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는 적막한 강나루에

한 남자가 홀로 딱딱한 돌 위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 온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주마등 같이 지나온 우여곡절의 세월 속에 인생무상

느낍니다. 그렇게 좌절감에 빠져 고향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바로 야곱입니다. 그는 이방 땅에서 악착같이 살아 부자가

되었고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종들과 많은 가축을 이끌고 귀향

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향 앞 얍복 강 나루터에서

절망에 빠진 야곱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는 20여년 전 …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 권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이에 분노한 형이 살기등등하여

야곱을 죽이려 했고, 야곱은 먼 이방 땅 하란에 사는 외삼촌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아직도 앙심을 품은 형이

자기를 죽이려고 4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절망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는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간다는 감회도 잊은 채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하지 못한 처절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가축들에게 먼저 강을 건너가게 하고, 본인만 홀로

남아 20년 전 ‘하나님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캄캄한 나루터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복 주시고 어디로 가든지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라며 지금까지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살아온 자신의 세속적인 삶을 진정으로 

회개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그를 보자 씨름하듯 붙잡고 늘어지며 밤새도록

자신에게 축복을 빌어주기를 필사적으로 간구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야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의 환도 뼈를 쳐서

위골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야곱은 다리를 저는 병신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을 못이기는 체하며 충분히 씨름할

시간을 준 것은 그가 얼마나 애통하고 통회하는 간절함이 있는지

가늠해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고 그는 “야곱(사기꾼, 간교한 자, 수단꾼)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질문도 야곱 스스로가 고백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깊이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침내 축복을 얻어낸 야곱은 ‘그 사람’ 이 바로 하나님이신

줄을 깨닫고 그곳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을 대면한 곳)” 이라

하였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인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 곳입니다.

 

  하나님은 '속이는 자' 라는 '야곱' 의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 라는 뜻인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시며 지팡이를 의지

해야만 걸어갈 수 있는 겸손한 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야곱처럼 브니엘에서의 경험을 통해 세상에서

절름발이가 되어 지팡이이신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지팡이가 험한 세상에서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에 나를 안위하며 생명수 샘물 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저를 벧엘에서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호 12:3-5)

 

  수천 년 전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야곱은 태생이 이기적이고 꾀를 써서라도 내 유익을

취하려는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하란에서(세상) 모진

풍파와 고통을 다 겪은 장년에 고난의 때를 만나 얍복 강가에서

울며 간구해 하나님과 씨름하는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야곱이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곧 나에게 복을 주시고 항상 지켜주시는 하나님만을

원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복음의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늘 본향에 가기 위해서는 ‘벧엘의 하나님’ 만

아니라 ‘브니엘의 하나님’ 도 만나야 합니다.

 

  우리들은 이 두 만남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이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시점은 아버지 집을 떠나는

때이었고, 하란 땅(세상)에서 살면서도 그의 옛사람이 전혀

변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야곱'의 뜻이 '속이는 자, 사기꾼'

이라면 외삼촌 라반은 그 방면에서 그보다 한 수 위 이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자기를 섬기는14년 동안 열 번이나 품삯을

변경해 그를 속였고 심지어 혼인 첫날 밤 신부까지 속였습니다.

그럼에도 야곱 또한 자기 꾀로 라반의 꾀에 맞서 서로

선수답게 투쟁한 것이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브니엘의 하나님’을 만난 시점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

가는 때로서, 그는 하란 땅에서 네 명의 아내들의 시기와 질투

속에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배다른 12자식들

간의 암투 등으로 속이 썩는 파란곡절의 삶을 살았습니다.

소위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한 장년의 때였습니다.

 

  당시 에서의 군대 400명이 자기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것은

나의 지은 죄과에 대한 보응이라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옛사람의

행위를 회개하며 통회하는 심령으로 울며 간구해 곧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기고 마침내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이라는 새 이름을 받아 즉 새롭게 변화

되어, 죽음 앞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거듭난 믿음을 통해

고향 땅에 아무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 이 되는 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애통하며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과

씨름하여, 울며 간구하여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하나님도 감동하는 자 곧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

이라는 귀한 이름을 받는 자들로서 하늘 본향에 넉넉히 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