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육적인 사람이니, 영적인 사람이니 하는 걸 종종 봅니다. 

그런데 정작... 영의 실상이 뭔지, 육적인 실상이 뭔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합하면 영적이라 하고, 내 마음과 다르면 육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상대방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면 영적 믿음의 사람이라며 칭찬하고, 

따라주지 않으면 육적 사람이라며 매도하기도 합니다.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그저, 영적이니 육적이니 말만 무성할 뿐입니다. 

영적 사람과 육적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영의 사람은 육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주님의 기준에 머무는 사람이고, 

육의 사람은 껍데기를 벗기 싫어하여, 육신의 기준에 머물려는 사람입니다. 

영의 사람은... 마치, 번데기가 탈피하여 

질기고 질긴 고치를 뚫고 나왔을 때의 나비와 같은 것입니다. 

육의 껍질을 깨고(부인하고) 탈피(거듭남)되었을 때 영의 사람이라 합니다. 

즉, 영의 사람과 육적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그 사람이 어떤 기준에 

머무느냐의 차이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영적인 사람은... 

모든 가치관을 주님 입장에서 바라보며 나아가는 분들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모든 것을 사람 입장의 가치관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주여 믿습니다' 외쳐도 그들은 여전히 육적인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사람 기준의 육적 가치관을 아주 싫어합니다. 

이들은 육적 가치관에 몸서리치며 주님 앞에 솔직히 나와서 그 가치관들을 

거부(부인)하며, 나에게서 떨어뜨려달라고 간절히 구하는 분들입니다.

영적이란, 그저 성경 내용을 많이 아는 것 자체가 아니며 

또한, 예배나 어떤 행사마다 다 참석해 충성 봉사하는 것 자체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떤 영적 능력을 구하려 여기저기 유명한 기도원들을 찾아가서 

무슨 영적 현상을 얻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인 것을 사람에게 얻는 것도 아니며,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인 상태는... 십자가를 만난 후, 내게 임재하신 주님의 거룩한 열매들이 

나를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것을 거룩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내 심령 안에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영의 사람으로 불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인...

충성, 절제, 화평, 온유, 참음, 자비, 양선, 희락, 사랑인데  

이 성령의 열매들 속성은.. 모두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본질적 특징 때문에

영의 사람들은 늘 하늘의 사랑이 흐르는 영혼들입니다. 

즉, 이 땅의 그 어떤 것보다도, 오매불망 주님을 사랑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이웃 형제들에 대한 사랑도 참으로 진심입니다. 

새 생명을 향한 십자가의 모든 과정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기 위함입니다.

영의 사람... 그  절대적 기준은 바로 '사랑'입니다. 

 

영의 사람은 결국... 

참된 사랑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거룩한(거듭난) 사람입니다. 

내가 사역자라면 주님과 교인들을 진정 사랑하는지 점검하고 확증하십시오. 

내가 진정으로 주님을 믿는 영의 성도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으면 

내가 주님과 이웃을 진정 사랑하는지 살피십시오. 

주님과 성도의 관계는 그분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내가 사랑의 관계에 있지 않다면 나는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당연히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지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교인들 중에도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주님보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 사랑하는 교인들로 넘쳐납니다. 

그날에 주님의 신부가 되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나를 향한 주님의 일방적인 사랑에만 기대어 구원을 바라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사랑하듯, 나 역시 주님을 사랑하는 교집합이 형성돼야 합니다. 

주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구원된다면, 그 누가 구원받지 못하겠습니까... 

그게 영적 실상입니다. 

 

내가 목사인데, 장로인데, 권사인데, 집사인데... 

교회당에서 내가 무슨 직분인지 무엇을 하는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주님과 내 이웃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여,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이의 기도는 주님의 뜻을 구할 수밖에 없지만, 

주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는... 자신의 뜻만을 구하게 되고,  

그런 기도는 주님과 상관없는 일방적인 청구서에 불과할 뿐입니다. 

또한, 내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중보기도는.. 

형제를 향한 긍휼한 마음 없이, 딱딱한 심장이 쏟아내는 중언부언이지만, 

진정 내 형제를 사랑하여 중보기도를 한다면.. 내가 그 형제의 마음이 되어 

마치 나를 위해 기도하듯, 그를 위해 똑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교인들의 예배는... 

종교의식에 참관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 형제를 사랑해야,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런 사람이 영의 사람입니다. 

영의 사람... 곧, 사랑이 흐르는 사람... 거룩한 사람... 진정한 예배의 사람... 

이것이 복음의 결정체입니다. 

 

내 안에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내 안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사랑이 이웃을 향하여 늘 잔잔하게 흘러간다면... 

나는 진정으로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요한1서 4장 20-21절) 

주님을 향한 믿음(사랑)은 그렇게 증거됩니다.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내 형제를 진정 사랑할 수밖에 없듯 

내 형제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향한 사랑도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주님은 정말 사랑하는데.. 내 이웃을 사랑하는 건 쉽지 않다'고... 

안 된 말씀이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은 주님을 사랑함도 참이 아닙니다. 

주님은 사랑하는데, 내 이웃은 사랑하지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못을 박으며, 분명히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실제 맨눈에도 보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맨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믿는다고 할 수 없느니라) (요한1서 4장 20절)

 

그러므로... 

내 속사람 안에... 형제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나는 육의 사람임을 빨리 간파하고 간절히 주님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님의 임재가 없으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내 이웃 형제와의 사랑 관계가 형성되려면...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꼭 있어야 하고, 그분과의 사귐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사랑)이 없는 믿음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과 내 형제를 진정으로 다 사랑하는 영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목석처럼 사랑함도 없이, 내 기준만의 가치관에 머무십니까... 

이것은 결코 쉽게 지나칠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에 관련된 절대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4절)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누가복음 10장 27절)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영적인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곧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내가 내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그 형제를 전도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사랑 없이 하는 기계적 전도는... 전도가 아니라, 호객행위에 불과합니다.

전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담임 목사님 지시에 따라, 교회당이나 채울 목적이 전도입니까? 

아닙니다. 전도는...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 속에 있을 형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 지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주님께로 돌려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형제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있으면... 

전도 하지 말라며 뜯어말리고 협박을 해도, 형제에 대한 사랑의 마음 때문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전도 할 수밖에 없는 심령 상태가 됩니다. 

그 추진 에너지가 바로 사랑입니다. 

하여, 전도는 내 인위적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내 능력이 아닌)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사랑)으로 하여... (고린도 전서 2장 4절) 

 

주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지켜보며 질문하십니다. 

입술로만 사랑한다고 하는지... 아니면, 심장이 뜨겁게 요동하며 사랑하는지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러하셨듯, 우리에게도 역시 똑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OO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OO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OO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OO안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묵상해 보십시오. 

지금... 주님께서... 간절한 마음으로... 묻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