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강물 수위를 높이기를 원하신다면
지체들을 사랑하는 데도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사랑과
기도로 맺은 인연들을
함부로 평가 하기를 조심하십시요.
그리스도안에서 맺은 인연은
이땅에서 삶을 마치고
하나님의 나라안에서도
그 인연은 영원한것입니다..
그러나 지난날
여러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 이라도
사람을 사랑한다는것은
마치 유리잔을 들고 거친 광야를
함게 걸어가는 느낌을 자주 받곤합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
영원히 주님 나라 위하여
모든 일을 함께 할것 같이 하다가
어느날 돌아보면 금새 마음이 바뀌어
마치 모르는 사람들처럼 ...
그리스도인들 인데도 .........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2장 21절 입니다.
히브리서 13정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 하라 하십니다.
자신이 너무나 옳고 진리를 행한다고 하나
그 마음 깊은곳엔 얼마나 차겁고 냉정한지요..
얼마나 그리스도게어 받은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좁고
쥬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편견을 가지고 편애하는지요.
형제를 철저히 외면 하면서
주님의 제단에 예배를 드리며
찬양하는 그 마음을 아버지께서 어떻게 생각하실런지요.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영안이 열려 볼수 있다면
자신의 미움에 사로 잡혀 있는 모습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수 있을것입니다.
성경은 계속 말씀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자요.
그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가운데 거하여
자기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행하며
갈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요일 2장 10ㅡ11절입니다.
실제로 영으로 기도 가운데 많이 보았습니다.
누군가를 미워 하거나 용서하지 않고 있을때에
아니 서운함을 풀지 않고 있다면
그만 사단들이 그의 눈을 까만천으로 가리고
어두움속으로 끌고 아래로 아래로 계속 가는모습을 봅니다.
길은 넓은 길이기는 하나 어두운 길로 내려갑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보혈로 맺어진
만난 인연들을 소중히 하셔야합니다.
중보 기도자란 갈라진 틈사에 서서
주님의 심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틈만 있으면 사단에 의하여 갈라 냄을 당하고
이유가 있다고 해도 작은 일들에
서운함을 간직 한채 살아간다면
가운데는 반듯이 사단이 개입을 하는 것을
많은 분들을 중보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눈을 어둡게 한다는것은
어두움의 영들에 의하여
영적인 분별을 할수가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악한영들은 순식간에 그영을 가로 막는것을 영으로 봅니다.
진리는 말하나 정작 자신은 주님 앞에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분별을 못하는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을
다 아는것처럼 말하고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진정 만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형제들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을것입니다.
그것은 내 지체들에게 상처를 가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무도 외면하거나
무시 해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수 없을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며
주님께서는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늘 돌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각각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서로 기도해주고 약한 사람을 위하여
함께 중보하면서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일을
함께 해나가야 할것입니다.
그러나 자아의 부서짐이 없이는
지체의식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것을
꾸준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할수 없을것입니다.
성령님에 의하여 자아를 십자가에 못밖는
훈련을 받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충만을 구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깊지 못하고
자기만 소중히 하는 바람에
오히려 어두움의 영에 의하여 갇혀 버립니다.
결과 가족들까지 사단에 의하여 갇히게 만들어 버립니다.
미움에 갇혀서 꺼리김을 만들고 잇다면
가좃수대로 삽으로 무덤을 파는것을 영으로 봅니다.
자기 사랑이 강할수록 다른 사람을
폭넓게 사랑하지 못하게 될것입니다.
복음의 사역자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안에서 다룸이 약하고
자신의 자유와 자아를 죽이지 못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어려움을 드리고
성령의 강물에 자아를 잃어 버리지 못한채
은혜의 강의 수위가 높아지기를 원하기만 합니다.
자아가 죽어 지지않으면
폭넓게 다른 사람들을
받지 못합니다..나아가서
나아가서 자신만을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아집으로 그렇게 살아들갑니다.
나아가서 주님을 위하여 기도의 짐을
함께 나누어질수는 없을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하는 사람이라면
그분이 성령으로 낳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셔야합니다.
자기 사랑을 내려 놓고 지가만
소중히 하는것도 내려 놓을대
성령의 강물은 더 수위가 깊어지고 높아지는것입니다.
가끔 기도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뭐 그런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별것도 아닌것을 가지고 ,,,,,,,,
마음이 아프고 주님의 안타까움을 느끼곤합니다.
자아를 성령의 강물에 잃어 버린 사람만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것처럼
주님의 강력한 척량을 받을때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강물이 수위가 높아져서
능히 건너지 못할 강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풍성과 회복과
치유를 흘려 보낼수 있을것입니다.
주님의 척량을 받은,
자기 자아의 자유를 잃은 사람이 있는 곳에..
진정한 성령의 흐름이 흐르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안보이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수는 없을것입니다...
성령의 흐름은 생명의 흐름입니다.
주님은 자아를 날마다 멀리하고
겸손히 주님의 뜻이 자신 때문에
멈추어 있는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주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성령의 섬세한 안의 느낌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씩 조심스레 주님의 뜻을 향해
순종해 가는 사람에게 성령의 깊은 기름부음을 부어 주십니다.
주님의 생명이 또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은 자아를 쓰기를 조심해야합니다.
성령의 깊은 강을 자신을 통하여
흐르게 하는 꿈을 가지셨다면
기꺼이 날마다 자아를 말씀에 고웁게 갈아 내십시요.
더욱 깊은 다룸 받고
더 고웁게 파쇄되고
주님과 마음이 하나된 사람에 의해..
오늘도 상해 있는 바다를 치유하는 성령의 강물이
흘러 나가서 죽은것을 살려 낼깃입니다.
주님의 생명은 강하지만
섬세하기에 자아대로 살아갈수는 없는것입니다.
매 순간 이미 주님의 십자게 자아가 죽었음을 보시고
오직 의에 대해서만 살았음을 보십시요..
오늘도 주님이 그런 사람을 찿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