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요 3:14-1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시 42:5)

 

믿음이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을 주님의 죽으심과 동일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더 이상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도 바라보는 이유는 믿음을 견고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그 때에 자신을 죽은 자와 동일시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볼 때

자신에게 속한 정욕이 달아나며

아픔과 고통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십자가 복음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안에 갇혀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그 안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말하기를 멈추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과 동일시하려 할 것입니다.

 

믿는 자는 잠잠히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스스로 뭔가를 행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자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중요치도 않는 논쟁이나 비난이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믿는 자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나타나심을 구하는 자입니다.

자신이 살지 않고 그분의 나타나심을 보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요, 만족이기 때문입니다.

행여 자신의 실수나 잘못이나 죄가 감지 되었을때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은

헤어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져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며 바다 위를 걷다가

바람과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여 물에 빠져드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의 승리는 주님만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는 사람은 의미없는 헛된 일을 행할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의 능력이 그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혹 헛된 일처럼 보이는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은 주님의 일하심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자가 믿는 자입니다.

믿는 자는 자신을 주님의 죽으심과 동일시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만을 언제나 바라봅니다.

 

그럴 때는 주님의 나타나심과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지 않고 십자가 주변에서

서성대는 사람들은 주님만을 바라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구경꾼들이며 믿는 자와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인정은 하지만

자신이 십자가에 참여하는 것은 꺼려합니다.

 

십자가 주변에는 언제나 구경꾼들로 넘쳐납니다.

그들은 십자가 복음을 듣고 그 복음에 대해서 말은 하되

자신들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과 동일시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믿는 자는 침묵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자는 말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행할 일을 행한 후에는 그는 다시 주님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말 수가 현저히 줄어들 때는 십자가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는 일을 행할 때에도 묵묵히 행합니다.

몸은 일할지라도 마음 중심으로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이론으로 아는 자들은 침묵의 유익을 모릅니다.

 

그러나 침묵하는 것과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주님을 바라보기 위해 침묵하는 것은

사람편에서 시작된 믿으려는 행위에 불과하며

그것은 자신이 믿음에 이르려는 고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는 쓸모없는 행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침묵을 연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며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는 행위이므로

외형은 경건하며 바르고 좋아보이나 결코 믿음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스스로의 고행과 경건은

단지 믿는 자처럼 보이게 할 뿐입니다.

 

믿음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전적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진흙 한 덩이가 공예가의 손에 맡겨지듯이

완전히 수동적인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토기장이이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으로

빚어주시도록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고 난 후엔

자신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관여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주님의 일하심입니다.

 

그 때에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십시오.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주님의 열심으로 된 일입니다.

 

믿는 자는 언제든지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이며 또한 신뢰치 못하게 하는

자신의 머리속의 생각을 부인하기 위해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면 그분을 신뢰하게 되며

계속해서 자신을 드리게 됩니다.

 

주님만을 바라볼 때 평안함을 느낍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일이

주님께 속한 일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볼 때 믿음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난관 중에도 낙망치 않는 것은

주님만을 바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만을 바라고

자신에 대해 죽는 십자가의 삶을 사셨습니다.

 

또한 죽기까지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십자가의 삶을 완성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버려두고 항상 아버지만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만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을 주님의 죽으심과 동일시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이끄심과 일하심이 시작될 것입니다.

 

아무리 오랜 믿음이 있었을지라도

믿음의 진보나 변화가 없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자기 것으로 아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소망을 두지 말고

우리의 모든 것 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이 죽어있는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자신이 살려하는 의도를 버라십시오.

그리스도의 긍휼히 여기심과 그리스도의 일하심이 시작됩니다.

 

그분의 일하심은

당신이 자신의 내면의 악함을 보게하는 것입니다.

결코 용납받을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버린

자기 자신을 보게 하십니다.

 

람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른 채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 데에 있습니다.

자신의 비참한 존재를 분명히 아는 자만이

침묵할 수 있으며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느새 주님을 닮아있을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정확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