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 땅의 조건에서 호흡하며 살아가는 만물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천사보다 못하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순수한 개인적 능력 면에서는 귀신보다도 못합니다.

거기다가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 주님의 뜻을 제치고

임의로 판단하게 만드는 선악과까지 먹었으니 

주님께서 주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성품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을 귀찮아하며 마귀의 달콤한 미혹에 넘어가길 잘하는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주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처량한 신세로 내몰렸습니다. 

 

쫓겨난 후에도 선악과의 악한 중독증으로 인하여 주님의 뜻이 아닌,

내 의지와 뜻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기준 잡으려고 하며

내 기준과 다르면 나는 무조건 선이고 당신은 악의 존재라며 

그저 표현의 방법이 순하고 거친 것의 차이만 있을 뿐,

근원적으로 주님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내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기 좋아하는 죄의 괴물로 살아갑니다. 

절대적 기준이었던 주님의 뜻을 버리고 그 자리를 내가 차지하여 

모든 사람들이 제 마음속에서 생산되어 나온 기준을

절대 기준이요 절대 진리로 삼으려고 하니 

서로 무조건 내가 옳다 하며

그 마음은 선한 것이 없고 죄의 악으로 충만하여

분쟁과 분열과 아귀다툼의 회오리에 휩쓸리게 됩니다. 

내가 중심이 되다 보면 내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이끌려고 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어 죄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내 마음속에서 쏟아지는 것들이 무조건 옳은 줄 착각하게 됩니다.

입술로는 주여주여 하면서도 이런 성향을 조금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이런 속성을 잠재우기 싫어합니다. 

내 마음에서 나오는 기준대로 믿어도 구원받는 줄 압니다.

이렇게 비참할 정도로 선악과의 악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 사람은

항상 내가 중심이요, 내 마음속의 것으로 기준이 되려고 하기에 

모든 악한 죄의 근원이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 자체가 이미 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 살며 호흡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그러나 내가 부족하고 근본이 악하다는 것을 정확히 깨닫고

눈물로 인정하여 뒤로 물러나길 간절히 원하는 자는

참으로 지혜롭고 복이 있습니다. 

이런 부류는 거듭남에 근접해가는 사람입니다. 

즉, 다시 주님과의 원만한 관계(거듭남, 회복)로 돌아가려는 자입니다. 

그러나, 나의 부족한 모습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고 

내가 나를 중심에 세워 내 기준이 옳다 하며 나를 이끄는 사람은 

주님과의 관계 회복(거듭남)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회복은...

나의 악함을 인정하고 나를 쳐서 주변으로 쫓겨나고 

내가 당당하게 있던 그 중심에 주님께 내어드리고 주님의 뜻은 

무조건 옳은 것이기에 그분을 따르겠다는 것을 단호하게 선언하며

나를 감싸던 온갖 더럽고 추악한 것을 깨달아 알고, 애통한 심령으로 

주님께 이를 벗겨달라고 눈물로 간청하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이것을 자기 부인, 회개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는 없고 이타적인 모습이 되려고 합니다. 

 

거듭난 사람에게 일상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내 자아가 죄의 근원임을 알기에 주변 형제들과의 분쟁이 사라집니다.

내 개인적인 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죽어 십자가로 다시 살았기에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매우 겸손합니다.

거듭나면 내가 강력히 주장하고 주변의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되길 원하던 성향에서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되길 바라는 상태로 변화되기에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 때문에 주변과의 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분쟁을 일삼던 사람이 온순해지고,

부부싸움을 일삼던 사람이 부부싸움을 멈추게 되고,

평소 습관처럼 하던 잔소리도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나 자신도 부족함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확 줄어들거나 사라집니다. 

공격적이던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늘 온화한 모습으로 자리 잡아 뒤로 물러나있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장 24-26절)

 

변화받지 못하면 왜 다투고 분쟁하겠습니까... 

악한 내 자아가 나를 지배하기에 나를 남들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남들이 나와 다르면 인정 못 하는 악한 자아 때문입니다.

즉, 거듭나지 못해 주님을 제치고 선악의 기준을 자기 기준에 맞춰 

임의로 판단하려는 선악과의 중독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듭나 선악과의 중독증이 사라지면,

죄의 근원이자 나를 떠받들던 악한 자아가 분명히 죽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자아는 물러가고 주님의 거룩한 성품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물러난 내 자아의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성령으로 거듭나)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16-17절)

 

그러므로, 정말 주님을 제대로 간절히 믿고자 원한다면... 

내 모든 것이 나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내가 나에게서 멀어지지 아니하면 주님께서 낄 틈이 없습니다. 

철저히 나를 나로부터 떼어놓으려는 단호한 마음이 있어야

주님과 가까워집니다. 

철저히 주님께서 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정복하여 나를 철저히 지배하게 하셔야 합니다. 

내가 나를 중심에 세우면 마귀가 나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버리고자 단호히 육으로부터 돌아서길 결단한다면 

주님께서 나를 채우실 것입니다. 

주님은 너무나 완벽하시기에 절대 무오하신 분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분을 중심에 놓고 산다면 그분이 나를 분명 이끄시기에 

내가 아닌, 주님께서 내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지게 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거듭난 성도는 나를 옳다 하며 내세우지 않습니다.

