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창조된 후에
아무 고민도, 갈등도, 분란도, 후회도, 괴로움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 자신의 벗은 몸을 어찌하나
갈등하고 고민하기 시작하여 선악과를 먹은 죄부터
주님께 책망을 들을 것까지 고민하느라 스트레스의 노예가 되어
에덴동산에서 강퇴당한 이후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적으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며 갈등하는 것 자체가 이미 악한 것이고
그런 모습은 주님의 방식이 아닌 내 방식이며
주님이 아닌,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이기에 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주님과 어울릴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관계가 되기에
도저히 주님과 동행하며 에덴에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시 주님과 동행하는 존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매우 간단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어야 가능하게 됩니다.
이 시대 대부분 교회당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믿는 성도들은 절대 고민도, 갈등도, 괴로움도 있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라.
성경적으로는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선생조차도 그 인간적 갈등과 고뇌 속에서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근본적인 이유는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이 없는 교인들 절대다수를 상대로
주안에서 평안하라, 자유하라, 은혜 안에 거하라고
강대상을 내리치며 선포한들 그게 말대로 되는 것이겠습니까?
말은 하기 쉬워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근본적 현실입니다.
그렇게 가르침을 받고 아멘으로 화답하고 결심한들
인간적인 고뇌들이 말대로 쉽게 떨어지겠습니까...
물 없는 사막의 꽃이 다 시들어가는데
시들어가는 꽃을 보며 시들지 말라고 한들 살아나겠습니까...
실제 꽃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꽃은 살아납니다.
그게 실상입니다.
온전한 회개 후 성령으로 거듭남의 근본적인 해결책도 없이
허상을 붙들고 실상을 가르치니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고뇌들은 인위적인 마음을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건 육적인 방법이기에 근본적인 해결점이 안 됩니다.
그러니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며 설교를 들어도
실상의 채워짐이 없으니
영적 공허함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방황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왜 세상적 고뇌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겠습니까...
문제의 발단은...
내가 나를 정점에 세우고 나를 위해 살려고 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내 임의로 기준을 설정했는데
뜻대로 안 되다 보니 그런 고뇌와 갈등이 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아닌 내 맘대로 모든 것이 풀리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모두 포기하고 내려놓고 주님만 품는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아직 내려놓지 못했기에 인간적 고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근본적인 핵심의 원인입니다.
말로만 내려놓으라 포기하라 그런 선포는 소용없습니다.
실제 내가 내려놔야 내려놓은 것이고,
실제 내가 포기해야 포기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더 표현해 보자면...
인간적인 문제에 대하여... 계속 고민하고 힘들어하면서
괜찮을 거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긍정적인 최면을 걸어도
해결되지 않을뿐더러, 고민할수록 자신을 더 힘들게 합니다.
겉으로는 뭔가 해결되어 보여도 뭔가 만족되지 않는
공허함 속에서 또 갈등과 고민만 반복될 뿐입니다.
그 공허함의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으로 내 안에 채워지지 않았고, 주님께 장악되지 않은 것이
근본적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주님을 내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나를 내 주인으로 계속 고집하다보니 파생되는 영적 현상입니다.
즉, 아직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걸 눈치채기 참으로 힘듭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문제의 근본이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를 눈치채고 해결점을 찾았다면 정말 큰 은혜입니다.
나 자신을 정말 다 내려놓고 거듭나 주님으로만 나를 채웠다면
허탄한 세상의 갈등과 고민에 휩싸이지 않습니다.
그동안 나를 지배하던 모든 인간적인 애환들이
한순간에 다 사라집니다.
주님께로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이런 인간적 갈등과 고민은
점점 사라지며 오직 주님만 보이게 됩니다.
