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옆에서 늘 경험하는 교인들을 지켜보면 거의 다 비슷해 보입니다. 

허나, 새 생명을 얻어 영의 세계를 맛본 사람은, 바라봄이 구분되어 보입니다. 

그리고 본인의 영혼육 패턴도 옛사람과는 확연히 구분되게 나타납니다. 

여기서 영의 세계를 맛봤다는 것은 

영적 신비스러운 뭔가를 듣고 보는 걸 표현함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회개나 거듭남이나 구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이 글에서는 내가 변화되어 주님의 마음으로 보여지는 통찰을 의미합니다. 

참 힘들겠지만 점검해보겠습니다. 

 

지금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나에 대하여 주변에서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가에 민감하십니까? 

누가 나를 무시하는 듯하며 내 자존심을 건드리면 분하여 못 견디시겠습니까? 

내 생각과 가치관과 이념이 다르면 비판 정죄 의식이 강하게 올라옵니까? 

인간적 서운한 마음이 들면 힘들어집니까? 

남들이 나에게 해코지하면 도무지 참을 수 없어서 복수할 마음이 솟구칩니까? 

남들에게 없는 뭔가가 나에게 있으면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집니까? 

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하면 당연한 것이고, 남이 하면 부당하게 느껴집니까? 

다른 이의 삶과 내 삶의 질이 달라 보이니 움츠러들며 부러움이 올라옵니까? 

누군가 내 기준과 다르면 견딜 수 없어, 정리 통제하고픈 강박증이 있습니까? 

이 모든 현상은 내가 나의 주인임을 확고히 하려는 육의 마음이며, 

또 바리새인의 마음입니다. 

-----------------------

이런 현상들이 내 일상에서 계속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영이 아닌, 육의 지배력에 영향받으며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사실 대부분 사람이 그렇습니다. 

 

이처럼 육의 사람들은... 

육적 상황에는 매우 민감하고 영적 상황에는 둔감합니다. 

이런 현상은, 우상인 내 자아를 굳게 지켜내고자 하는 본능적인 실상입니다. 

그러나 변화되어 영에 민감한 사람은... 

위에 나열한 그런 똑같은 상황이라도 육에 매우 둔감하여 

별일 아닌듯 크게 생각하지 않고, 상대를 향해 반응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모두 부질 없음을 알기 때문이고, 

육적 반응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영적 본능으로 알기 때문이며, 

그런 것에 반응하면, 마귀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실 내 안의 성령께서 그런 육적인 것에 반응 못 하도록 

나를 잡고 계신 이유가 더 정확합니다. 

그래서 내가 주인 되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조차 통제하려는 이들은 

육신을 따르며,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육의 사람이고, 내 안의 주님을 따라 

거룩한 영의 일을 생각하는 이들을 영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영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5~9절) 

 

위에 언급했듯, 이미 변화된 사람은 

주님께 통제받으므로 이런 육적인 현상에 대하여 매우 둔감합니다. 

또한 거듭나지 않아 새 생명을 얻고자 진정 주님을 구하려는 사람들조차도 

비록 내 의지대로 잘 안 되지만, 그래도 내 육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괴로워 

몸부림치며 주님의 도움을 간절하게 바라기도 합니다.(자기 부인) 

주님은 그걸 귀히 보십니다. 

 

마귀는 사람의 분란을 부추기기 위해 

사람으로 하여금 오른쪽 뺨을 때리도록(분란을 일으키려) 유도합니다.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이에 바로 반응하면서 당한 것을 갚아주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혈과 육의 싸움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사람을 통해 서로 갈라치고 분열시키며 멸망케 하고, 

주님께서는 형제끼리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이끌어갑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을 품은 영의 사람들은 육의 사람에 대항하지 않습니다. 

이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의 싸움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달라며 마음속 깊이 간구드립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태복음 5장 37-41절) 

 

위에 기록된 주님 말씀은... 

사람을 골탕 먹이고자 일부러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거듭난 믿음을 지녔다면 성경 말씀이 왜 이렇게 기록되었는지 알게 됩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 모습이 나를 통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증거가 능력이 되어 삶으로 나타나기에 

영의 사람은 육적 현상에 대하여 쉽게 반응하지 않고 흘려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거듭나도 성화의 성숙도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이~ 사람은 연약하고 불완전한데 어떻게 저 말씀대로 할 수가 있어!!!" 

"저대로 안 되니 은혜가 필요한 것이지" 하며 말씀을 은혜로 뭉개려 든다면... 

