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홉 살 때 

시골에서는 초여름 농번기 때 모내기를 합니다. 

벼 모종 묶음을 일하는 분들께 여기저기 나르는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발목 근처에서 간질거리고, 따끔거림을 눈치채게 됩니다. 

기분이 이상하여 논두렁의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으면...

거머리가 붙어 피를 빨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경악하여 거머리가 붙었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울었습니다. 

우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왜 우는지 벌써 눈치채고 달려와서는 

예리한 낫으로 발목살과 거머리 사이에 대고 면도하듯 

거머리를 떼어냅니다. 

거머리가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피가 줄줄 흐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피가 그렇게 흐르면서도 아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간질거려 긁고 싶은 기분입니다. 

그런데 거머리에 물리면 거머리의 히루딘이라는 성분 때문에 

지혈이 안 되어 애를 먹는데, 이럴 때 농부들은 히루딘이 뭔지 몰라도 

치료하는 전통적인 민간요법이 있습니다. 

피우던 담뱃불을, 상처 부위에 대고, 무지막지하게 눌러 지져버립니다. 

그리하면 살이 익으면서 지혈이 되는데, 엄청 뜨거워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어릴 때, 이 징그럽고 흐물거리는 거머리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도 거머리만 보면 왜 그리 싫은지, 거머리에 한 번 물려본 사람은 

바로 이해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거머리도 있지만 

진짜 무서운 거머리는 바로 영의 거머리인 마귀입니다. 

마귀는 지독하게 사람에게 달라붙어 죄를 범하도록 악한 생각을 넣고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고 또 괴롭힙니다. 

마귀 거머리를 떼어냈나 싶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달라붙어 또 그러고 있음을 봅니다. 

이 마귀 거머리 때문에 절망하여, 왜 이것 하나 완전히 떼내지 못하고 

이렇게 사나 하며, 정말 괴로운 나머지, 죄를 넣는 이 영의 거머리가 

참 넌덜머리 날 정도로 싫어집니다. 

 

일하는 농부들이 

거머리를 몇 번 떼어냈다고 다음에는 안 붙습니까? 

거머리를 떼어낸 농부에게 거머리는 또 다가와 일하는 중 또 붙습니다. 

그러면 일하다가 '아~ 또 붙었네' 눈치채고 떼어내길 계속 반복합니다. 

이것이 논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일상적 삶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는다는 우리에게 

영의 거머리인 마귀가, 내게 붙었는지 아닌지, 어떻게 눈치채겠습니까... 

내 뭔가로 인한... 싸늘한 양심적 찔림이 요동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이는, 내 양심의 레이더가 죄를 감지해 알리는 신호입니다. 

이런 현상이 바로... 애통함 입니다.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란 주님의 싸인입니다. 

그 싸인이... 바로 주님이 우리 죄인에게 주시는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싸인을 무시하고... 

그대로 방치하려 든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내 영혼은 점점 피폐해져, 죄에 대해 점점 더 무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마지막은 결국, 멸망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사는 한... 

마귀의 공중권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로지... 천국에 들어간 영들만이, 죄에 대한 애통함이 없을 뿐입니다. 

그곳은 죄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육신일 때 느끼던 마음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장 4절) 

 

천국이 아닌, 죄의 이땅에 살면서도...   

애통함이 없는 사람은 정말 위험한 상황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해, 양심에 화인맞아 딱딱하다거나 

'어떻게 인간이 죄 없이 살아, 그러니 은혜가 필요한 것이지...' 이렇게 

정신승리하며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곡된 은혜만 무조건 앞세워 자기 죄를 합리화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죄에서 해방되었다거나, 죄에서 자유함으로 곡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통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땅에서 죄 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죄가 항상 있기 때문에... 매일 옷을 빨라(회개하라) 하시는 이유입니다. 

즉, 죄에 대한 애통함의 은혜 때문에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제대로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는 참된 의미는...

보혈 피의 은혜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순식간에 다 사라졌으니

죄 가운데 살려면서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서 자유한 게 아니라, 

죄가 내게 다가왔을 때 내 안의 성령님께서 죄를 거부하려는 민감함을 

주셔서, 애통의 마음으로 회개시키기에 죄로부터 자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통과의 거듭남이 이리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애통한 자에게 복이 있다 하신 근거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즉, 애통의 은혜가 회개로 인도하기에 복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흔히 행하는 

주님 영접식에서 죄의 문제가 보혈 피로 다 해결되었으니

이제부터는 굳이 회개가 필요 없다 하며.. 자유하다고 확신하는 분들은 

제발 사람의 육만 이롭게 하는 헛된 교리에서 조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그대로 방치하다가 양심에 화인 맞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사람의 교훈, 교리)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죄 짓는) 자들이라 

(디모데전서 4장 1-2절)

 

꼭 기억하십시오. 

죄와의 전쟁은 이 땅에 사는 한 계속됩니다. 

하여, 주님께서는 내 양심을 찌르는 애통함의 은혜로 인해 

우리는 매일 회개하여 죄의 거머리인 마귀를 매일 매일 떼내야 합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다는 것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눈치 못 채는 게 교만이고.. 죄를 눈치채는 게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알고 애통한 사람은 늘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영적 본질입니다.  

 

오늘 구매한 옷도, 입으면 바로 때가 묻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그대로 두지 않고, 세탁하려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로 인해 심장이 찔리는 애통하고 상한 맘이 올라온다면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신호이니 어서 회개의 자리로 가십시오. 

이럴 때... 

주님께서는 기뻐하며... 회개하는 우리를, 따뜻하게 위로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한... 죄로 인해 늘 애통하듯, 회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죄와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죄로 인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