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하며 간혹 어떤 분들에게 

주님과 동행하는지, 아니면 그분을 대적하는지 여쭤보면 

내가 어떻게 주님을 대적 할 수 있겠느냐며 말도 안 된다 손사래 치면서 

자신은 당연히 주님과 동행한다 자부합니다. 

그 근거를 물어보면... 

주님을 믿기 때문이라며 너무나 명쾌히 답합니다. 
맞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가장 실상적 근거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란 게 잘못되었다면, 주님과의 동행이 아니라, 

대적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입술로만 '믿습니다' 하는 자기 의지적 혼의 겉사람 믿음인지... 
거듭나 실상의 열매(주님의 성품)가 흐르는, 성령 주도적 영의 믿음인지... 
그걸 확실히 해야 내가 주님을 대적하는지 동행하는지 

그 정체성이 보입니다. 

대적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상대를 적이라 인식하고 그 반대편에 선다는 의미입니다. 

그와 반대로, 동행한다는 것은 상대를 아군이라 여겨 같이 함께 하는 것... 

즉, 대적의 성경적 표현은 주님의 뜻과 배치되는 반대 편에 서는 것이고, 

동행의 성경적 표현은 주님의 뜻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동행한다 하면서도 여전히 육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의 가면을 쓰고 주님을 대적하며 마귀와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거듭나 주님 뜻에 합당한 믿음의 열매가 나타난다면 

그는 분명히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이제 나 자신을 돌아보겠습니다. 

나는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까, 동행하는 사람입니까... 

이 물음을 듣고 간단히 여기며 거침없이 주님과 동행한다 쉽게 답한다면 

그는 주님을 대적하는 자기 관념적 믿음일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물음은 내 양심을 콱 찌르는 문제이므로 

그처럼 간단하게 답하지 않고 무겁게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거듭난 사람일수록 더 무겁고 신중한 겸손이 나타납니다. 

바울 사도처럼... '나는 매일 죽노라', 

자신은 죄인 중 괴수라고 가슴을 치며 고백했듯 말입니다. 

주일 잘 지키며, 충선봉사 하는 것만을 동행의 증거로 여겨선 안 됩니다. 

그저 머리로만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서.. 그게 동행의 증거는 아닙니다. 

선생이 교리적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 해서 그것이 증거가 아닙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믿음 생활이 아니라, 종교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타 종교에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동행하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장 34절) 

 

예수님의 위 말씀이... 

타 종교와 다른, 온전한 믿음 형성의 핵심적 말씀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거듭난 참믿음 자체가 성립될 수 없으며, 
거듭난 참믿음이 성립되지 않으면... 주님과 동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온전한 믿음은 자기 부인으로 촉발된 회개와 거듭남이 필수입니다. 

결코, 타협이 안 되는 절대불변의 영역입니다. 

자기 부인은... 내 모든 판단과 육적 속성인 자아의 권리를 포기하고 

육이 살아나지 못하도록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아 죽여달라는 간청입니다. 

주님께 모든 걸 의탁하겠다는 포기각서... 이것이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다음의 말씀이 자기가 부인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러므로 자기 부인을 거부하는 것은 주님과의 동행을 거부하는 것이고, 

반대로 마귀와의 동행에 응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나 자신을 포기하기 위해 

간절하게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애통한 마음의 사람이 
육의 본능 대로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의도적으로 끌려가려 하겠습니까? 
'나는 주님께 굴복합니다' 선언하면서도... 
여전히 육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에 연연하여 기웃거린다면, 
그는 근본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과 동행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다 실수는 할 수 있어도, 실수가 반복되면, 그것은 그의 본심입니다. 
여전히 주님을 벗어나 내 의지대로(주님을 대적하며) 가고자 하면서 
구원도 받으려는 가짜 믿음의 사람입니다. 

차분히 묵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의 무엇을 보고 동행하고자 은혜주시겠습니까... 
정말 자신을 부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주님은 이미 다 아시기에 
그 가면 뒤에 숨겨진 리얼한 생얼굴의 실상을 보고 반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정확한 분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은혜를) 베푸시나니 
(역대하 16장 9절) 

 

만일, 입술 고백과 생얼굴이 다르면... 

주님은 우리 자유의지를 존중하여 결코 역사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얻고자 구하고, 두드리라는 말씀의 참뜻은 입술 요구가 아닙니다. 
진짜 자길 부인하고 주님과 동행하려는 마음이 있는지를 
심장으로 요구하라는 것이고... 그 요구가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진짜 본질적인 사람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겉사람 안에 숨어있는 내 생얼을 상세히 아십니다. 

아무리 입술로는 주님을 믿으며 주님을 대적지 않고 동행한다 고백해도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디도서 1장 16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태복음 15장 8절) 

"유다(이스라엘 백성들 곧 우리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아 3장 10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겉으로만 흉내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16장 2절)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욥기 13장 9절) 

성경 말씀에는... 

진심으로 자기를 부인하며 예수님을 구한 예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행전에 기록된, 고넬료라 하는 인물의 실상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육을 대적(부인)하며 예수님 말씀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진실된 그의 생얼굴을 기쁘게 여긴 주님은 
결국, 그에게 성령으로 거듭나는 엄청난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방인이던 고넬료가 성경에 기록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분량만 채우고자, 에피소드식으로 기록된 인물이 아닙니다. 
고넬료를 보여줌으로써 증거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3장 11절) 

주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자기를 부인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아십니다. 
주님께서 보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 속사람의 참된 의지와 결단입니다. 
내 의지로 부인하기 힘들지만, 분명히 떨쳐버리려는 간절함이 있기에 
주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은혜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자기 부인(회개)을 거부하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주님과 동행해야 할 존재들입니다. 
끝내 육을 포기하기 싫어하여 주님과 맞서는 이들은 멸망할 것이고, 
거듭난 성도는... 천국에서도 주님과 영원히 동행할 것입니다. 

 

믿음은... 모 아니면 도, 차갑든지 뜨겁든지 분명해야 합니다.  
회개 없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함도... 주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한계시록 3장 16절) 

 

주님의 공의는 단호합니다. 

육신의 결대로 쓰다듬는 사람 기준의 가짜 은혜에 기대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바램은, 자신을 사망에 몰아가는 일입니다. 

뿌린 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주님이 정하신 영계의 법칙입니다.

바알의 편에 서든지, 하나님의 편에 확실히 서든지 그것만이 존재합니다. 

오직 마귀를 대적하는 길은, 거듭나 주님과의 동행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과의 동행) 

(에베소서 6장 11절) 

더는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때가 차서 재림의 날은 물론, 호흡이 멈추는 개인의 그날도 가깝습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말뿐이 아닌, 단호한 자기 부인(회개)만이 내 영혼을 살리고 

주님과 동행하는 유일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