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 : 7)
"바울의 가시"라는 말은 신앙안에서
하나의 영성적 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시를 "사단의 하수인"이라고 표현하니까
이상한 생각이 들겠지요~
왜? 사도 바울같은 분에게도
사단의 하수인"을 주셨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가능하면 간단히 설명해드리지요.
많은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할때에
주님을 잘 믿고 있고 잘 믿을려고 노력하는 내게
이런 고통과 아픔을 주셨을까?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항변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고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아픔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셨다는 말은 옳은 표현이 되지 못합니다.
고통 그 자체는 악입니다.
말 그대로 사탄이 원하는 아픔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주어진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악의 힘과 싸워 이겨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겪어야 했던 아픔,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아픔을 없애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탄의 뜻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사탄과 싸워 이기라는 뜻이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것으로인해 교만하지 못하도록
사단과의 싸움을 통해서 자신의 무능과 나약함을 알게되어
주님의 도움을 더욱 더 구하는 겸손한 자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결코 자만하지 않았으며
그 일생을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바울의 가시같은 일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이나,가정과 경제.자녀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이런문제를 놓고 많은 기도를 하고 있을줄로 믿습니다,
이길 수 있는 힘은 전적으로
그분과의 진정한 만남을 통해서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그분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약함을 철저하게 인정해야만 해결이 됩니다,
인간적,세상적인 방법은 문제를 더욱더 꼬이게 만들뿐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표현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신 것이 아니라,
시련과 싸워 이길 기회를 허락하셨다고 말입니다.
약함이 약함으로 끝나면 아무런 의미 없는 상처일 뿐입니다.
하지만 약함이 그분께 향하는 통로가 되고
기회가 될 때 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속에서 이 은총을 부여 잡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