그는 은혜만을 앞세워 주님 말씀을 쳐내며 육을 합리화하려는 사람입니다. 

즉, 아직 거듭나지 않은 육의 사람임을 스스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육으로는 위 말씀대로 안 되니까 말씀대로 되도록 하게 해달라고 

주님의 은혜가 간절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은혜에 대한 올바른 해석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의 육을 자꾸 은혜로 뭉개며 합리화하려 하다가는 양심이 점점 무뎌져 

아무렇지도 않게 죄와 타협하려는 죄 중독증이 생김을 꼭 기억하십시오. 

마귀는 계속해서 편리한 육의 기준으로 은혜를 해석하도록 부추깁니다. 

여기에 속으면 사망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은혜를 방패삼아)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거듭난) 우리가 

어찌 그(죄) 가운데 더 살리(로마서 6장 1~2절) 

 

온전한 영의 믿음은... 

기록된 주님의 말씀이 사람을 통해 실상의 능력이 되어 

말씀대로 역사 되도록 은혜로 이끌릴 때 그것을 거듭난 믿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위 말씀(마5:37-41)을 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육을 벗어던지고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 사람의 심령 안에 성령으로 임하여 

위의 말씀처럼, 그런 거룩한 영의 모습대로 이끌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결코, 사람의 불가능한 능력으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즉, 거듭나야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장 26절) 

 

마귀는 우리가 사는 동안 끊임없이 

육의 문제를 유발해 서로 손해 보지 않으려 이해관계를 따지게 하며, 

다투게 하고, 계속 분열시켜 선을 이루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이간시킵니다. 

생각이나 이념 차이로 서로 맞다 틀리다 이간시켜 원수지게 하고, 

'환란 전 휴거다 아니다'를 가지고 서로를 밀어내며, 

'바코드, 베리칩, 백신이 짐승의 표다 아니다' 이런 걸 가지고 

반목하게 하여 내 가치관과 다르면 상대를 정죄 판단하며 참소하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가 사람의 마음을 잡고 

가치관만이 당연한 진리임을 철석같이 믿도록 충동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다른 사람들게도 역시 또 다른 가치관을 꽉꽉 담아주며, 

그 또한 진리라 믿게 하여 분란을 일으킵니다. 

마귀가 서로 다른 생각을 심어주며 분란 시키는 데는 천재입니다. 

그러므로 육의 사람들은 마귀의 이간 놀음에 쉽게 휘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내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끝내는 온갖 심한 말과 욕설과 미움과 분노가 

쏟아지는 것이고, 더한 사람은 선을 넘는 행동도 불사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심한 욕설)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장 22절) 

 

내 육적 가치관과 다르다 하여 형제를 향해 

함부로 참소하며 미워하거나, 판단 정죄하며 분노하지 마십시오. 

미움과 분노 속에는 이미 형제를 증오하며 부러뜨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마음 속에서는 이미 형제에게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살아있는 생명과 능력이 되어 나와 연합되었다면, 

결코 그리하지 못합니다. 

심판은 주님의 몫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며 

내 안의 주님께서 그리하도록 손 놓고 방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생명이 아닌... 지식과 이론으로만 자리 잡고 있기에 형제를 향하여 

함부로 판단, 정죄, 분노, 참소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면 그에 합당한 모습들이 

거룩한 생명이 되어 반드시 나를 통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저 습관처럼 말로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백번 천 번을 고백해 봐야 

그 말씀이 실상의 능력이 되어, 나를 그 모습 그대로 동화시키지 못한다면, 

나는 아직도...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영의 사람이 아니라, 

내가 주인으로 사는 육의 사람입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이 우리를 통하여 은혜의 능력으로 전환되려면, 

누구든지... 반드시, 자기를 부인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가능합니다. 

거듭난 실상의 믿음만이 나를 살리고, 또 합력하여 형제를 살립니다. 

그게 영적인 사람의 진짜 능력입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하고 거듭나서)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라디아서 5장 25절)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장 12-14절) 

 

정리합니다. 

육이 아닌, 영으로 사는 사람은 영으로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육신에게 지지 말고, 성령으로 거듭나 영에 이끌리는 성도가 되십시오. 

천국 문은... 굉장히 좁은 문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말처럼, 쉽게 통과하는 그런 자동 문이 아닙니다. 

성령이라는 생명의 열쇠가 내 심령 안에 실상 계셔야만, 열리는 문입니다. 

즉, 새 생명을 얻어 영의 사람이 되어야만 열리는 문입니다. 

거룩한 열쇠를 얻어 꼭 그 문으로 들어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