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글들을 보면 마치 거듭난 믿음이 되는 게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세하게 그 과정을 설명하려니 그런 것일 뿐

실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어렵고 난해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복음)을 접했으면 그 말씀이 나를 통해

살아있는 실제 능력으로 나오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입술이 아닌, 삶으로 주님을 높여드리는 것... 

그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복음을 접했을 때, 마치 장작더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면 

불이 확 솟아오르듯 갑자기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 거듭나는 분들도 계시고,  

복음을 믿지 못해 평생을 교회 다녀도 거듭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복음의 이치를 깨우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비로소 믿음이 들어오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어떤 분들은 복음을 복음으로 받지 않고

학문적인 이론이나 정보 혹은 지식으로만 받아서

교리나 이론 놀이만 하며

그게 믿음인 줄 굳게 믿다가 끝내 거듭나지 못하여 

그대로 짧은 삶을 종료하는 분들이 허다합니다.  

거듭나는 믿음은 어떤 형식과 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뭔 이론과 지식을 열심히 연구했다고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신학박사 학위 여러 개를 소유했다고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못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부분만 접하고도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나

속사람이 뒤집어져 거듭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복음을 접하고도 자신의 죄에 대하여 마음에 큰 고통을 느끼며

돌이켜 회개하여 주님을 찾으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가 소유한 성경책은...

흔히 서점에서 보이는 두꺼운 책 정도의 아무 쓸모 없는

지식서에 불과합니다. 

복음은 죄 가운데 놓인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 부끄러워하며

죄에 대한 큰 고통을 느끼고 이 죄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과 함께 

간절히 회개하며 주님을 애통한 마음으로 찾을 때

비로소 성령을 받아 거듭나는 은혜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회개하려는 마음도 주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복음을 접하고 주님에 대한 갈급함이 이미 있었기에

회개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집 나간 탕자처럼 죄로 물든 세상과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애통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오는 자만을 만나주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아무리 복음으로 초청해도 입술로만 주여주여 할 뿐,  

죄로 물든 현재의 더러운 옷을 포기하지 못하여

흰옷을 입지 않은 심령은 복음이 그 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흔적이 남았기에 

복음의 능력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청을 받아 지식으로는 주님을 태산처럼 알아도 

택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초청을 택함으로 착각하여 나는 택함 받았다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정말 오해하였습니다. 

초청 자체가 택함이라면 교인들 모두 다 구원받아야 마땅합니다. 

초청을 받았으면 반드시 죄로 물든 내 더러운 옷을 벗어 던져버리고 

흰옷을 입은 심령만이 택함 받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거듭나 구원받을 것 같습니까... 

성경에 대하여 많이 공부하여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일까요? 

교회 활동 열심히 한 사람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이것은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유식하고 무식하고, 건강하고 약하고, 나이가 적고 많고,

남자고 여자고, 목사고 평신자이고, 성경 지식이 많고 적고, 

부자고 가난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성격이 강도와 같거나

착하다고 생기는 그런 종류의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아무리 믿음에 대한 지식이 많아 하늘을 가리고 땅을 덮어서

박사 학위가 셀 수없이 많아도 그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여

계산적이고 자기 지식을 높게 여겨 교만한 마음이 가득하고 

자기가 옳다 하며 교리에 대한 변론만 좋아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 있는 게 아니라,

믿음에 대한 지식만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는 지식 속의 하나님만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은 입술과 이론과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거듭나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할 때...

비로소 그분을 인정하며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입술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높이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무리 내 부모를 높이며 사랑한다고 입에 발리듯 말만 하면서  

실제 부모 말에 순종 않고 내 할대로만 한다면

그것은 부모를 존경하고 높이는 게 아니고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으로는 주님을 존경하나

삶으로는 얼마나 멸시했는지 아실 것입니다. 

순종하는 믿음의 삶이 없이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며 높이는 것이

얼마나 주님을 멸시하며 조롱하는 일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사야 29장 13절)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가복음 7장 6절)

진짜 믿음이 있는지,

아니면... 지식만 가득하여 믿음이 있는 척하는지

믿음이 실현되는 그의 평소 삶을 보면 열매로 바로 분별 됩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못하고 믿음에 대한 지식만 쫓으며

믿음이 있다고 자신하고 변론만 하다가 버려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이 머리로만 들어갔기에 심령이 변화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주님을 잘 안다고 변론하겠지만,

그 날이 이르면 주님은 냉정하게 이들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장 21절)


구원은... 사람이 아무리 각양각색의 종류가 있어도

복음을 접할 때, 큰 찔림을 받아 마음을 찢어 회개하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겸손하게 변화되어서(거듭남)   

기록된 말씀을 굳게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심령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런 심령들이 자신을 부인합니다.

그런 심령들이 성령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성경책이 두껍다고 복음이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심령으로의 변화... 

지식뿐이 아닌, 실제 믿음의 삶으로 주님을 높이는 성도들...

그런 사람들이 주님을 진정 사랑하며, 내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런 심령들에게 이미 그 두꺼운 성경책의 복음이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의 능력이고 복음이 생명이 되어 그 심령을 주름잡으며 

복음의 능력이 그런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성도들이 구원됩니다. 


복음은 아주 간단합니다. 복음은 지식과 이론 놀이가 아니라, 

내 영이 죽느냐 사느냐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육을 살리면 영이 죽고, 육을 죽이면 영이 삽니다. 

흰옷을 입으려면...  

세상 죄와 삶으로 찌든 더러운 옷을 반드시 벗어야 합니다.

더러운 옷 위에 흰옷을 덧입을 수는 없습니다.

그게 주님의 창조원리이고 그 누구도 비틀 수 없는 절대 진리입니다. 

믿노라 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육도 살리며 영도 사는 길을 

원하고 있습니다.

육도 살고 영도 사는 길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영이 깨어나 살려면 육적인 삶이 죽어서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주인이 되어 나를 이끄는 것...  

그게 복음의 본질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령으로 거듭남입니다.

지식과 입술로만 죽지 말고 믿음의 삶으로 죽으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