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아픈 통증을 느끼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 몸이 아픈데... 무슨 감사냐며 반문하고 싶습니까?
아픈 통증을 느끼는 것이 왜 은혜이자 감사한 일일까요...
아픔을 느껴야만...
아픈 부위와 원인을 찾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통증이 느껴지는 건 빨리 그 아픈 부위를 치료하라는 신호입니다.
창조 역사 속에 담긴 주님의 놀라운 배려입니다.
한센병(문둥병) 환자들의 최고 소원은... 심하게 아파도 상관없으니,
제발 일반인들처럼 아픈 통증을 느껴보는 게 소원이라 합니다.
몸에 아픈 감각이 없으니
몸이 얼마나 더 상해가는지 알 수 없기에 더 절망이랍니다.
아픈 통증을 느껴야 자신이 정상으로 돌아갈 기대가 생길 수 있으니
그게 간절한 소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숨을 거두면...
때리거나 꼬챙이로 푹푹 찔러도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 없는 사체라서, 아픔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이 아닌, 영의 상태는 어떨까요...
이것이... 이 글의 주제입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어느 부분에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면
본능적으로 아픈 원인을 없애려, 약국과 병원을 찾는 게 상식입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죄 역시... 심장의 깊은 통증이 느껴져야
죄성으로 얼룩진 내 영을 치유하기 위해 주님을 찾으려 하게 됩니다.
그것도 입술로만 주여주여 찾는 게 아니라, 아주 절박하게 찾습니다.
그렇다면, 영의 의사이신 주님을 찾는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주님을 구하고 찾는다는 건... 회개(자기 부인)입니다.
간절한 회개로 용서받고 죄를 떨쳐내야(거듭남) 영이 건강해집니다.
그래야 죄에 눌리지 않고 자유함을 느끼며 내 영이 살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아픔을 못 느끼는 무감각이 나를 지배한다면
주님을 찾을 리 없기에 절대 치유되지 않습니다.
만일 영적 문둥병으로 죄성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죄를 방치한 채,
호흡이 멈추는 날까지 그대로 이어진다면, 그 사람의 영은
그대로 멸망(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죄성에 대해 고통스런 애통함이 계속 밀려온다면
이는 축복 중의 축복이요, 은혜중의 은혜이고 매우 감사할 일입니다.
죄성에 대한 애통함이 없다면... 그 또한, 그 마음을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저런 죄의 모습으로 사는 걸 다 보고 계십니다.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주님께서는 참으로 고통스러워하십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죄 가운데 서성인다면 부모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물며, 우리를 창조한 주님께서는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사람이 죄성에 유약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에 머물지 않고, 바로 돌아서서 마음을 찢으며
애통한 마음으로 간절히 회개했을 때, 주님은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하여, 언제 주님을 찾아오는지(회개) 그것만 학수고대 기다립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죄에 대한 애통)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죄 가운데 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거듭남)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장 21~24절)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내 자식이 잘못했어도, 아빠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
용돈이라도 더 주려는 맘이 올라올 정도로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숨기지 않고 솔직히 용서를 구하는 심성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기뻐하시는 주님은...
죄인 된 우리가 회개 할(주님을 간절히 구할 ) 때... 너무나 기뻐하며
가장 귀한 것(성령)을 거저 주시지 않겠습니까...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누가복음 15장 10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자길 부인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13절)
마음을 찢어 회개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주님을 구하는 자의 모습이기에 성령을 주십니다.
이래서 돌이킴의 회개는 신앙생활 중에 매우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죄에서 돌이킴부터가, 아버지와 자식 간 관계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 회복됨의 근거가 바로 회개이고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과의 어색했던 관계가
회개로 인해 절대적 믿음의 관계로 다시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눈물로 마음을 찢는 회개의 돌이킴도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령 내가 주님을 믿노라 해도.. 그 믿음의 진위 여부는
우리가 호흡을 먼저 멈추든, 주님이 먼저 오시든... 그때가 되면...
다 벌거벗듯 상세히 드러날 것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참 믿음이 거의 없구나)"
(누가복음 18장 8절)
어둠 속에만 머무는 바퀴벌레들에게
빛을 확 비추면 너무 고통스러워 혼비백산하며 어쩔줄 몰라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빛(말씀)이 머리가 아닌 내 심장으로 들어왔다면
어둠에 머물던 육의 악한 죄성들이... 화들짝 놀라 혼비백산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성에 대한 통증(애통함)이고,
또한 어둠에 머물던 내 악한 죄성과 성경 말씀의 충돌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하여...
먼저, 자신이 악한 죄인이라는 고통이 분명 느껴져야 합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의 밭이 척박하여 죄성에 무감각하다면
그 상태로는 결코... 진실된 용서를 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이자
신랑과 신부의 절대적 믿음 관계로 형성되려면 회개는 필수입니다.
그 믿음 관계는 결국, 회개(자기 부인)에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죄성에 대해 매우 민감해야 하며,
내 죄성 때문에 마음의 큰 고통을 느껴야만 통회가 가능한 것입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내 영이 회생 가능하다는 증거이고,
또한 그런 사람은 반드시 회개할 것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51장 17편)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이사야 66장 2절)
지금...
내 죄성에 대하여 고통이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사람이 어찌 죄를 안 짓고 사냐며 나를 죄에 방치하십니까...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어찌 죄 없이 사냐고 따지는 것은
결국, 죄성을 포기치 않고 끝까지 죄에 묻어가다
그저 믿음(?)으로 구원만 받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며, 주님을 설득 할 수도 없습니다.
죄성을 포기할 마음도 없이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는데,
어찌 내 죄에 대한 고통이 올라오겠습니까...
이런 상태로는 절대 마음을 찢는 애통의 회개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죄에 대하여 애통하며 눈물의 회개를 하는 사람들과
사람이 어찌 죄를 안 짓느냐며 너무나 쉽게 선언하는 사람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극단적 차이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천국은 죄를 안 짓는 자가 가는 곳이 아니라,
죄를 고통스러워하며, 간절히 회개한 자가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연약하여 죄를 안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 악한 죄성을 느끼며
회개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죽었던 영이 꿈틀거리며 회생할 준비가 된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주님 앞에 철저히 굴복하십시오.
죄 때문에...
성전 구석에서 고개를 못 들 정도로 애통하며 괴로워했던 세리처럼
그런 회개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18장 13절)
세리처럼 이런 마음으로 회개하면...
그분은 참으로 기뻐하시며 성령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는 사람은 결코 거듭남도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회개는 아무리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습니다.
참된 믿음의 첫 관문은...
내가 죄인이란 사실 때문에 고통을 느낄 때부터입니다.
그런 모습이 회개의 출발점이고, 온전히 거듭난 믿음으로 들어가서
구원으로 마침표를 찍는 큰 은혜이자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