내 의를 표현하지 않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오직 주님의 거룩한 향기가 나타내어지고,

나는 철저히 감춰지게 됩니다. 

나를 나타내는 순간 바로 죄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내 의는 완벽할 수가 없기에 그렇습니다.  

내 의는 주님의 거룩함과 절대 무오하심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리를 만들지 말고 주님께 나의 모든 자리를 내어드리십시오. 

그래야 부족한 내 영이 절대 완벽의 주님으로부터 

온전하게 인도되며 보존 받을 수 있습니다. 

 

결코... 내가 중심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정말... 내가 기준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철저하게... 나는 주변으로 물러나십시오.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는...

다툼, 논쟁, 탐욕, 교만, 자아, 판단, 정죄... 

이런 육의 악한 속성들은

부족한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므로 

그곳에서부터 죄가 출발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내가 기준이 되려고 하는 악한 자아가 아주 위험한 이유입니다. 

 

주님께서 내 중심의 주인이 되시고 내가 주변으로 밀려난다면, 

이미 거듭난 자이기에 내 이웃 형제와의 다툼이 사라집니다. 

다툼은 내가 중심이 되어 판단하기에 

형제가 나의 기준에 맞춰주지 않으면 발끈하여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모든 세상의 다툼은 그런 것이 발단이 되어 일어나고, 

또 그것이 원인이 되어 엄청난 죄를 범하게 됩니다.

친구 간에, 부부 간에, 직장동료 간에, 교회 공동체 간에... 

왜 다툼이 일어납니까? 

상대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교만한 자아가 뇌관이 되어

상대를 향해 분노를 일으키는 원흉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중심에서 밀어내고 주님께서 내 중심을 장악한다면... 

내 이웃 형제를 대적하여 다툴 일이 전혀 없습니다. 

부족한 걸 깨달은 내가 무예 잘났다고 내 이웃 형제와 대적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내 모든 걸 내어드리고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누가 더 잘났냐는 분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내 형제와 육의 싸움을 싫어합니다. 

오직 마귀와의 영적 싸움만을 생각하며 주님께만 매달립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상고해보십시오. 

나는 주님을 확실히 믿노라 하면서 내가 중심이 되어 나를 치리하며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나 돌아보십시오.

내 생각과 가치관과 이론이 무조건 옳다 하며 고집스럽게

남에게 강요하고, 내 생각을 거부하면 분내어 맞받아치고,

내 의지대로 줄 세우기 하려 하고, 정리하려 하고, 공격하고, 

위협하고, 내 생각에 동조하지 않으면 불쾌해하고... 

과연 이런 모습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나 돌아보십시오. 

내가 중심이 아닌 주님을 내 중심 속에 내어드린 성도들은 

이런 모습이 나올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는 이미 뒤로 물러났기 때문입니다.    

 

내 자아가 중심이 되어 믿노라 한다면... 

주님께서 더욱 세우고자 하여 주신

가장 큰 율법이며 성령(사랑)의 율법인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것과 내 이웃을 내 목숨처럼 사랑하기란

입술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 삶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나를 내어드리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역사하시어 이 모든 것을 

가능하도록 성령님께 이끄실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내가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장 26절)

 

지금... 나의 모습을 돌아보시고...

내가 나의 중심이 되어 신앙 생활을 하지 않았나 확인해보십시오.

내가 중심이 된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저 내 만족의 위로를 위해 관념적으로 주님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나는 철저하게 내가 죽어 중심에서 없어지고,

주님께서 내 중심을 장악했을 때(거듭났을 때)...

그것이 주님께서 역사하시고 인정하시는 참된 믿음입니다.

내가 죽고 주님이 실제로 내 안에 사셔야 그게 믿음입니다. 

내가 죽는 것조차 내 의와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내가 간절히 요청했을 때 주님의 능력으로 되어질 뿐입니다.

이는 막연하게 관념적 생각으로

내 안에 주님이 사실 것이라 믿는다고 사는 게 아닙니다. 

진짜 주님이 내 안에 사셔야 사는 겁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사시는지 아닌지의 진위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열매로 분명히 증거되게 되어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내 안에 사시게 하려면, 

나를 모두 포기하고 부인하여 육으로부터

반드시 돌이키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4절)

육적 입술만의 결단이 아닌,

속사람의 확고하고 단호한 결단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 결단만이... 주님을 움직이시게 하십니다.

실제, 그것만이

내가 나에게서 쫓겨나고 주님께 장악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야 성령으로 거듭나 나는 썩어지고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치리하시며 동행하는 믿음의 실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회개하고 거듭나야 주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이고, 

보혈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내 의가 아닌 주님의 의... 즉,

내가 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게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이 회복이 있어야만 온전한 믿음이고 구원받게됩니다.

지금 이시간 나를 완전히 포기하고 주님께 내어드리도록

결단하십시오.

뜨거운 심장의 입술이 아닌, 육의 입술로 하는 가벼운 결단 말고... 

정말...

죄의 근원이 되는 육의 속성(자아)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겠다는 

단호한 결심으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바로 만지기 시작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간청하길 우리 옆에서 계속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복음)을 듣고 문을 열면(단호히 돌이키길 결심하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19-20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위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는 주님의 분명한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굳게 잡고 주님의 약속에 간절히 동참하길 권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