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우리가 어렸을 적엔 부모님의 사랑을 잘 모릅니다.

하여 어머니의 지극 정성한 사랑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면서 어머니의 속을 무던히 썩이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녀 때문에 큰 걱정 근심을 하는 어머니들은 오랜

시간을 노심초사 하며 매일 새벽기도에 나아가 주님께 호소

하기도 합니다. 그 어머니의 가슴 아픈 고통을 보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시며 서로 사랑을 나누는

관계를 원하셨고 실제로 아담부부와 친밀한 사랑을 나누셨습니다.

그러다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의 범죄로 인해 사랑하는

관계가 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요?

 

  성도들이 가지는 ‘사랑의 관계’는 첫째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사람들 간의 이웃사랑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30-31)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계명은 ‘하나님의 뜻’ 으로서 사랑의

관계 속에 꼭 필요한 ‘사랑의 법칙’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곧 우리의 행복과 유익을 위한 것이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는 반드시 어떤 법칙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의 법칙도 없이 내 좋은 대로만 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으로써 정상적인 관계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여 성경에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주신 사랑의 법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신명기, 이사야서, 에레미야서 등을 묵상하노라면

하나님은 성도들의 남편으로 자처하면서(렘 31:32) 얼마나 애타게

성도들과의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그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보면 가슴이 저며옵니다.

 

  또한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자비와 긍휼에

대해 많이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억울함을 당하는 과부와 돌볼 사람이 필요한 고아를 압제

하지 말고 구제하라!”고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 68:5)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들을 위하여 버려두라” (레 19:9-10)

 

  위 말씀은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께서 너희도 어려운 이웃

들에게 그렇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저런 자상한 사랑의 법칙을 가진 백성이 또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얻는 것이 쉬운 길일까요?

우리 마음은 기본적으로 이기심과 교만으로 꽉 차있기 때문에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라는 말씀을 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어렵기에 찾는 이가 적고 협착한 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부어져(롬 5:5)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져야 그때 비로소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이웃사랑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귀한 선물인 성령을 주시기를 너무 기뻐하시지만, 그

선물은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눅 11:13)

 

  사실 복음은 탕자처럼, 호세아 선지자의 아내처럼 제 멋대로

사는 우리를 새 언약 안에서 성령을 통해 주님의 정결한 신부로

변화시켜 중매하고자 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고후 11:2)

 

  주님께서는 정결한 신부들과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시며

모성애 보다  크게  신부들을 끔찍이 사랑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아들을 긍휼이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5)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완전히 순수한 사랑 본체이시기에 그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 이물질이 들어오면 견딜 수가 없고 더 크게 상처받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점을 결코 잊지 말고 그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바로 알아야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요17:3)

 

  우리가 연약한 믿음으로 먹고 사는 세상사에 분주하다 보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하는 심정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심정을 잘 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도는 ‘내가 주님을 너무

속 썩인 큰 죄인’ 이라는 사실에 애통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주님께 기쁨이 되고 이웃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 자에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장성한 성도들

되어 주님을 가슴 아프게 하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성령님의 인도로 오직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 영생을 얻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