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 기아 상태에 이르면... 

어떤 사람이든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허기를 면하려 허겁지겁 먹거리를 찾아서 헤맵니다. 

동그란 것은 다 빵으로 보일 정도로 괴롭습니다. 

먹을 게 있으면 다행이지만 찾지 못하면 도무지 견딜 수 없어 괴로워합니다. 

이것이 배고픈 사람에게 나타나는 본능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누구든 100% 납득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뭔가의 문제 때문에... 

은혜에 굶주린 심령들에게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겠습니까... 

은혜를 받지 못하면 도무지 견딜 수 없으므로 가뭄에 논바닥이 쩍 갈라지듯 

매우 갈한 심령 상태가 되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의 늪에 빠집니다. 

그런 분들은 은혜를 공급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 하며 몸부림치려고 합니다. 

아마도,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 이런 분들을 간혹 본 적 있을 것입니다. 

하여, 평소에 안 하던 새벽기도회에도 참석하고, 기도원에도 종종 찾아가고, 

여기저기 말씀도 찾아보며, 온라인 신앙 카페도 분주히 찾아다닙니다. 

사실 이런 모습이 정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습들이 온전한 믿음을 원하는 기본적인 영적 상태입니다. 

이런 분들은 늘 은혜에 갈급해하며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지극히 이런 모습이 되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른 스펀지에 물을 뿌리면 순식간에 스며들듯, 

은혜에 굶주린 분들은 주님께 은혜를 받으면 바로바로 흡수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내 심령의 깊은 곳은 물 댄 동산이 되어 생명수가 흐릅니다. 

온갖 육적 세상적 잡념이 사라지며 더욱 집중하여 주님을 바라봅니다. 

하여, 늘 가슴이 두근거리며 감사와 기쁨이 벅차오릅니다.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마음의 평안과 자유함이 넘쳐납니다. 

주님을 사랑하듯, 내 이웃에도 사랑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주님 은혜의 날개 아래 들어온 심령들의 기본적 상태입니다. 

경험한 분들은 이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육의 모습이 아닌, 영의 거룩함으로 살려는 분들이기에 

이방인이 학수고대 탐하는.. 육과 세상적인 안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차라리, 몸의 허기는 견딜 수 있어도, 영의 허기는 도무지 견딜 수 없습니다. 

하여 이런 분들은 남에게 욕을 듣거나 무시를 당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비록 매우 가난하게 살아도... 

일용할 의식주에 만족하며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몸이 아프든 건강하든, 늘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기쁨만이 넘쳐나게 됩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분이 나를 관찰하시며 함께 한다는 걸 알기에 

두려움과 고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성으로부터 돌이키려는 단호한 마음도 없이, 

믿음과 은혜의 이론과 교리만 가득한 사람들은 이미 다 된 것으로 착각하여 

육으로 살고자 하면서도 은혜가 저절로 알아서 부어지는 줄 압니다. 

입술로는 은혜를 주장하나 참 은혜를 맛본 적 없기에 

은혜의 갈급함을 실상으로는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은혜은혜' 합니다. 

죄성이 성장할수록 자신의 심령이 죽어간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합니다. 

이는 스스로 살았다고는 주장하나, 죽어가는 자의 전형적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믿는다 주장하나 사실은) 죽은 자로다" 

(요한계시록 3장 1절) 

 

은혜에 목마른 분들은 주의할 게 있습니다. 

말씀으로 검증된 곳이 아닌 입소문난 어디 가서 뭔가 채우려 하지 마십시오. 

잘못된 곳에 가면, 그들의 올무에 걸려 더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은혜에 정말 갈급하다면... 

여러분들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성경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곧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이자 그분 자체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옆에 있는데 왜 어디서 무엇을 찾으려 합니까... 

