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살아야 우리의 신앙도 살아난다.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 분명한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다.
성도는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기 위해서 존재한다.

예배하지 않는 자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지음 받았다.
 
먼저 나 자신의 무너진 예배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결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가 없다.
우리의 신앙은 예배를 통하여 자라게 되어있다.

습관적인 예배! 
기계적인 예배! 
충동적인 예배!
형식적이고 마음이 떠난 예배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놀라야 한다.
예배를 드려도 영혼이 없는 육신만 옮겨놓는 예배는 
가인의 예배나 다름이 없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아벨은 예배할 때에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 감정과 상관없이 항상 우리의 삶 속에 부어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마땅히 경배하며 예배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가인도 하나님을 믿는 자이기에 
예배(제사)의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성도는 예배가 본분이요 
예배에 살고 예배에 죽을 수 있어야 한다.
예배를 잃어버린 영혼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요
자신이 왜 사는지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교회에만 왔다 갔다 하지 마라.
예배의 홍수 속에서 가짜예배를 드리고도 
예배한 것처럼 착각하지 마라.
습관적인 예배를 버려라.
형식적인 예배를 타파하라.
마음 떠난 예배, 영혼 없는 예배는 무너진 가인의 예배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예배는 
자신의 감정일 뿐 예배가 아니다.

가인이 예배를 잘 드렸다면 
동생을 지켜주는 형이 되었을 텐데
잘못된 예배를 드린 그는 예배드리고도 
시기하여 동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