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믿음은...
거듭남을 전제하는 것이고, 거듭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저 주일 교회당만 열심히 다니며, 주여주여 한다고 믿음이 아닌 것처럼
입술로만 용서해달라는 것은 전혀 회개가 아닙니다.
그래도 회개는 하려는데...
말처럼 확 올라오는 뭔가가 없다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무슨 일이든 그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돌이키는 거듭남의 회개는...
내 진짜 모습이 보여야 회개에 대한 진짜 결단의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내 진짜 모습이 안 보이면 애통하고 가난한 심령이 되지 않습니다.
애통하고 가난한 심령을 통해 자기 부인의 마음으로 이끌리는데
자기 부인이 안 되니 회개가 될 리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첫째: 애초에 성경 말씀을 안 보기 때문이고,
둘째: 말씀을 보긴 하여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으나, 마음의 애굽에 있는
달콤한 포도주와 싱싱한 야채와 기름진 고기인 세상 매력과 내 자아에서
과감하게 출애굽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거부하여 그런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를 주면서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십니다.
자유의지는.. 마귀의 영역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역 중간에 존재합니다.
마귀는 사람을 자신의 영역으로 이끌어 죄로 멸망시키고자 하여
온갖 유혹으로 손을 잡으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반대로
너희가 죄에서 돌이켜 나와 함께하자며, 복음으로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선택은 중간지대의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의 멸망으로부터 구하고자
내미는 주님의 손길은 간절함이 넘쳐 애가 탈 정도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마귀의 영역에서 더 이상 머물지 말고, 죄에서 회개하여
나와 함께하자고 간절한 마음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죄로부터 돌아서라고
안타깝게 외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냥 강제로 붙잡아
옮겨놓으면 될 것을 말입니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입술로만 믿는 자들)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에스겔 33장 11절)
많은 교인들이 말합니다.
내가 죄 중에 있어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 믿기만 하면(?)
주님께서 은혜로 내 손을 잡아주시고, 다 알아서 구원시킨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분들 주장대로라면, 구원의 문은 너무나도 넓은 개선문이 될 것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너무 적다는 예수님 말씀을 농담으로 만듭니다.
이 얼마나 사람을 안심시키는 달콤한 말입니까...
죄로부터 돌아서려는 단호하고 진실된 결단의 마음도 없이
입술로만 '주여주여' 주님을 믿는다고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겠습니까?
또는, 창세전 구원이 예정된 자는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 때가 되면
알아서 구원으로 인도되고,
이미 창세 전 비참하게 버리기로 예정된 자는
아무리 주님을 잡으려고 한들 그 끝은 어쩔 수 없이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정하신 공의이고, 믿음의 원리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의롭고 공평하신 모습과는 거리가 멀게 됩니다.
이는 주님 스스로가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에 전면적으로 위배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스스로의 말씀대로.. 공평한 분이심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절대주권도... 의로움과 공평 안에서의 절대주권일 뿐이지
이기적 독재자 같은 절대주권이 아닙니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공)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시편 98편 9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67편 4절)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시편 96편 10절)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에스겔 18장 25절)
주님을 간절히 구하려 해도
지옥에 떨어지기로 결정되었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은 의미 없는 형식적인 메아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절대 우리를 실망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이는 사람 편의에 의하여, 사람을 좋게 하려 만들어낸 교리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는 창세 전이든 후든 언제나 공평하고 의로우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그 누구든지 기회를 주십니다.
"네거리 길(이 세상)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모든 사람들)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천사)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마태복음 22장 9-10절)
복음으로 불렀을 때 기회를 붙잡는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 기회를 붙잡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위의 서두에서 말씀드린 자신을 단호히 포기하고 회개하려는 결단입니다.
설령 결단 후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부득불 죄 가운데 또 휘말려들어도
은혜를 빙자하여 그 죄에 은근히 머물며 안주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애통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애굽(죄 된 세상)의 죄성과 습성들인
싱싱한 채소와 과일과 기름진 고기와 포도주와 같은 것들...
이런 것을 포기치 않고 애굽에 머물려고 하며, 현실에 안주하고자 한다면
나는 결코 홍해를 건널 수 없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걸 포기한 적도, 출애굽도, 홍해를 건넌 적도 없이...
이미 가나안에 들어갈 걸 확신하는 교인과 선생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과정을 다 이루셨으니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할 게 없고,
단지 예수님의 그것만 인정하면 모든 게 다 끝난다는 논리입니다.
그것은 마귀의 철저한 속임수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장 34절)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제 십자가를 들고 따라오라 하셨지, 구경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홍해도 애굽을 탈출하고자 결단하여 실행한 이들에게 열어주는 것입니다.
여전히 애굽의 달콤함을 누리고자 발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데
주님께서 무슨 명분으로 홍해를 열어주겠습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그냥 주님을 위해, 스스로의 능력으로 힘들게 뭔가를 하라는 의미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십자가는 죽었다 깨어나도 내 능력으로는 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어떤 상황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입니까...
죄를 끊고자 하는 결단을 말합니다.
단호히 결단하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라는 메시지입니다.
죄성에서 돌이키고자 결단치 않으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성을 가지고는 십자가의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못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즉, 죄를 미워하는 예수님 뒤를 어찌 죄성과 습성을 그대로 유지하려면서
따를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회개와 거듭남에 절대 이를 수 없습니다.
이는 주님의 절대 주권 영역이라 사람 마음대로 뭔가를 해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영은 오직 주님의 터치(비추임)가 있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위해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죄로부터 돌아서겠다는 참된 결단... 이것만을 강력히 요구하실 뿐입니다.
이 결단이 바로 주님을 구하고 찾는 이들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러면 홍해를 열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사람 중심을 면밀히 보므로 그 진실의 여하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주님의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회개와 거듭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애굽의 죄 된... 고기와 술과 채소에 대해, 단호한 포기를 결단하십시오.
그 대신에 주님께서 베풀어주는 하늘의 만나(거룩한 것)를 구해야 합니다.
애굽의 세상적 육적인 달콤한 미련에 발목 잡혀
수수방관 머물려고 하면서 주여주여 한들 아무 의미 없습니다.
애굽의 현실에 머물려한다면 홍해를 건널 수 없을 것이고 건널 수 없으면
결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주님을 믿으며 교회당도 열심히 나가고 있는데,
왜! 구원받을 자가 그렇게 적냐고... 이래서 과연 누가 구원받겠냐며...
이렇게 속상해하며 구원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는 분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홍해는 건너야겠는데, 애굽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기에 불안한 것입니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출애굽 할 결단만 한다면 더는 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출애굽 할 결단하고, 또한 그 결단대로 출애굽 하여 홍해 앞까지 온다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이 홍해를 열어줄 것이고, 홍해를 건널 것입니다.
건너면,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보호하며 인도할 것입니다.
구원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세상 미련을 버리고
주님만 바라보며 어서 결단의 자리로 속히 나아가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진 수명도.. 점점 끝을 향하여 화살같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든 예고 없이 닥칠지 모르는 질병과 사고로 인한 우리 개인적 종말과
가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예수님의 재림도... 거의 가까왔습니다.
더는 머뭇거릴 시간과 여유가 없습니다.
어서 이 땅의 모든 미련을 버리고 결단하십시오... 제발~ 어서요...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7)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요엘 2장 12절)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에스겔 33장 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