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절린드는 영국에서 자랐으며 대단히 학구적이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로절린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게 되었는데,
노숙자를 돕는 일이 관련된 직업이었습니다.
그는 신체장애나 학습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도왔습니다.
하는 일도 만족스럽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했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왜 사는 걸까?’,
‘인생의 목적이 뭐지?’ 하는 의문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인간에게는 이성이 없는 동물과는 달리,
과거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계획하고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삶의 주된 목적이
부와 명예를 얻어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골 청년이 서울에 올라와 공부하다 잠시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이제 철이 든 그는 고생하시는 아버지 농사일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쟁기질을 해봅니다.
그런데 이리 삐뚤 저리 삐뚤거립니다.
밭두렁에 앉아 지켜보던 아버지가 소리칩니다.
“얘야, 그냥 무작정 하지 말고
기준이 될 만한 목표물을 보면서 해야지.”
그 말은 듣고 청년은 건너편에 서 있는
소를 보면서 쟁기질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전히 삐뚤거립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껄껄 웃으면서 말씀합니다.
“소는 움직이잖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해야지.
저쪽 느티나무 보면서 해 보거라.”
그 말을 듣고 그대로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똑바로 밭을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과 영원히 교제하는 것에 두어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영광 돌리며
천국에서의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것입니다.
목적이 있는 삶으로 후회 없는 인생, 의미 있는 인생,
영원히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것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에 대해
성경은 우리 삶에 목적이 무엇이여
어떻게 살아야할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삶의 목적을 찾고 또 발견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은 막대한 부를 쌓았고 쾌락을 추구해 보았지만,
그것이 목적 있는 삶을 살게 해 주지는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목적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모든 것의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전도서 12장 13절>
솔로몬왕은 자신이 살아 왔던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주는 허망함을 얘기한 후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을 통하지 않은 다른 목적을 위한 추구는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우리 자신들을 이끌게 됩니다.
돈, 명예, 쾌락 등이 그런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세상이 부러워할만한 물질을 소유하는 것인가?
누구나 알아주는 명예와 권위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일까?
교회가 십자가를 걸어놓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나
실상은 기복신앙과 황금만능주위에 휩싸여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이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에 너무 소홀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문자적으로 사는 것도 우습게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살려주신 은혜가 너무도 커서 다시 일어나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향해
전력투구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나와 여러분은 목적을 향해 질주합시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답게 목적을 향해
올인하는 믿음의 많은 열매로
하나님의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삶을 삽시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내는 삶을 삽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합시다.
부도, 명예도 이 땅에서의 성공은 잠깐입니다.
진정한 성공 인으로 살기를 원하신다면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내 인생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깨달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