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도 구원받는 걸 마다할 사람은 절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자 노선의 차이가 극심함을 보게 됩니다. 

하여, 구원받는 방법에 대해 쉴 새 없이 무난한 길(교리)을 찾는 부류가 있고, 

어떤 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본질대로 따르려는 부류도 있습니다. 

이 두 부류는 모두 

십자가를 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합니다. 

허나 십자가를 어떻게 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견해를 보입니다. 

전자는 예수님을 인정하고 구세주임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내 십자가로 전가된 것이기에 이제 십자가를 깔끔히 통과했으므로 

당연히 구원받았다 하는 부류이고, 

후자는 진정한 회개와 자기 부인을 십자가 통과로 여기기에 

주님 앞에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고 살려달라며 애통히 매달리는 부류입니다. 

전자는 마귀의 공중 권세 흐름에 저항할 마음도 없고, 

좁은 길과 좁은 문을 외면하며 

구원을 쉽게 여기는 기본 정서가 깔려있습니다. 

하여, 자기 부인과 회개에 대해 별 관심도 없고 매달릴 마음도 거의 없습니다. 

입술 시인 안에 믿음, 회개, 자기 부인이 다 포함된다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구원이 참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구원이 쉽다 한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성경을 접하다 보면 휴~ 하고 한숨이 나올 정도로 구원이 매우 어렵다 하면서 

들어가길 구하여도 들어갈 자가 매우 적다고 하십니다. 

그게 정확한 팩트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누가복음 13장 24절)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구원받을 믿음이 거의 없느니라)" 

(누가복음 18장 8절) 

 

어떤 교인이 있는데, 

자신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성도라 믿고 있지만, 

삶의 과정에서 아무런 연단은 물론, 주님의 성품인 열매의 모습이 부재하다면 

성경을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주님의 제자로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가 아니라, 

세상과 동행 타협하면서 입술로만 주님을 믿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즉, 그런 부류의 분들은 된 적도 없이, 

스스로 구원되었다 하며 오해할 소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갈 6:3)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 삶은, 세상 영광과 입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분들은 육체의 장막을 벗는 그날까지 자신의 십자가(자기를 부인)를 지고 

믿음의 정절을 지켰던 귀한 분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회자들 중에서도, 다는 아니겠지만... 

교인들에게 추앙받으면서 큰 세단을 타고 다니며 행세하는 이들이나, 

혹은.. 그런 목회자들이 부러운 나머지 닮으려고 계획하는 목회자들의 모습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던, 예수님이 걸었던 발자취를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 무슨 차이가 있는지, 그분들의 삶을 면밀히 살펴보십시오. 

선생들의 입술만 주목하지 말고 말입니다. 

 

온전한 믿음의 길은 십자가(회개, 자기 부인) 길입니다. 

거센 물살의 흐름에 저항하며 원래의 본향으로 향하는 연어는 상처 투성이듯, 

진정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공중권세 마귀의 거센 유혹에 저항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기 때문에, 세상의 달콤한 기준과는 동떨어지며, 

세상으로부터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길입니다. 

즉, 마귀의 공중권세에 늘 역행하므로 세상과 부대낄 수밖에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인해 고난을 받으리라는 성경 말씀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십자가 믿음의 삶은 세상과 구별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디모데 후서 3장 12절) 

 

그와는 반대로... 

위에 기록한 좁은 길의 십자가 삶과는 전혀 상관없이, 

세상의 결대로 무난한 흐름에 안주하며 별 저항 없이 평탄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 믿음의 길이 아닌 그 반대의 넓은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심령이 가난하지도, 애통하지도, 의에 주리지도 않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에 주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보며, 공중권세 마귀가 만든 질서에 역행할 수밖에 없는 이들입니다. 

하여, 주님의 위로와 손길이 너무나 간절하기에, 그 마음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분의 위로가 손길이 간절하지 않다면 

그들은 이 땅의 질서인 죄성에 익숙하도록 잘 적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주님을 잘 믿는다고 하며 헌신하고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려 하면서 입술로만 주님을 믿는다 하고,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습니까... 

마귀 공중권세의 결대로 잘 적응하며 평탄한 길을 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것에 격렬히 저항하며 내 십자가를 들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길을 따르는 게 결코 쉽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입니다. 

세상에는 십자가의 길과 세상의 길 단 두 가지 선택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포기 못 하여, 이 땅의 소망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길이 

한숨으로 다가오지만, 세상과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길이 

큰 기쁨과 소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로마서 8장 5절) 

 

왜냐하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장차 다가올 내 영의 미래를 소망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비밀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4절) 

 

세상 기준으로 보면... 

나를 부인하며 제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건 참 어려운 길이지만, 

그 길을 가고자 단호히 결단한 사람들에게는 주님을 사랑하여 가는 길이기에 

그 길이 고된 길이 아님을 바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십자가의 길)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1서 5장 3절) 

 

내 의와 세상 미련을 포기 못해 

우왕좌왕하다 호흡이 멈추면 무서운 사망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머뭇거릴 여지가 전혀 없이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내 힘으로 가는 게 아니라, 주님께서 동행하기에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십시오. 

주님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