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믿음은 내 열심이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훨씬 중요하다.
저는 이런 말보다 믿음은 올바른 방향이 중요하다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믿음의 올바른 방향은 아무리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가 그대로 가면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명제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만, 온전한 방향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우리가 가야할 정확한 좌표가 정해집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목사님과 믿음에 대해 토론한 적 있었습니다.
믿음은 뭔가 열심히 하려는 게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목사님이 말합니다.
당연한 말이기에 저는 흔쾌히 "맞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렇다면 그 방향은 어디이고,
어떻게 도달하는지 가르침을 달라고 공손히 여쭈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신학교에서 배운 교리를, 전혀 막힘없이 브리핑합니다.
브리핑의 핵심은 자신이 아는 교리대로만 따라오면 된다는 겁니다.
제 입장에서는... 자기 부인, 회개, 거듭남 등
예수님이 피를 토하듯 전하신 말씀은 언제 하나 기다렸지만
끝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고, 가만히 있으면 은혜로 다 된다고 합니다.
오직 믿음과 보혈 피 은혜를 강조하는 데만 모든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렇다면 언제 자기 부인과 회개가 있어야 합니까 하니 그건 행위일 뿐,
주님 영접식으로 이미 모든 게 다 해결되었다고만 합니다.
그게 믿음이고 거듭남의 증거라 합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기름진 고센땅을 떠날 마음도 없고,
홍해도 건널 마음도 없으며, 더더욱 광야를 통과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편안한 이동 수단(교리)만을 타고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즉, 구원은 매우 원하지만... 십자가(자기 부인, 회개) 통과는
원치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토하듯 전한 자기 부인, 회개, 거듭남의 십자가 말씀을
주님 영접식 하나로 간단하게 퉁치려 하니, 이게 이 시대의 불행입니다.
저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참으로 불편했지만, 내색은 않고
공손히 인사 하고 나왔습니다.
여러분~ 그 영접식 교리 하나만 굳게 믿고
그것을 참된 방향으로 여기며 주님이 인도하고 있다 착각한다면,
그리 가르치는 선생이나, 배우는 교인들이나 모두 멸망으로 들어갑니다.
영접식의 질문과 답은... 실상적 내 영으로 주님을 영접한 게 아니라,
지식적 관념적 동의을 이끌어내는 행사에 불과합니다.
지식적 동의를 영접(성령으로 거듭남)으로 굳게 인식한다면
그 사람은 더는 거듭나기 위해 주님을 구하지 않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그래서 영접식 행사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지금 대략 500~700만 명 정도 되는데
"나는 주님을 내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했다 해서 진짜 영접되겠습니까?
이게 거듭남과 믿음의 증거라면 어느 교인이 구원받지 못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천국 문 통과가
낙타의 바늘귀 통과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막10: 25)
그 말씀이 농담이었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맞는 것이고,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교인 귀를 즐겁게 하는 거짓 설교는 교인에게 당장 위로는 될 수 있으나
결국 멸망으로 인도하기에, 교인들이 불편하여도 성경 말씀대로
진실만을 가르쳐야 합니다.
방향이 무엇입니까... 올바른 믿음의 길입니다.
먼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그곳 사정에 전무하므로, 반드시
그곳 사정에 매우 밝은 가이드가 동행해야만 온전한 여행이 가능합니다.
가이드가 없다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그러므로... 여행 전에 당연히 가이드를 먼저 초청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노라 하는 우리가 할 것은...
믿음의 방향이 잡히도록.. 가이드인 주님(성령)을 먼저 초청해야 합니다.
어떻게 초청합니까...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말씀을 전해봅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아 29장 13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중략.................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9~13절)
위 말씀을 면밀히 살펴보십시오.
가만히 있으면 은혜로 저절로 된다는 말씀으로 보이십니까...
사람의 입장에서 수동형의 말씀이 아니라, 분명히 능동형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구하고 부르고 찾으면 가겠다는 말씀입니다.
선택권을 우리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수동형이면 굳이 주님께 두드리고 찾으며 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은혜로 알아서 찾아오실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구하고 찾으라는 위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바로 위 말씀이 우리가 주님을 가이드로 초청하는 실상적인 방법입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반드시 먼저 내가 죽어지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로 얼룩진 나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을 구하여 영접하는 진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어찌 주님이 오시겠습니까...
사람이 사는 집에서도... 악취 나는 쓰레기를 비울 생각도 없이,
손님을 초청하는 예는 없습니다.
결국.. 자기 부인과 회개와 거듭남과 주님 영접의 말은 같은 표현입니다.
자신의 죄를 애통히 여겨 죽고자 자기 부인의 마음을 먹었기에
주님께 회개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죄성에 이끌려왔지만, 말씀에 비추워보니 내 죄성이 너무 징그럽고
애통하여 이제는 육을 대적(죄성을 거부하며 끌리지 않으려고 함)하며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여 그분을 의지하며 스며들고자...
