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을 읽다 보면 

매우 난해하여 이 말씀이 도대체 뭔 뜻인지 아리송합니다. 

성경좀 안다 하는 분들 중, 사람 기준의 내가복음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복음의 본질을 잘 알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에 대해, 그 뜻을 아는 게 중요하다 하지 않습니다. 

뜻을 아는 것은 누군가에게 배워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복음에 대한 이해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음의 아주 유명한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성령으로 거듭난 후부터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바울이 고백한 위 말씀은... 

저의 메마른 가슴에 불을 지른 매우 엄청난 표현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접하고서, 제가 얼마나 한심한 자인지 절감했습니다. 

교인들 중에 위 말씀의 뜻을 모르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 거의 대부분 이해하실 겁니다. 

그런데... 

위 말씀의 뜻을 이해했다 해서 내가 저 말씀대로 된 것입니까? 

말씀을 이해하는 것과 말씀대로 된 것의 차이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면 말씀대로 된 줄 압니다. 

저 말씀이 과연 내 안에서 능력을 발휘해 위 말씀대로 

내 삶에 영향을 끼치냐의 문제입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내 심장이 아닌, 머리만 뜨겁게 달군다면 

그는 위 말씀에 대해 이해만 했을 뿐, 영으로는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비유로 말씀드리자면...

씻지 않은 몸에 새 옷만 걸치고 나는 깔끔한 자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머리로 아는 이해도의 문제가 아니라, 

심장으로 받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거듭난 온전한 믿음이 아니면서) 
된 줄로(말씀 대로 거듭난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갈라디아서 6장 3절) 

 

이런 예가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어떤 무리는... 베드로로부터 불을 토해내는 듯한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려, 그러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지를 사도들에게 묻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 권면하였고, 

그들은 그대로 했으며, 또 그대로 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중략.......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37~42절) 

 

또 다른 무리는 어찌 반응하는지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스데반 집사도 어떤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성령 충만하여 엄청난 말씀을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들(기득권층)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 

(사도행전 7장 54절) 

 

이 두 무리는 똑같은 복음의 말씀을 들었는데 

공통적으로 마음에 찔리는 현상(?)이 즉각 나타남을 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부류는 마음을 찢으며 회개의 방향으로 달려갔지만, 

두 번째 부류는 이를 갈며 돌을 던져 스데반 집사님을 순교시킵니다. 

이처럼, 같은 복음에 마음이 찔렸는데, 왜 전혀 반응이 다를까요... 

위 두 부류가 느낀 마음의 찔림은... 

표현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찔림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부류의 찔림은 자신의 죄성에 애통함을 느낀 찔림이었지만, 

두 번째 부류의 찔림은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자신들이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들키는 찔림이었고, 또 치부을 감추고 정당화하기 위해 

이를 발설한 스데반에게 분노하여 돌을 던진 것입니다

시쳇말로 뜨끔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부류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세 대륙의 교착지라 

예로부터 전쟁도 참 많았었지만,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멀리 떠도는 영세 장사꾼들과 

또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구걸하는 사람들과 몸이 불편한 순례객 등.. 

다양한 소시민들이 많이 모여드는 지리적 특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늘 부족하여 누리고 지킬 것이 없었던 반면에, 

스데반의 설교를 듣던 자들은 대부분 상류층들이라 

부족함 없이, 풍족히 누리며 지킬 것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하여, 첫째 부류는.. 말씀을 거부감 없이 흡수해 회개의 길로 갔지만, 

두 번째 부류는.. 자신의 모든 걸 지키고자 그 반대의 길을 갑니다. 

모든 것을 가졌고 그것을 모두 누리던 젊은 관원이 예수님께 왔으나, 

예수님의 불같은 말씀이 너무 부담스러워 돌아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처럼... 

자신과 세상에 기대는 사람들은 실제 우상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복음이 심령 속으로 들어오기 참 힘듭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없나니... (고린도전서 2장 14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17절) 

 

이것이 바로 이 두 부류의 차이입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는 대부분 사람은 진리의 말씀이 부담스럽지만, 

더는 누리고 지킬 것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마음도 남루하기에 

진리의 말씀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복음이 우리 심장으로 향하도록 

우리가 의지하고 집착하는 것들을 빼앗는 상항들이 흔히 나타납니다. 

즉, 고난을 통해...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첫 번째 부류의 경우를 무조건 100% 일반화하여, 

100%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특성상 대략 그렇다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하여, 100% 모두 회개했다는 표현 없이, 거기 있던 사람들 중에 

회개하고 거듭난 수가 대략적 삼천 명 정도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진실입니다. 

 

위 두 경우의 예에서 보듯... 그 시대의  바리새인들처럼 

두뇌가 명석하고 복음에 해박하다고 해서, 말씀을 깨닫는 게 아니며, 

못 배우고 성경 지식이 매우 부족한 사람들일 지언정 

한 줄의 말씀이라도 들었다면 

마음으로 받아 순종하려는 것이 말씀을 깨달은 자의 모습입니다. 

성경 말씀을 머리로 이해한 것을 두고, 깨달았다고 하면 착각입니다. 

이해하는 것은 혼의 영역이고, 

깨달음은 영의 영역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육과 세상에 치우친 사람들은... 그 가치관을 통해 말씀을 접하므로  

그 속성들이 말씀을 막아서며 심령으로 파고들지 못하도록 하기에, 

그들 눈에 보이는 진리의 말씀들이

배움의 경로를 통해 이해는 하겠지만, 머릿속에서만 겉돌 뿐, 

성경 말씀이 능력이 되어 내 삶의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여, 자신의 육적 세계관에 기초한 믿음(?)의 방향을 

어떻게든 정당화하기 위해 말씀을 각색하여 정신승리를 시도합니다. 

그게 바로 사람 생각으로 만든 교리이고, 그런 부류의 교인들이 

그런 교리를 악착같이 붇듭니다. 

 

(말세의) 때가 이르리니 

사람(교인들)이 바른 교훈(복음)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사람이 만든 교훈 즉 교리)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장 3~4절) 

 

만약, 예수님의 말씀에 실망하여 돌아갔던 그 관원이 

믿음의 교리를 만들려고 시도한다면... 

불꽃같은 예수님 말씀이 아닌, 자기 기준을 바탕하여 시도할 것이고, 

낙타도 들어갈만한 바늘귀(교리)를 만들어 

자신의 바람대로 구원을 쉽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또한, 복음의 능력이 삶에 묻어남도 없이,

교리 이론만 앞세우며 믿음이 이렇다 저렇다 주장만 했을 것입니다.  

반면에,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이들에게는 교리가 필요 없으며, 

그 순수한 가치관을 통하여 복음을 접하므로, 말씀이 골수로 들어와 

영을 깨우고, 삶 속에서 거룩의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말씀, 구원의 비밀)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자아, 지식만 가득한)

자들 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순수한 마음)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태복음 11장 25절) 

    

이제는 성경에 기록된 말세 현상이 너무나 뚜렸이 보입니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집착을 포기 못한 채 방황하면 절대 안 됩니다.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자꾸 다른 것에 연연하는 건 우상 숭배자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를 죽여달라고 정말 간절하게 매달려야 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하늘의 비밀을 아는 마음의 눈이 허락되고, 

부담스러웠던 불같은 복음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보이며, 그 말씀이 내 심령에 들어와 

나를 거룩의 능력으로 이끌어 내 악한 죄성들을 섬멸해갈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꼭 그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간절히 매달리십시오. 

시간이 촉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