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신앙의 길에는 언제나 역설이 존재합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분명한 진리가 되는 역설입니다. 그중 가장 깊고도 본질적인 역설은 바로 십자가의 역설, 곧 죽어야 산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애쓰고, 지키기 위해 움켜쥐며,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길을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단순한 윤리적 권면이 아닙니다. 이는 존재의 전환, 주인의 교체, 삶의 중심 이동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신앙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주님이 일하실 공간이 없고, 내가 죽을 때 주님이 나의 삶을 통치하신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자신의 삶으로 증언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이 고백은 신앙의 도달점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모셔오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예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의 결정권은 여전히 자신이 쥐고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할지, 누구를 만날지, 어떻게 반응할지는 늘 ‘내 기준’, ‘내 감정’, ‘내 경험’이 중심이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 신앙은 그 중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에서 물러나고, 예수님이 중심에 서시는 것,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립보서 4:2). ‘같은 마음’이란 단순히 의견 일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 곧 예수님의 시선과 태도를 말합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묻는 것입니다. 내가 상처받았다고 반응하기보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신앙이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자존심이 죽는 자리이며, 십자가는 내 의로움이 내려오는 자리이며, 십자가는 내 감정이 다스림을 받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나를 따를 수 없다.”
믿음은 능력이 아닙니다. 믿음은 기술도 아닙니다. 믿음은 죽음에 대한 결단입니다. 내 생각이 맞다는 확신이나 내 경험이 옳다는 주장, 내 방식이 최선이라는 고집이 십자가 앞에서 내려놓아질 때 비로소 믿음이 시작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흐르도록 만드는 통로입니다. 내가 비워질수록 주님은 채우십니다. 내가 침묵할수록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죽을수록 주님은 살아 역사하십니다.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직장 내에서 늘 갈등을 일으키는 상사가 있었습니다. 말은 날카로웠고, 공은 가로채며, 책임은 부하에게 전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성도는 처음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맞섰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옳았지만, 관계는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기도는 했지만, 기도조차 “하나님, 저 사람이 틀렸습니다”라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씀 묵상 중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마음에 깊이 박혔습니다.“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날 이후 그는 기도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주님, 이 만남에서 제가 죽게 해주십시오. 제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이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상사의 말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주님의 시선으로 그 사람을 보려 노력했습니다. 말 한마디를 하기 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상사가 개인적인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습니다. 이 싸움은 논리의 싸움이 아니라, 십자가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후 관계는 눈에 띄게 달라졌고, 그는 자연스럽게 신앙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 만남을 바꾼 것은 그의 지혜가 아니라, 그 안에 사신 예수님의 지혜였습니다. 십자가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내가 만나는 사람을 만나 주시게 하는 것.” 내 성격이 아니라, 내 경험이 아니라, 내 판단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시선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환경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려운 사람도, 불편한 상황도 십자가 앞에서는 사명의 자리가 됩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죽음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참 생명의 시작입니다. 내가 죽을 때,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그분이 사실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내가 살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도록 내가 죽을 것인가. 십자가의 역설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죽어야 삽니다. 그리고 그 죽음 속에서 세상은 가장 선명한 생명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