주님께 간청하는 내 심장의 호소입니다.
그것이 자기 부인의 십자가이고, 주님을 구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그 중심을 보고 성령을 주셔서, 진짜 영접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버릇처럼 살아왔던 삶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면서
그저 입술로만 '나는 주님을 영접합니다'하는 게 성경적으로 맞습니까?
주님을 영접하려면 나를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어찌 성령이 임하겠습니까...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17절)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부인하지 않으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부인)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장 35절)
술 취하지 말라(육에서 흐르는 죄성의 요구대로 살려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새 생명을 입으라)
(에베소서 5장 18절)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13절)
구하여 성령을 받았다면, 이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 안에 그리스도(성령)가 사시며
내 주인이 되어 나를 통치하는 영적 상태가 됩니다.
내가 그리스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성령)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위 말씀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
위 말씀 같은 바울 사도의 고백이 내 고백이 되는 게 아닙니다.
내 머리에 성경 지식과 교리와 정보만 가득한 걸 믿음이라고 하지 않고,
종교적 신념, 관념, 혹은 직적 동의라고 합니다.
내 속사람이 위의 말씀 상태(거듭남)로 실상 변화되어야만
비로소 주님께서 내 방향을 이끌어줄 믿음의 가이드로 초청된 것입니다.
즉, 나를 부인(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남...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이후부터는 방향을 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오신 성령님께서 온전한 믿음의 방향으로 잡아주십니다.
마치, 광야에서 밤에는 불기둥으로 대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듯,
거듭난 사람의 영과 먹고 마시며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인도하심이 바로 '은혜'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장 13절)
이렇게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때...
어린아이 같은 순전한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마치, 여행객들이 가이드의 인도에 절대 의지하면서 따라가듯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를 죽여달라는 간청...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3년 반 동안
너희들은 먼저 회개하고 거듭나야 한다고 외치며 가르치신 이유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바로 오늘날 모든 교단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귀를 즐겁게 하려고 만든
사람의 교리를 방향으로 의지하며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 방향은 내가 잡으려 할 필요도 없고... 절대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교리 이론만 머릿속에 가득 채운다 해서 방향이 잡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신념에 빠진 거짓 방향입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가복음 7장 7절)
때(말세)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거짓 복음을 전하는 선생들)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거짓 믿음과 은혜를 통해 구원이 쉬운 것처럼 가르침)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장 3-4절)
온전한 방향은 이미 성경 말씀에 모두 기록되었습니다.
오직, 마음을 찢어 진정으로 자길 부인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즉, 성령으로 거듭남=영접=방향... 이것이 온전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거룩의 길을 갑니다. (히12: 14)
거룩함(성령의 열매)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분명히 기록되었는데
거룩과는 거리가 먼 육신의 모습을 버릇처럼 쏟아내는 분들이
믿음과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며 정신승리에 몰입하면 안 됩니다.
그런 근거가 어디에 나온 믿음이고 은혜입니까...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좋게 하는 허탄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천국 문을 찾는 자가 매우 적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모르는 이방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성경을 접하지도 않는데 어찌 알겠습니까...
주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에게 전한 말씀이고, 그 말씀을 들은 자들 중
육의 죄성은 달콤하니 끊을 마음 없고, 십자가 길은 혐착하니 거부하다
호흡이 멈추는 그날까지 머뭇거리기에 천국 문을 찾으려는 자가
매우 적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4절)
위 말씀은...
실제 거듭난 진짜 믿음의 사람이 매우 적다는 뜻입니다.
주일 지키고, 헌금 잘 내며, 충성봉사 하는 게 믿음의 증거가 아닙니다.
반드시 회개하고 거듭나, 성령의 열매가 삶에 흐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물론 사람은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한 마귀의 끝없는 방해로
기록된 주님의 말씀에 100% 스며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로 넘어지려 하면 잡아주시고, 넘어지면 일으키시고,
양들처럼 엉뚱한 길로 가려 하면 잡아채듯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시며,
바울 사도처럼 죄성에 대하여 날마다 죽게 하고자 양심을 찌르는
진짜 은혜로 이끄는 것입니다.
좁고 협착한 길은 내 능력으로는 절대 못 갑니다.
반드시 거듭나 내 안의 성령께서 은혜로 인도해야만 가능합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이제 주님이 오실 날도 촌각을 다투는 때입니다.
개인의 종말(호흡이 끊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닥칠 수 있습니다.
입술만의 영접이 아닌,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을 진짜 영접하는 길만이 사망을 면하는 길이며
주님이 정하신 온전한 믿음의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꼭 그 길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