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믿음의 열매에 대하여 참 헷갈린다고 합니다. 

내가 믿노라 한다면 뭔가를 인위적으로 해야 하는 것인가... 

내키지는 않지만 없는 선행도 찾아서 해야 하는 것인가... 

이는 믿음과 거듭남과 열매에 대하여 

아직 그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렇습니다. 

 

뭔가를 하기때문에 믿음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열매가 자연스럽게 나를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란 성령으로 거듭난 상태를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내 안에 오신 것을 말합입니다. 

 

내가 거듭나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주님께서 그냥 두 손 놓고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과 은혜만 강조하는 어떤 목사님들은... 

믿음과 은혜만 있으면 되기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행위가 되기에 

종교의 영에 잡힌 자라고까지 합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분들은 성령 훼방죄를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이게 종교의 영에 갖힌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시키려는 마귀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내게 오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려고 한들, 

내 안의 성령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성령께서 나를 통해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강하게 자극하시는데 

불쌍한 사람을 보고 그냥 외면하며 버틸 수 있겠습니까? 

아니... 버티는 게 더 괴롭고 힘듭니다. 

버티는 것은 오히려 불순종이 되기에 책망을 받는 불법입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라고 

그리 강조하면서 어찌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까... 

가르치는 선생이 거듭남 없이 헛된 교리로만 가르치려니 

거듭남을 이해하지 못하여 

이렇게 앞뒤 안 맞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선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 긍휼의 마음, 인내하는 마음 등등... 

이런 모습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기록된 

주님의 성품(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내가 거듭나 성령님이 오시면 이런 주님의 선한 마음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에게 심어지며 동화됩니다. 

그로 인하여... 주님의 거룩한 성품이 

주님과 연합된 나를 통해 아주 당연할 정도로 발현되기 때문에 

빛과 소금의 거룩한 열매가 내 삶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증거하는 

거듭난 믿음으로 인한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이는 내가 억지로 뭘 해야지 하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주님께서 하시기에 아주 당연할 정도로 

기쁨이 되어 강하게 배어 나옵니다. 

절대... 힘들거나, 괴롭거나, 스트레스받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내 인간적 의로 한다면, 분명히 그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의 주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는 것이라면 

힘들고, 고통받고, 스트레스에 시달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짐을 주님께서 대신 져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믿는다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1서 5장 3절) 

 

만약, 힘든 생각이나 스트레스가 다가와 하기 싫어진다면 

이는 처음부터 지옥만은 면하고 천국에 가기 위한 

계산적인 내 의로 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내 의로 하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그 한계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일은 그 한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 곁에 가는 그날까지 그 열매는 기쁜 마음으로 계속 맺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것을 또 다른 말로 주님을 실상 영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았어도, 진심으로 거듭나려는 자는 

시키지 않아도 주님 앞에서 선한 모습을 스스로 행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행위 믿음이라는 오해의 소지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자식이 앞으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바르게 살겠다고 

맹세하면서도 여전히 악한 모습으로 살려고 하거나 산다면 

부모님께 한 맹세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맹세는 분명히 거짓입니다. 

부모님도 이런 것쯤은 단번에 알아보고 매우 가슴 아파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맹세한 자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부모 마음을 어지럽히는 삶을 살려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회개하고 거듭나고자 하는 분들도 

주님 회개합니다... 저는 거듭나서 주님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원하면서 여전히 세상에 물든 모습을 거부하지 아니하고 

세상 이방인과 구분 안 되는 모양으로 산다면 

그 모습이 과연, 회개하려는 사람의 태도일까요? 

이런 모습은...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의 모습이 전혀 아닙니다. 

여전히 내기 기준이고, 세상에 물들어 살길 좋아하고 즐기면서 

그저 입술로만 회개합니다, 거듭나고 싶습니다,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계속 이런 모습에 의존한다면... 주님께서 반응하시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결코,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주님께서 은혜를 내리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징계를 걱정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 중심까지도 살피시는 주님께서 

입술과 관념적인 나태한 고백에 속으실 리 없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사도행전 10장 2-4절) 

 

고넬료는 주님을 찬미하며 항상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영접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의 마음은 세상과 섞이지 않고 순수하게 

늘 하나님을 만나려고 했던 자였습니다. 

진실로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기에 

당연히 하나님을 간절히 만나고자 했을 겁니다. 

그와 더불어... 주님을 구하는 자 답게, 그가 가진 것으로 

불쌍한 백성들을 구제하길 힘썼습니다. 

고넬료는 구하는 기도와 그의 행동이 진심으로 일치했습니다. 

왜 일치했습니까... 

그의 마음은 육적인 계산이나 거짓 없이 순수했기 때문입니다. 

진심이었기에 당연히 기도와 삶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로마의 장교였고 그가 도운 백성은 로마인이 아닌, 

그들 기준으로 이방인인 유대 사람이었습니다. 

