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믿음을 말할 때, 

관념으로 인식하여 입술로 동의만 하면 그것을 믿음으로 여깁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혼의 지각에서 오는 자기 확신적 신기루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 허상의 신기루 믿음을 붙잡고 구원을 당연시 여긴다는 것입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걸 믿음으로 알다가 호흡이 멈추면 

엄청난 낭패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표현드리자면, 

온전한 믿음은... 신(주님)의 성품에 참예(주님 성품을 닮아감)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주님 외의 모든 배설물)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베드로후서 1장 4절) 

 

그렇다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그저 믿습니다 하며 교회당만 열심히 다니면 신의 성품에 참예한 것일까요? 

주님께서 교회당 안에 임재하시니까,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예한 것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대부분 선생들은 그런 경우를 두고 

신의 성품에 참예했다 가르칩니다. 

그런데 선생들의 확신적 가르침과는 전혀 다르게, 교인들은 계속... 

주님의 거룩한 성품이 아닌, 육신이 이끄는 속성대로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신의 성품에 참예한 적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거듭난 참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주님의 성품에 참예하여 빛과 소금의 영성에 이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모습이 진정 신의 성품에 참예한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적인 상태입니다. 

너저분한 나의 악한 옛 구습을 버리고,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분께 굴복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라가야만 비로소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됩니다. 

즉, 나를 부인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이 모든 여건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영접(접붙임)돼야만 

주님을 진짜 영접한 것이고, 신의 성품에 참예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아는 게 있는데... 

주님은 내 의지로 영접하는 능동형이 아니라, 영접되는 수동형입니다. 

성령님이 내가 오라고 하면 오시고, 가라고 하면 가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초신자들에게 사영리 주님 영접식을 하면 영접되었다 가르칩니다. 

그리고 초신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구원을 선포하니 다 구원받을 것 같습니다. 

또 구원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과 구원의 증거라며 가르칩니다. 

참으로 듣기에 좋고, 소망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이게 주님 영접의 증거라면, 과연 누가 구원받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구원받을 사람이 매우 적다 하시니 (눅 13:24 / 눅 18:8 ), 

어느 쪽 선포가 맞습니까... 설마... 예수님께서 틀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거짓 선생들이 거짓 구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님 영접은 내 신체의 입술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타락해 아버지를 떠났던 탕자가 지금까지의 모든 죄성에 대해 진정 고백하며,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단호히 결단하며 실제 돌아갔을 때(자기 부인, 회개), 

주님의 반응(은혜)으로 결정됩니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단호히 결단하면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자기 부인, 회개)"  (누가복음 15장 18-19절) 

 

죄인인 탕자가 이렇게 했을 때, 아버지인 주님은 어찌 반응하십니까...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영접됨) .........중략..........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누가복음 15장 20-24절

 

이것이 진정 복음에서 전하는 주님 영접입니다. 

십자가(자기 부인, 회개)없는 입술만의 주님 영접은 애초에 존재치 않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진짜 영접되었다면 내가 계속 육의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요? 

내 안의 성령께서...  

내가 계속 육의 모습으로 살도록 수수방관하며 내버려 둘까요? 

만약 수수방관하고 계신다면... 성령께서 내게 오신 목적이 전혀 없게 됩니다. 

이미, 그 현상 자체로 믿음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늘 비유적으로 드리는 말씀이지만... 

주전자 안에 뜨거운 물이 들었다면 당연히 뜨거운 물이 쏟아집니다. 

내 안에 뜨거운 물이 들었노라(주님을 믿노라, 주님을 영접했노라)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찬물이 계속 쏟아진다면(육의 죄성이 습관적으로 쏟아진다면) 

나는 진실에는 귀를 닫고, 거짓에 의존하는 자가 됩니다. 

결코 열매는 못 속입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제가 아는 장로님이 재촉하여 베놈이란 영화를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영화 자체보다, 영적인 무엇을 암시하는 것 같아 호기심에 봤습니다. 

그 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악한 생명체가 어떤 사람에게 들어가자 평범했던 인간이 

엄청난 능력을 행사하며, 주변 사람을 죽인다든지 하는 악한 짓을 행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선한 생명체가 들어가니 

위험에 빠진 시민들을 구하는 매우 선한 능력자로 변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영화지만, 제 관점에서 보면 영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선악과를 먹은 채, 그대로 산다면 늘 죄 가운데 사는 것이고, 거룩의 존재인 

주의 성령님이 임재하면..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산다는 걸 

그 영화를 통해 아주 입체적으로 느꼈습니다. 

 

이처럼,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의미는... 

내가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의지대로 살아야지 해서 사는 게 아니라, 성령님의 이끄심입니다. 

이는 곧 말뿐이 아닌, 진정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성령으로 거듭나야 진정 믿음이 있노라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너희가 믿음이 있노라 주장한다면)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장 2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성령으로 거듭나면) 

너희가 육신(죄성)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거룩한 주님의 영성 안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9절) 

 

위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신의 성품에 참예 해야(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참믿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죄성의 DNA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거룩한 DNA로 바뀌는 것입니다. 

죄성의 DNA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DNA로 바뀐 그리스도인들은 

틀림없이 그에 합당한 영성이 나옵니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삶에서 주님의 거룩한 모습)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거짓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서 2장 14절) 

 

위 말씀은... 주님께서 정한 불변의 법칙입니다. 

신의 성품= 자신을 부인하고 돌이킴, 회개, 거듭남, 순종... 

나는 정말 신의 성품에 참예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DNA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심사숙고 점검하시길 간절히 권면드립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는 사도 바울의 영적 믿음고백을 끝으로

글을 마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위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진짜 못 박혔다면... 

내 육적 삶을 부인하며내 안에 계신 예수님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나를 그렇게 살도록... 

이끄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