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하는
두 종류의 그룹이 있습니다.
그룹 1. '우리는 결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룹 2. '우리는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믿을 수 있는 셀파
(등반을 도와주는 짐꾼이자 안내자, 이 글에서는 성령님을 표현)와
동행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상에 등정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은 그룹 1에 속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죄를 온전히 회개하여
예수님의 분량으로 거룩해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믿으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들도 보혜사 성령님의 존재를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보혜사의 도움으로도 정상에 오를 수 없다고 믿습니다.
아니 성령님과 함께하질 않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함께하지 않으니 그렇게 포기할 생각을 하는 것이고,
그저 스스로 성령과 함께한다고 지식적으로만 믿을 뿐입니다.
그래서 산기슭에서 계속 머물게 됩니다.
산 기슭에 머문다는 말은
철저한 회개와 성령님과의 동행이 없기 때문에
늘 같은 수준의 영성에 머문다는 의미입니다.
죄와 타협할 때 마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죄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며
나중에는 무감각해지는 것입니다.
또 죄를 짓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
동질감을 느끼고 반가워하며 같은 말로 위로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죄인들이 가득하지만
누구도 죄를 깨닫지 못하고 (양심에 화인을 맞아)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계속 죄 안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극소수의 사람들(그룹 2)은 셀파(성령님)를 믿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도전합니다.
셀파는 정상에 이르는 루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지점에 어떤 위험이 있고
어디서 캠프를 설치해야 하는 지 등
등정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상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셀파의 도움은 절대적입니다.
셀파의 도움으로 정상에 오른 사람치고
십자가의 상처가 없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이는 가족을,
어떤 이는 직장을,
어떤 이는 친구를,
심지어 어떤 이는 제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치열하게 정상에 오른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십자가이며
천국의 행위록책에 남기는 순종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순종하는 것은
구원의 여정에 절대적이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돕는 셀파의 역할을 하실뿐
저 밑 산허리에서 어슬렁 거리는
악하고 게으른 자들을 들어서 '억지로'
정상에 데려다 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하지 않는
악하고 게으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닙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시며
어두운 곳에 던지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보혈로 덮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이 없으면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함께 동행하시면
주님의 뜻 안에서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건 진리입니다.
또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