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강력한 요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음을 봅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된 말씀만 접하고, 깨달았노라 하며 갈무리만 하려 듭니다. 

그건 지식으로 쌓여진 가짜 신앙이기 때문에 말로만 믿는다고 할 뿐, 

순종의 능력이 부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순종은... 머리 지식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내 심장이 움직여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믿음이 있다)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순종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장 21절)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믿노라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순종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6장 46절)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2절)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지식 신앙은 머리로 동의하는 학문적 분야일 뿐, 참 신앙이 아닙니다. 

정말 주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분의 요구를 묵상하며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갔던 성경 속의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보십시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분들은 말씀에 순종하며 그 길을 갔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여기서 그분들과 내 믿음의 삶이 많이 다름을 보게 되면서 혼란에 빠집니다. 

그래서, 자신을 정당화 하고자 이렇게 핑계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사람이니 당연히 우리와 다르지 않겠어?" 

솔직히.. 성경에 기록되었다 한들 그분들이 우리와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그분들 역시 우리와 시대만 다를 뿐, 주님께서 창조한 똑같은 인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듯, 

그분들 역시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뭐가 다르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과 나를 억지로 구분하여 정당화하려 한다면 

믿음의 선진들은 천국으로, 나는 지옥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솔직해야 합니다.. 그분들은 온전한 믿음을 소유한 분들이었고, 

우리는 그분들이 소유한 믿음이 없는 것뿐입니다. 

그게 불편한 진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노아의 믿음과 순종에 고개를 끄덕이며 위대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접근할 뿐.. 그 이면 속에 감춰진 사실은 외면합니다. 

120년 동안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아냥과 조롱을 감내하며 

열심히 방주를 만든 노아의 순종은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나에게 아무 상관 없는 그 시대의 훌륭한 조선공일 뿐이고, 

그저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아브라함의 순종적 믿음을 대단하게 여기며 존경심마저 느낍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바칠만한 믿음과 순종은 슬며시 외면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그저, 성경에나 등장하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인식한 것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요셉 같은 믿음으로 한 국가의 위대한 총리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형제들에게 버려져 애굽의 노예로 끌려가 고초를 당할 뿐만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십수 년 동안 지하감옥에서 겪은 가혹한 연단은 

철저히 거부하며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요셉 총리의 번듯한 모습만이 나의 로망으로 자리 잡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계획에 의한 요셉의 이런 파란만장한 삶의 모습은 

나에게 아무 연계성도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다윗같이 하나님으로부터 합한 자라고 인정받길 원합니다. 

하지만, 왕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 사울을 통한 고통의 연단과 왕이 되어서도 

자식에게 배신 당하면서까지 괴로웠던 파노라마적 모습은 내키지 않습니다. 

그저, 왕이 된 다윗의 표면적인 모습과 주님께 합한 자란 칭찬만이 

나의 최종 바램일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바벨론 총리 다니엘의 위대한 지혜와 믿음을 원합니다. 

하지만, 우상숭배를 단호히 거부하며, 담대한 믿음으로 사자 굴에 들어가는 

아찔한 상황은 외면합니다. 

그저, 그의 믿음과 지혜로 하나님께 사랑받은 다니엘만 원합니다. 

 

세례 요한, 베드로, 사도 요한, 야고보, 바울... 

그 외 믿음의 선조들은 모두 주님의 은혜 아래 있던 분들입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믿음이 부러워서,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겪었던 셀 수 없는 핍박과 고난과 희생과 순교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들이 주님을 잘 믿었기에,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내 죄를 사해준다는 그리스도의 보혈 피는 지극히 원하지만, 

산상수훈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자기 부인, 회개)말씀은 너무 부담스럽기에 

다 외면하고 은혜만을 누리며 천국을 소망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는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세상적 달콤함과 육신의 속성을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썩 내키지 않습니다. 

 

나에게 뜨거운 은혜가 부어지길 원합니다. 

하지만, 은혜받은 사람로서의 합당하고 거룩한 삶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싶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을 읽는 것과 그 말씀이, 내 삶과 동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나와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로 여기며, 말씀을 아는 것에만 만족합니다. 

뿌린 적도 없이 달콤한 열매만을, 심은 적 없이 풍성한 수확을 기다립니다. 

이처럼, 이 모든 것은 바로... 십자가 과정이 철저히 생략된 육적인 상태로 

결과만 취하려는 도둑 신앙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7절) 

 

사랑하는 여러분~ 

위에 쓴 이런 모습들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면... 

더는 믿는 자도, 거듭난 자도, 은혜의 사람도, 그리스도인도 아니란 겁니다. 

그저 세상 이방인들이 쉴 때 교회만 출석하는 또 다른 이방인들일뿐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끈적한 세상적 육적 죄의 속성을 

절대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진짜 뜨거운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은혜받을 만한 성도로서의 거룩한 삶을 피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그리스도인(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이 되고자 원한다면... 

그리스도인 소리만 들으려 하지 말고,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을 닮으려는 십자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자기 십자가도 필히 감수해야 합니다. 

십자가(자기 부인, 회개)가 없는 달콤한 결과주의는 

거짓이며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부디, 자기 십자가를 들고 천국을 침노하는 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것만이 구원받는 유일한 외길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 (누가복음 9장 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