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은 

주님께서 허락하는 은혜 가운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물을 허락하셨고, 맑은 공기를 허락하셨으며, 

먹을 양식 등 다양한 걸 허락하셨기에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위에 나열한 은혜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 한정된 것일 뿐, 영의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들은 주일마다 각 교회당 예배에 출석하여 항상 듣는 설교가 있습니다. 

'은혜로 살아야 합다.', '은혜로 다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셨기에 

여러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은혜를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만 있으면 은혜로 다 됩니다'... 은혜라는 말이 습관적으로 쏟아지니까 

얼핏 보면 듣는 모든 교인들이 쉽게 다 구원받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에는 성경적인 어떤 조건이 따릅니다. 

회개하고 거듭나 은혜 안에 진짜 머무는 사람들에게나 합한 말씀입니다. 

물질세계의 은혜는 악인이나 선인이나 모두에게 해를 비추고, 비를 주시며, 

살만한 환경을 제공하지만, (마태복음 5장 45절) 

영의 세계에서는 거듭나고자 자기를 부인하며 간절히 부르짖거나, 

이미 거듭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만 영의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시집가고 장가가며 이 땅의 미련을 버릴 마음조차 없이,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면서 '은혜은혜' 해봐야 

육의 모습을 끊을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영적 은혜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포도나무에 접붙임 당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성령으로 거듭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은혜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5절) 

 

그러나... 육에 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님은혜가 아니라, 오히려 그날(심판 날)이 되어 징계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주여주여 하며 육으로 살려는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거듭나려는 혹은,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드로전서 5장 5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은혜)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84편 11절) 

 

너희가 육신대로(거듭남 없이)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거듭나면) 살리니... 

(로마서 8장 13절) 

 

이렇듯 새 생명을 부여받아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은혜를 아끼지 않고 주십니다. 

결국 영의 은혜는... 천국을 침노하고자 예수님의 성품을 더욱 더 닮아가고, 

이 땅에서 사탄 마귀의 궤휼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로서, 

거룩한 영성을 유지시키는 근원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은 은혜가 없으면 도무지 영적 거룩한 삶이 불가능하고, 

구원 역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땅의 수많은 거짓 선생들은 

은혜를 마치 죄를 가려주는 면책특권 같은 도구쯤으로 왜곡한다든지, 

회개도 거듭남이 없는 교인을 향해, 거침없이 은혜가 임했다고 선포합니다. 

겉사람이 듣기에는 참으로 즐겁고, 다 된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아전인수'격으로 전하는 이런 은혜가 참 저렴하게 느껴집니다... 

거듭남이 없는 교인들이 이런 설교를 계속 들으면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진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솜사탕을 먹을 때는 너무나 달콤하고 입이 즐겁습니다만, 이것이 반복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치아는 점점 썩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근본적 거듭남이 없기에 육신만 누리다가 멸망으로 가게 될 뿐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선생들이 교인들에게 은혜받으라며 

강대상에서 목소리 높여 선포한다 하여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선포만 해서 교인들이 은혜를 다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이든 영의 세계든 어떤 목표에는 과정이란 것이 존재합니다. 

먼저 이 땅에 태어나야 젖을 먹을 수 있고, 

더 성장하면 팔다리에 힘이 붙어 씩씩하게 기어 다닐 수 있고, 

걸을만한 근력이 붙으며 더욱 성장하면 뛰어다닐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이 모든 걸 하도록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먼저 새로 태어나야(거듭나야) 주님께서 은혜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영적으로 정해진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령이 함께하므로... 

은혜 안에 거하십시오, 은혜로 사십시오, 라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그 안의 성령께서 은혜로 인도하시기에 굳이 강대상에서 선포를 안 하여도 

이미 자연스럽게 은혜 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란 것은... 

회개도 거듭남도 또 그럴 마음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은혜받으라는 선포로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후 

간절한 기도와 영성과 거룩한 삶을 통해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을 향해 

듣기 좋은 은혜만 선포하지 말고 회개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먼저 선포하고 

십자가의 진리로 이끌어야 이게 합당한 순서라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접붙임 당하지도 않은 나뭇가지에 

줄기로부터 흐르는 수액과 영양분(은혜)을 많이 받으라고 한들 

저절로 수액과 영양분이 흘러들어 쑥쑥 성장하며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무조건 먼저 접붙임(거듭남) 당해야 영양분(은혜)이 흘러듭니다. 

이것이 순리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제자들이 기록한 4대 공관복음을 면밀히 살펴보십시오. 

은혜에 관한 말씀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말씀이.. 회개하라, 돌이키라, 자신을 부인하라, 거듭나라, 순종하라... 

이렇듯 십자가 통과에 관한 말씀으로만 거의 채워져 있습니다. 

십자가 통과 없는 은혜의 말씀은 없습니다. 

