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어떻게 하십니까...
필요한 뭔가가 있을 때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십니까...
기도라 하는 것은 영의 호흡이자, 주님과의 거룩한 영적 교감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대부분 선생님들이 가르치며 하라는 기도는
지극히 육적 세상적 기복의 요소가 강합니다.
기복적 기도는 대다수 교인들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므로
땀을 뻘뻘 흘리며, 사력을 다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습니다.
이런 기도는 주님과 상관없을뿐더러, 개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이방인들의 중언부언에 불과합니다.
성경적인 합당한 방향도 없이, 그저 기도만 열심히 하라는 가르침은
주님 보시기에 매우 가증할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잠언 28장 9절)
위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기도는 가증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경적인 온전한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거룩한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달라는 게 참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 나오듯...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처럼, 기도의 참된 본질은 분명히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참 기도의 삶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진정 믿는 이의 기도는 종교인의 기도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참 성도는 주님과의 인격적 교감 가운데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그저 자아실현의 욕망을 이루려는 게 아니라,
내가 이 땅에 살면서 주님께 어찌 쓰임을 받을까 고민하고,
쓰임 받는다면, 쓰임 받는 과정이 잘 이루어지도록 간청하게 됩니다.
물론... 물질, 질병, 사람 간 이해관계로 기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하는 게 있습니다.
물질, 질병, 사람 간 문제로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건강히 잘 누리며 사는 게 기도의 근본적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몸이 아프면 본능적으로 병이 낫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에만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잘못된 기도입니다.
그것은 허다한 종교인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의 사람들을 모두,
거룩한 누룩이 되어 천국 확장을 위해 쓰여지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이 병마에서 회복되게 해 달라는 기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를 질병에서 회복시켜 주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여지도록
건강을 허락해 달라는 기도가 맞는 것입니다.
또한, 병마로부터의 회복은 나의 간절한 회개로부터 시작되기 땜에
예수님은 '네 병이 나았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네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으로 건강이 허락되었다면, 목적에 맞도록
주님의 용사가 되어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게 있습니다.
사역자는 목사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목사는 주님이 쓰시는 수많은 사역자 중 일부분일 뿐입니다.
자기를 부인 회개하고 거듭난 성도님들은 모두가 주님께 쓰임 받는
사역자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의 본래 목적은... 구원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 전파가 목적이듯...
나 같은 죄인 하나가 주님 은혜로 거듭나면 또 다른 죄인을 살리려
내 주변부터 영향을 끼치는 거룩한 누룩 역할로 번지는 게
사역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선생들은...
교인들에게 무조건 열심히 기도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어찌 기도하는 게 참된 기도인지 가르치고, 열심을 요구해야 합니다.
기도의 본질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고, 무조건 열심만 강조하다 보면
주님의 뜻을 벗어난 자아실현만의 헛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도의 열심은 시간 낭비입니다.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든, 단 한 시간을 기도하든,
그 기도는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 나에게도 이루어지는
거룩한 기도... 그런 기도는 내 욕망을 위한 장시간의 기도보다
훨씬 유익한 기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 죄인을 회개로 이끌어주길 간청하며 주님을 구하는 기도와
거듭난 후... 사역자로 쓰임 받아 주님과 계속 교통 하는 기도입니다.
즉, 사명 감당을 잘 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는 기도,
사역 중 넘어지지 않도록 늘 주님의 은혜가 공급되길 구하는 기도...
그래서 거듭난 사람들은 사역을 위해 끝없이 기도하게 되는 것이고,
아직 십자가(자기 부인, 회개, 거듭남)를 통과하지 못한 분들은
주님을 구하는 회개의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면 범사는 저절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즉, 영이 잘 되면... 당연히 범사도 거룩한 삶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거듭나 새롭게 된 것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3서 1장 2절)
그런데 너무도 많은 교인들이...
영이 잘 되려고 기도하는 것(회개하고 거듭남)이 아니라,
먼저 육이 잘되길 구하면서, 옵션으로 구원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기도는 아무리 힘써봐야 소용없습니다.
결코 응답이 없을 것입니다.
성령은 육을 거스르고, 육은 성령을 거스르는데... (갈 5:17)
그와 같은 기도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인본적 방향의 기도입니다.
