어 "하늘에 있는 것들에 동화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정서의 영적인 진보를 위한 최상의 법칙은 역시 성경입니다. 이는 두 가지 방면에서 그러합니다. 즉 우리 정서의 "내면적인 활동"의 측면에서나, 그 정서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외적인 방편"의 측면에서 그러합니다.
내면적 정서의 활동을 위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보편적인 원칙"을 제공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을 다 함축하는 원칙을 제공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원칙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최상의 완전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서가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경우에서 우리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하나님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정도로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미 아는 바대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의 상태는 "절대적인 완전한 상태에 이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은 분명히 우리에게 제시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여러 기능들은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범사가 "그 목표"를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서 말한 원칙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당위성입니다. 범사에 하나님께 부단한 애착을 보이고,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더 우선하고, 하나님을 우리의 최상의 선으로 즐거워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시련의 때"에 우리를 견고하게 할 것입니다. "시련(연단, 환난)의 때"는 세상의 일들이 우리의 정서 속에서 주도적인 관심을 끄는 때입니다.
그때 우리가 견고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면, 우리는 모든 길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감당하는 모든 의무들은 생명력을 잃을 것이며, 하나님을 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르게 기억하는 일이 없이는,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망각하여 건성으로 여러 의무들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그러한 경우라면, 우리의 마음은 모든 무익한 신앙고백의 샘 근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정서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외양적인 방편들과 의무들"의 원칙 역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영적 정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바르게 흘러갈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요구하고 있는 "은혜의 방편"으로 우리의 정서를 활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원칙이 무시된다면, 우리의 정서는 통제되지 못할 정도로 "불규칙한 상태"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세상에 가득한 미신들을 보십시오. 그것들은 성경이 제시하는 말씀의 원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정서들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정서가 하늘에 속한 것들을 향하여 바르게 동화되고 있다면, 그 정서는 세 가지 상태를 견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첫째, 정서에 제시된 영적인 것들에 정서가 습관적으로 맞추어갑니다. 즉 하늘에 속한 영적인 것들이 제시되는 순간, 마음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좋은 음식 냄새에 금방 침이 고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둘째, 영적인 것들을 부단하게 접하는 정서는 그 영적인 것들 속에서 감격하고 즐겁고 유쾌하게 하는 풍미를 발견합니다. 육신적인 정서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은 배가 부른 자와 같이 영적인 달콤함을 거부하지만, 바른 영적 정서는 항상 그러한 것들을 소원합니다. 이들은 영적인 것들 속에 있는 맛과 풍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것들 속에 있는 "주님의 자비하심의 풍미"가 어떠한 것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벧전 2:3) 영적으로 새로워진 정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선하심이 풍기는 향기로운 내음과 하나님과의 교제와 교통 속에서 느끼는 달콤함을 체험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달콤함은 때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기쁨과 영광의 충만함이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환난이나 억압의 시련까지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잠 27:7)
셋째, 그래서 정서가 모든 은혜의 저장소와 같은 역할을 하여 "영혼의 보고(寶庫)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은혜들입니다. 그 은혜 안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정서는 바로 "그러한 은혜의 뿌리(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은혜는 "사람의 정서를 가장 주도적인 거처로 삼고" 안전하게 보전 되어 "언제라도 활동을 개시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충만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는 정서는 때에 맞추어 은혜를 방출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른 도리를 행할 길"을 바르게 분별하고 판별할 수 있는 은혜들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정서가 바로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것들과 부합된 상태입니다. 아니, 영적으로 새로워진 정서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하늘에 속한 정서로 동화되어 갈 것입니다.
영적으로 새롭게 된 정서는 만유(萬有)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그 중심에 둡니다.(골 3:10-11) 그리스도는 생명과 빛의 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요일 4:8-9)
영적으로 새롭게 된 정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새롭게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인격의 신비와 중보의 영광과 본질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그리스도를 허망하게 형상화하고 조각들과 그림들을 즐거워하려고 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과 위대함과 능력에 대한 거짓된 개념들에 감동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만들어낸 예배의 형식에 즐거움으로 참여합니다 스스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새롭게 되지 못한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은혜의 신비에 대한 은근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생명)을 받아들이려면, 정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자기 자신(주권)"을 몰아내야 (부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그 자체로 사랑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태양이 빛으로 공기를 정화하고 따뜻하게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편안히 숨을 쉬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영적인 것들에 비취는 ‘의의 태양’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지 않는 한, 영적인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영적으로 새롭게 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그분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새롭게 된 정서의 성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