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기 위해 열심히 교회당에 다닙니다.
교회당에서 이런저런 봉사를 하고 교회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면...
보편적으로 그것을 믿음이라 여기면서 구원은 보장되었다 확신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 지식이 풍부하면 큰 자긍심에 휩싸여
믿음이 상당한 줄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뭔가를 한다고 하여 그것이 믿음일까요?
과연 이런 게 믿음의 증거인지.. 성경을 묵상하며 스스로 돌아보십시오.
믿음의 증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알기 쉽게 비유해봅니다.
번데기가 고치 속에 머물러 있다면 여전히 번데기라 불리지만,
고치를 찢고 나왔다면 그 실체는 더 이상 번데기가 아니라, 나비입니다.
번데기가 아무리 자신은 나비라고 피를 토하듯 우겨봐야
번데기라는 사실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나비가 되어야만 반드시 고치를 뚫고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번데기는 아무리 시도해봐야.. 결코 두꺼운 고치를 뚫을 수는 없습니다.
이렇듯 나비가 되어야 나비라고 하지, 번데기를 나비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번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비가 된 상태를 말합니다.
본질적 상태가 전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참된 증거는...
내가 육의 모양을 탈피하여 성경적인 영적 모양으로 전환되어
성경에 기록된 방향의 흐름대로... 단호하게 걸어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흐름으로 걸어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에 나왔으니 무조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자칫하면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자아적 율법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내 속사람 안에 있는 출발점의 동기가 뭔지, 그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믿음)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장 5절)
위 말씀대로입니다.
육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
즉..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 대해 예수님이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성령의 열매를 품고 행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진짜 모습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마음이 내게 없고,
이방인 같은 육의 모습이 습관적으로 쏟아진다면
나는 아직도 믿음의 흉내나 내려는 영역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냐며 따지고 싶습니까?
사람이 어찌 예수님 마음으로 살 수 있냐고 부정하지 마십시오.
조그만 토도 달지 마십시오.
말씀(주님)이 그렇게 증거한다면, 반드시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실조차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가짜 믿음입니다.
왜 토를 달아가며
기록된 주님 말씀조차 부정하고픈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요...
사람 기준이나 교리에만 기울이다 보니,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100% 진리이기에...
그 누구도 말씀에 대해 거역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주님은 모두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19: 26)
주님의 영인 성령께서 내게 오시면 당연히 내가 아닌,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며, 행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를 통해 주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걸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의 말씀이 이 모든 걸 증거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믿음이 있다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라디아서 5장 25절)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성령님)이시니
자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