이런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강권적으로, 대부분 십자가(회개와 거듭남)를 위해 외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시작은 회개와 자기 부인과 거듭남이고, 

그것이 예수님의 날개(은혜) 아래 들어오는 실상적인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소제되길 거부하는 파이프에 어찌 생수(은혜)를 흘려보내겠습니까... 

생수만 오염되어 쓸모없는 물이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전하신 메시지를 한 구절로 표현하면... 

"너희가 먼저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 나의 은혜 안에 들어오길 구하라 

그러면 너희는 죽고 나로 살 것이며, 내가 너희를 천국으로 이끌 것이니라" 

바로 이런 메시지를 위해 3년 반 동안 고통당하며 사역하신 겁니다. 

 

새 생명으로의 거듭남은... 

성경 이론을 머리에 무수히 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들어가는 말씀은 죽은 인본적인 지식과 다를 바 하나도 없습니다. 

반드시 내 뜨거운 심장으로 말씀을 받아야 말씀이 살아 움직이며 

나를 새생명의 역사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부활 이후 

초대교회 시절, 사도들의 서신서에는 은혜라는 표현이 참 많이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시절은 회개하고 거듭난 성도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미 은혜 아래 들어온 성도들이라 

십자가(회개, 자기 부인, 거듭남) 말씀보다 은혜의 말씀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은혜의 말씀은 당연한 것이기에 아무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때와는 전혀 다르게 

지금은 영적으로 타락할 대로 타락한 제2의 소돔과 고모라 시대입니다. 

거듭난 성도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혼탁스런 시대입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회개와 거듭남의 십자가를 전하지 않고, 

은혜만 선포하며 가르친다면 그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이미 다 된 줄 착각하여 결국, 다 멸망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영성 좋던 초대교회 시절에도... 거듭나지 않았던 교인이 다 된 줄 착각하여 

내심 안심하고 은혜에 묻어가려는 이들이 어느 정도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전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열매를 통해)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열매가 없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구원)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갈라디아서 6장 3절) 

 

십자가(홍해, 광야)가 없는 가나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듭남 없는 교인들에게 먼저 회개와 거듭남의 십자가를 가르치지 않고서 

은혜로 다 된다고만 가르치면 자신은 정말 이미 다 된 줄 오해합니다

삶에서 육의 비릿한 죄성이 계속 드러나도 

교인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믿음과 은혜로 구원받은 줄 착각합니다. 

이렇듯... 헛된 확신으로 자신도 속이며 살다가, 결국 멸망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아무나 선생이 되려 하지 말고, 또 부득불 선생이 되었다면 

먼저 십자가 진리를 가르치십시오. 

죄 된 육으로부터 단호히 자신을 부인하라고 가르치십시오. 

이런 설교가 듣기 싫어 교인들이 떠나려고 해도 과감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들을만한(진리에 목마른) 사람은 반드시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 가르침으로 인해 단 한 생명이라도 

거듭나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대단히 성공한 목회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더욱 기뻐할 것입니다. 

 

이미 거듭나 새 생명을 얻은 선생은 

이를 잘 알기에 십자가 말씀에 대해 피를 토하듯 선포합니다. 

교인들도, 은혜만 강조하는 선생들의 달콤한 메시지만 섭취하려 하지 말고, 

먼저 4대 공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을 심장으로 먹어보십시오. 

아마 먹는 동안 참으로 힘들고 괴로울 것입니다. 

속에 감추어진 죄성들을 대략 은혜라는 말로 '퉁'치며 넘어가고 싶은데 

예수님의 말씀은 감추고픈 내 그걸 계속 드러내시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이런 말씀이 싫어지는 이유는 아직도 육을 쫓고 있어서 충돌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예수님의 십자가 말씀을 접해야만 어느 때가 되었을 때 

깊이 숨어있는 찌든 때(죄)까지 다 벗겨집니다. 

 

몸에 난 상처에 병균이 들어가면... 

소독약을 발라야 하는데, 바를 때에는 쓰리며 콕콕 찌르듯 아픕니다. 

소독약(예수님 말씀)을 발라야 병균(죄성)이 죽어가며 소독(회개)이 됩니다. 

내 몸에 악성 종기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수술이 매우 고통스러워도 

병원에 가서 종기를 칼로 째고 뿌리뽑아야 살 수 있듯 말입니다. 

이처럼 사람에게 달라붙은 죄성도... 

예수님 말씀으로 분리될 때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그 영적 고통(가난하고 애통한 상태)이 있어야만, 죄가 분리되는 것입니다. 

뜬구름 잡는 입술만의 은혜가 아니라, 실상의 진짜 은혜에 거하길 

주님께 간절히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그것은 십자가 좁은 문과 길이지만, 

그 길만이 내 속사람을 살리고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힘들어도 부디 그 길을 꼭 가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거듭나서 구원받으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장 3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