그것은 사람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가서 누구에게 뭔가를 듣고 얻으려는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저도 참 힘들고 갈급했던 시절 기도원에 자주 드나들었으나 

헌금만 강요하는 목사님들 설교는 진정성이 없어서 귀에는 잘 안 들어오고 

내가 악한 죄인이란 사실에만 괴로워하여,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만 의지해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때, 그분을 만났을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이나 신앙 글을 읽고 이제는 충분히 알아듣고 깨달았으니 

더이상 필요성을 못 느껴 성경도 신앙 글도 읽지 않으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교만한 사람의 전형입니다. 

그런 분들의 그 모습은... 

깨달은 게 아니라, 성경과 신앙 글을 지식이나 정보로 인식하는 분들입니다. 

즉, 머리로만 들어가 지식화된 사람은 그걸로 만족하여 

나는 다 안다 하면서 말씀을 잘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장으로 말씀을 진정 깨달은 사람은 흐르는 물이 근처의 물을 당겨 

계속 흐르게 만들듯, 내 안에 들어와 흐르는 생명의 말씀은 

또 말씀을 잡아당기는 순환이 내 심령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기에 

계속된 영의 갈급증을 유발하여 말씀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다 아는 말씀이라도 매일 먹어야만 내 심령이 허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런 분들이 성경도 매일 접하고, 신앙글도 매일 읽는 것입니다. 

철로 만든 도구를 잘 닦아 반짝반짝 광을 냈어도 

이후 닦지 않고 방치하면 바로 붉은 녹이 난다는 걸 알 것입니다. 

녹이 밴 걸 오래 방치하다 닦으려 들면, 이미 녹이 철을 깊숙이 부식시켜서 

그 녹을 쉽게 없애는 건 쉽지 않듯, 말씀도 매일 먹지 않으면 육이 살아나고 

영이 피폐하게 녹슬기 때문에, 그걸 잘 알고 있는 깨달음의 사람은 

말씀을 매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접하며 은혜받고자 한다면... 

흔한 지식 서적을 읽듯 머릿속 세포만 자극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건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는 사람의 태도도 아니고, 마음 자세도 아닙니다. 

이 땅의 권세자 앞에만 서 있어도 그 기세에 눌려 납짝 움추려들면서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앞에 두고 그리 대할 수 있습니까... 

이는 결국, 기록된 주님의 거룩한 말씀을 인쇄된 글로만 본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성경은 그냥 예수님 행적을 기록한 서사에 불과합니다. 

기록된 말씀에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라고 예수님이 삭개오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 삭개오를 불렀구나' 

이렇게 제 3자의 관찰자 입장의 마음자세라면 그는 말씀을 생명이 아닌, 

그냥 성경서적을 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심령이 갈급하여 말씀을 생명으로 받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삭개오의 부름이 곧 나를 향한 부르심이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말씀을 접했다면 죄의 두려움으로 숨었던 아담이 바로 나인 걸 알게 됩니다. 

혈우병에 걸려... 갈급히 예수님을 찾는 여인의 장면을 읽었다면 

내가 혈우병 걸린 당사자의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여리고 성에서 구걸하던 소경 된 바디메오가 정말 갈급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구하고 있다면 내가 직접 갈급한 바디메오가 되어 

예수님을 구해야 하고, 바디메오를 데려오라는 장면에서 

나를 데려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은혜가 갈급해 주님을 간절히 찾는 심령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이 장면들이 

다 자신에게 향한 말씀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습니다. 

그리고 실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그 시대에 제한된 서사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성령으로 거듭났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5장 12절) 

 

이처럼, 성경은 나에게 직접 전하는 말씀입니다. 

당사자가 되어 직접 듣는 입장이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접한다면 

아마.. 심령에 지진이 나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며, 은혜가 느껴질 것입니다. 

이분들은 이미 말씀을 대하며 자신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마음 밭이 옥토로 기경 되어, 말씀의 씨앗이 발아된 것입니다. 

은혜는 그렇게 받는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주님을 찾고 구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은혜는 자기 자신을 단호히 부인하고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열망하는 분들에게 부어집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중략.................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9-13절) 

 

성경 말씀이 주식이라면... 