내 자아가 요구하는 목표를 딱 정해놓고,
주님의 뜻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종교적 기도 행위를 지속한다면
그것은 신앙심을 핑계한 욕망 성취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인본적 삶의 질을 풍성하게 바꿔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방인의 바램이나 타 종교인들이 기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즉, 바로 그것을 중언부언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여 예수님은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꼭 필요한 뭔가를 구하지 않아도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그 형편을 이미 아시고, 주님께서는 그분 자녀들의 삶을 위해
꼭 일용한 것들은 다 채워주신다는 겁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삶에 꼭 필요한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허락하심)"
(마태복음 6장 31~33절)
성경을 접하다 보면...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항상, 쉬지 말고, 범사...
이 단어들은 모두 중단 없는 영속성(永續性)이 있습니다.
말만 쉬울 뿐이지, 위의 말씀이 과연 사람으로서 가능한 것입니까?
아니, 그게 어찌 가능한 것이냐며, 말이 안 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인본적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순종하기 힘든 요구임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억지스러운 걸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다 요구할만하니까 요구하는 것입니다.
먼저 저의 옛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유명한 놀이공원에 데려갔는데
둘째 딸은 어디엔가 집중하면 주변을 자꾸 놓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날도 둘째는 뭔가에 집중하였고, 가족 일행은 계속 걸어갔습니다.
당연히 둘째 딸도 알아서 따라오려니 하며 걸었습니다.
근데 뭔가 아차 하여 뒤를 살피니 둘째가 없습니다.
저는 철렁한 마음으로 걸어왔던 길을 반대로 뛰어갔습니다.
아이와 헤어진 마지막 장소에 가서 샅샅이 살폈으나 아이는 없었고,
저는 호흡이 점점 가빠지며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매우 당황하여
울면서 가족을 찾느라 헤맬 걸 생각하니 더 괴로웠습니다.
서로를 찾으며 서성일 때, 저만치에서 울고 있는 둘째 애가 보였고,
저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며 전속력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이는 그제야 안도했는지
크게 '아빠' 소리를 내며 달려와 안기며 펑펑 울었습니다.
가족을 찾아 혼자 헤매일 때의 눈물은 두려움과 공포의 눈물이었고,
아빠를 찾은 후 아빠 품에 안길 때의 눈물은
'이제 되었구나' 하는...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었을 겁니다.
아빠인 저도 그랬지만... 우리 애는 엄마아빠가 안 보이는 순간부터
오직 가족만 찾아야겠다는 마음만 있었을 게 뻔합니다.
다른 것은 흥미도 없었을 것이고, 또 눈에 들어올 리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을 바라보며... 재미있게 즐기다가... 잠시 후에...
엄마아빠를 찾아야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런 상황에서, 엄마아빠를 찾을 마음만 가득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엄마 아빠를 잃어버린 아이의 절박한 본능입니다.
주님을 찾으며 구하는 기도도, 이와 아주 똑같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내 안에 주님에 대한 갈급증이 진정으로 있다면, 그 마음속에는
늘 주님으로 가득하여... 부모를 잃은 아이가
부모만 간절히 찾듯, 주님을 구하고 찾으려 간절히 매달릴 것입니다.
영적 고아가 될 판인데 어찌 주님을 간절히 찾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을 간절히 구하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그 마음 안에는 항상 주님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늘 주님을 마음에 품고(기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 교통하고자 하여 늘 간절한 마음을 품는 게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 영적 상태의 분들은...
다른 것은 관심 두지 않고, 오직 엄마 아빠만을 찾는 아이처럼...
세상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으므로, 항상 주님만 갈급한 것입니다.
그런 상태가... 항상 기뻐하는 것이며,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편 41편 1절)
기도의 때와 장소는 따로 없습니다.
무릎 꿇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만 있다면.... 걸으면서, 운전하면서, 일하면서,
자면서까지 지금 내가 있는 그 장소가 바로 거룩한 소통의 장소이자
기도의 때인 것입니다.
이제는 기도 방향을 성경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어찌하면 그럴듯하게 기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접으십시오.
그걸 위해 어떤 누구의 의견을 찾아보거나, 연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이미 기도가 아닙니다.
그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주님께 아뢰십시오.
'주님~' 그 한마디에도 주님은 다 알아듣습니다.
어설퍼 보여도 심장으로 하는 것이라면, 그게 참된 기도입니다.
기도도 안 하면서, 주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 뜻을 모르고는 절대 주님 뜻을 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펼치고 마음으로 접하다 보면, 주님 뜻이 잘 보입니다.
그것을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새 생명을 얻기 위해 주님을 구하는 분들은...
간절히 주님을 구하고 찾는 자가 주님을 만날 것이란 그분의 약속을
반드시 믿고, 그분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분들이 되십시오.
주님은 틀림없이 약속을 지키십니다.
"너희가 온 마음(갈급한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아 29장 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