내 동족이 아닌 남의 족속을 돌보기란 인간의 심리상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나고자 했기에 

유대사람과 로마사람들의 신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두 하나님께 난 같은 형제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행했습니다. 

이런 고넬료의 모습은 주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보기 좋았고 

그의 중심을 살피신 주님은 은혜를 주시기로 작정하십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사도행전 10장 34-35절) 

 

위 말씀에 기록되었듯 주님은 '척'하는 모습은 절대 안 보십니다. 

오히려 아주 가증스럽게 여기십니다. 

그 마음 중심이 진정 순수하게 하나님을 원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일 때 모두 받으십니다. (성령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뵙기를 원하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의를 행할 수밖에 없는 마음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고넬료에게... 주님의 거룩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사도행전 10장 44-46절) 

 

이렇게 고넬료는 성령을 받는(영접받는) 엄청난 은혜가 부어졌습니다. 

고넬료가 어떻게 성령을 받았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사실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고넬료의 이 모습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역사는 다양하고 

그분의 절대 주권을 우리가 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심성은 

세상 가운데 있어도 육적인 습성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늘 고넬료와 같이 주님을 구하는 자답게 

그들의 마음은 늘 주님께로 향하기에 선한 모습으로 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진정... 

간절히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려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과 삶도 없이 구원만 받으려고 

입술로만 '주여주여 성령을 주시옵소서'라고만 한다면 

한평생 그저 입술로만 외치다가 호흡이 멈출 것입니다. 

 

고넬료처럼 주님을 간절히 구하는 자의 선한 행위는 

거듭남 없이 교리에 물든 자들이 흔히 말하는 행위 믿음이 아닙니다. 

이는 주님을 구하는 자의 당연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도 없이 입술로만 그럴듯하게 주님을 외치는 자의 모습은 

주님께서 단호히 외면하십니다. 

주님은 거짓된 입술이 아닌 그의 삶을 먼저 살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물론, 거듭나려는 사람들은 주님의 뜻을 알고자 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도 열심히 접합니다. 

주님을 모르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때부터 내가 아닌, 

내 안에 오신 성령께서 

나에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성품)를 심어주셔서 

그분의 이끄심대로 순종하며 따라가게 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깃든 그 특성에 따라 나를 통해 나오기에 

당연히 세상에서 주님의 영광을 높이는 빛과 소금의 모습이 됩니다. 

어딜 가든 항상 그분의 성품이 나를 통해 나오므로 

주님을 사랑하듯 내 이웃에 대하여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이제는 거듭났기에, 거듭나기 전의 고넬료처럼 

주님을 구하는 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스스로의 선한 삶이 아닌, 

주님이 임재하셔서 직접 이끄시는 거룩한 모습이 되었으므로 

주님을 닮은 자가 되어 끝까지 순종하며 구원받는 대열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고자 하는 사람의 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근거를 바탕으로 올려봤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믿음' 노래하는 입버릇처럼 외치는 그 '믿음'이란 게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야 믿음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 전에 육으로부터 완전히 돌이키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찾는 사람은 당연히 회개하게 되어있습니다. 

또한, 회개하려는 사람은 당연히 고넬료처럼 그런 삶을 삽니다. 

그게 바로 자기 부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간절히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면... 그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 보혈 피로 죄를 사해주시고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즉,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그게 믿음이고, 

믿기에 성령님의 성품이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럽게 나를 통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실상으로 믿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을 곧, 그리스도인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사람이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에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라디아서 5장 25절) 

 

그러므로, 거듭나려는 사람의 진정으로 하는 선한 행위와 

성령으로 거듭나 그분에 이끌려 나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성령의 선한 열매에 대하여 함부로 잡스러운 행위로 몰아가면 

주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악한 입술로 스스럼없이 편한 마음으로 정죄하지 마십시오. 

그랬다가는... 

정말 그날이 되어 이를 갈며 후회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성령을 모독하여 훼방하는 사람은 절대 죄 사함이 없습니다. 

 

복음이 아닌, 교리에 끌려가는 분들은 말하길... 

마치, 바리새인들 처럼 마음에도 없는 걸 

자기 의로 꾸역꾸역 하는 사람들과 

상한 심령이 되어 진정으로 거듭나려는 자, 또는 이미 거듭난 자를 

같은 부류의 행위주의자로 몰아세우는데,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그 마음의 중심에 있는 

출발점의 동기 자체부터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 두 경우(거듭나려는 자와 거듭난 자)를 

함부로 행위 주의자로 폄훼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를 부정한다면... 

주님을 만나기 위한 고넬료의 순수한 모습과 이로 인하여 

주님께서 고넬료에게 행하신 성령의 역사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제 진정한 믿음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 믿음만이 우리와 주님의 관계가 회복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멸망당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거듭나) 

그분(성령)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찾으며, 머리만 거듭나려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런 자는 종교의 영에 잡혀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다가 끝납니다. 

그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향해 제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내 안에 있는 심장이 거듭나려고 해야 주님께서 응답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