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을 종종 “거룩하신 자”로 부른다.

그 이유는 모든 도덕적 탁월함이 그분 안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일 1:5)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합 1:13)

 

거룩함은 신적 본성의 정화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모든 죄를 미워하신다.

죄가 심판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종종 죄인들을 용서하시지만 죄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신다.

 

죄인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형벌을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라고 

말씀하는 이유이다.

 

오늘날 신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사랑하는 ‘신’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젊음의 ‘무분별함’을

관대히 용납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씨 좋은 노인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성경은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시 5:5),

“하나님은 …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 7:11)라고 말씀한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죄를 증오하신다는 사실이 생각날 때마다 이를 부득부득 간다.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생각해낼 수도 없고,

또 뜨거운 불못에서 영원히 형벌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없다.

 

어떻게 어둠과 빛이 한데 어울릴 수 있겠는가?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더러운 옷”(사 64:6)을 기뻐하시겠는가?

부패한 인간의 행위는 제아무리 선해도 불결할 뿐이다.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하나님이 거룩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것을 인정하신다면

그것은 곧 그분 자신과 스스로의 완전하심을 부인하는 것이나 같다.

작은 얼룩만 하나 있어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거룩하신 속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는 죄인은 모두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엡 1:6)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만큼 전지전능해야 한다는 명령은 없지만

하나님처럼 거룩해야 한다는 명령은 있다.

 

성경은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열띤 찬양이나 웅장한 표현이나 거창한 섬김보다는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처럼 거룩하게 살기를 열망하는 것이

하나님을 훨씬 더 영화롭게 할 수 있다” (스테판 차녹).

 

하나님은 거룩함의 원천이자 근원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한 성품을 지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라는 기도를 우리의 매일 기도로 삼자.

 

주님, 주님의 거룩한 영을 이 마음에 허락해주소서.

순결한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이 영혼도 아주 작은 죄라도

미워하고 그 죄를 마음에 심지 않겠습니다.

나의 영과 혼과 몸이 매일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함께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