저 같은 사람들이 쓴 신앙 글은 참고적인 글에 불과합니다. 

그저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쉽도록 길라잡이 역할 정도에 불과할 뿐입니다. 

성경은... 거짓 없이 모든 진리를 100% 정확히 품고 있는 본질 자체입니다. 

갈급한 심령으로 성경 말씀에서 모든 것을 먼저 찾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이자 곧 주님을 옆에 놔두고 소문난 곳만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자길 내려놓는 뜨거운 심령으로 말씀을 대하다 병이 나은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을 대하다 예수님의 비추임을 받아 거듭난 분들도 있습니다. 

말씀을 대하다 자신의 이런저런 고통이 

오히려 영적 풍요의 복이자 은혜라는 사실임을 절실히 깨닫고 

고통의 은혜를 내게 허락하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몸의 병약함 때문에 육신의 죄를 짓지 못함에 감사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고난이 처음에는 힘들지만, 그게 은혜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실로 감사함이 넘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편 71절)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접하면서 말씀에 무너질 각오가 안 되어있는 사람은... 

그 자체가 말씀 능력을 스스로 거부하여 변화로 이끌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포기하길 거부하는 세상의 매력과 육적인 자아 등등... 

그것이 철저히 방해합니다. 

하여, 그런 이들은 말씀의 표면적 이론만이라도 붙잡아야 불안하지 않기에 

늘 말씀의 본질이 아닌, 말씀의 포장지만 붙잡고 배회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굴복하여 단호히 내려놓을 마음이 전혀 없으니 변화될 리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괜히 하신 게 아닙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누가복음 8장 5~7절) 

 

뿐만 아니라, 위에서 강조드렸듯... 

성경을 대할 때 제 3자의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읽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지식 주의나 교리에 깊숙이 물든 사람이 성경을 접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상태로는 아무리 말씀을 읽어도 변화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입술로는 '주여주여' 하면서도 생명으로 이끌리지 않기 때문에 

육의 모습이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말씀을 읽고 심령이 갈급하여 진실로 자기를 돌이켜 회개하고자 

단호히 결단한 분들이 말씀을 계속 접할 때는 각오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주님만 의지하기로 했는데 무엇이 걸리겠습니까... 

그 역사함이 실로 엄청납니다. 

말씀이 꿀송이처럼 얼마나 달콤한지 계속 먹고 싶어 집니다. 

말씀 하나하나가 얼마나 은혜로운지 영적 엔돌핀이 온 심령에 넘쳐납니다. 

말씀마다 활활 타는 칼날이 되어 내 심령 속을 강력하게 찌르며 들어옵니다. 

말로만 듣던 은혜의 본질이 실상으로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먹는 그 말씀은 주님께서 직접 내게 전하는 말씀임을 알기에 

내 심령이 뒤집히는 지진이 일어나며 생명으로 역사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되어야 진정 말씀을 접한 것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자길 포기하기로 결단한 자)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자길 부인하고 회개할 준비가 된) 자는 들으라

(마태복음 13장 3-9절) 

 

이렇게 은혜받은 심령이 되면... 

육과 세상과 죄의 길에서 피하게 하여 주님의 거룩성을 닮아갑니다. 

좁은 길, 십자가의 길, 순종, 천국 침노가 익숙해져 부담스럽지 않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드는 분명한 영적 실상입니다. 

이 땅의 은혜는 악인이나 선인에게나 비와 햇빛을 주듯 다 주어지지만, 

내 영의 생명을 살리는 은혜는 입술로만 '주여주여' 한다고 받는 게 아니라, 

내 모든 걸 포기하고 주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분들에게만 허락됩니다. 

부디~ 꼭 은혜받아 구원받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의(주님의 거룩한 뜻과 충만한 은혜)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성령 충만)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6절) 

 

내가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고린도전서 15장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