내가 이런 세상 고민으로 가득하다면 나는 아직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즉... 아직 거듭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상태로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입술로는 "주여~ 주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맡깁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실상은
주님을 관념적으로만 믿기에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여 호흡을 멈추는 순간까지 계속되면
천국 백성이 될 자격이 없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에서 쫓겨났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정말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거듭난 사람들)은
이런 것을 주님께 모두 빼앗기고 주님으로만 채워지기에
실상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이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는 곧 주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고,
천국 백성이 될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 땅의 미련을 갖고 내가 중심이 되어
스스로 고민하는 심령들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거룩한 곳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소유한 성도들만 가는 곳입니다.
이런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고민과 갈등은
주님께 남김없이 모두 빼앗겨야 합니다.
말로만 주님께 모두 맡겼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에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믿음은 모양만 그럴듯한 허상이 아닌, 실상이 되어야 인정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심은 내가 아닌 주님만을 위해
살도록 하게 하심입니다.
내가 세상의 기준이 아닌, 주님만이 내 기준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하여 세상에 미련을 갖고 이를 주님께 맡길
단호함도 없이 세상의 고민과 갈등으로 계속 나를 채우면
주님께서 들어오실 틈이 없습니다.
이를 버리겠다는 단호한 결단과 함께 간절히 주님을 구하고 찾고
가슴을 치며 애통하게 회개해야 주님은 오십니다.
그래야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이 장악됩니다.
그래야 뭔가 채워지지 않았던 공허함 속에서 해방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을 믿는 확실한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 것과 나의 것은 관심도 없고 보이지도 않게 됩니다.
그전에 나를 휩싸던 모든 것들이 다 눈 녹듯 녹아내리고
오직 주님만 눈에 들어오기에 나와 관계되는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의미 없는 배설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회개하고 거듭나야 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이것이 곧 성령으로 거듭남이고
내가 주님께 정복당한 자의 믿음이고, 진짜 믿음의 실상입니다.
나 자신이 거듭남을 경험하면...
사도 바울이 거듭나기 전의 모든 것들이 왜 다 배설물이라고
고백했는지 바로 이해하며 깨닫게 됩니다.
거듭나면 세상의 고민에 휩싸일 시간도 여유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걸 주관하시는데
내가 고민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또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대로 이를 풀어줌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나는 없고 주님만이 계시므로 당연한 영적 원리입니다.
이렇게 거듭나 주님으로 채운 분들은
육적인 세상 것으로 고민하고 힘들어 스트레스받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의 고민으로 전환됩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거룩한 욕심으로 고민하고,
나에게 더욱 주님의 은혜가 뿌려지길 갈망하며,
천국을 더욱 침노하는 것에 대하여 갈망하고,
어떻게 하면 주님께 더욱 순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을 더욱 기쁘게 해드릴까,
내 이웃의 어려움을 바라보며 긍휼함과 사랑이 크게 느껴져
그들을 위하여 돌보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며 기도하고,
어떡하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것으로 늘 가득하기에 주님과 동행할 수밖에 없으며
저절로 쉬지 않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 됩니다.
세상적인 고민과 스트레스가 나를 힘들게 할 틈이 없습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거듭남)을 입으면
그 전에 내가 육적으로 힘들어하던
모든 것은 눈 녹듯 다 사라지고 지나갑니다.
그 전에 뭔가 채워지지 않아서 늘 공허하던 마음이
주님으로 채워졌기에 공허한 마음은 없어지고
영적인 만족과 기쁨만이 올라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더욱 성장하며 점차 성화되어 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또 목자(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가온 양들(거듭난 성도들)은 다 해결 받습니다.
거듭나지 않고 인간적 능력과 자아로 해결되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고민할수록 더욱 지쳐갈 뿐입니다.
과감하게 모든 인간적인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겠다며
결단하시고 주님께만 매달리십시오.
주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계산됨이 없는 순수함을 보시고
바로 만지기 시작하시며 해결하십니다.
나를 기준으로 세우고 나를 위해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럴수록 실타래가 꼬이듯 더 힘든 시간만 계속 지속될 뿐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려고 하십시오.
그것만이 인간적인 모든 갈등과 고민과 괴로움으로부터
엑소더스(탈출) 하여 해결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 후서 5장 15-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