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선생들과 교인들은...
주님과의 수직적 사랑만 강조하며 이것을 영적 믿음이라 표현하고, 
내 이웃 형제와의 수평적 사랑은 불편해하며, 율법적 행위라고 표현합니다. 
이분들은 왜 그토록 주님과의 사랑만 강조할까요... 

주님을 사랑함이 없으면... 

주님을 향한 내 믿음이 성립되지 않을뿐더러, 

그 믿음은 아무리 소리높여 강조해 봐야, 분명히 거짓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필히 주님을 사랑해야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주님을... 진짜...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인정하는 진짜 믿음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께 물어보면 100% 주님을 사랑한다고(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 이웃 형제를 사랑하냐고 물어보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 합니다. 

왜 그런지... 분명한 대답을 못 하며 주저주저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주님을 향한 믿음(사랑)에 대해 주님과 나 사이의 일대일 관계만 인식할 뿐 

내 이웃 형제들과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 내 이웃 형제를 친밀히 사랑해 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주님에 대한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증거도 없으니, 막연히 주님을 사랑한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지만, 

형제 사랑은 눈에 증거로 보이니 명확하게 대답할 자신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주님을 사랑함(믿음)이 사람들의 눈에 안 보이니 증거할 수 없는 것일까요?  

정말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그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성경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진짜인지 허상인지, 확실히 분별해 줍니다. 

주님을 사랑함에 대해 거짓 고백을 못 하도록.. 성경은 다음과 같이 전하며, 

확실히 쐐기를 박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실제 맨눈에도 보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맨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믿는다고 할 수 없느니라) (요한1서 4장 20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한1서 4장 21절) 

 

주님은 결코 허술한 분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그 고백이 참인지 아닌지, 이미 장치를 만드셨습니다. 

아무리 내가 주님을 간절히 사랑한다고 고백해 본들 형제를 사랑치 않으면

주님을 사랑한다는(믿는다는) 그 고백은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 형제와의 사랑은 눈에 잘 보일뿐더러, 

빼도 박도 못하는 분명한 증거가 삶의 흔적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내게 내 이웃 형제를 생각하는 긍휼과 사랑이 있다면 반드시 사랑의 마음이 

평소 자신의 일상적 삶에서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거듭난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 형제에게 한 것(사랑)이, 곧 나에게 한 것(사랑)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형제) 하나에게 한 것(사랑함)이 

 내게 한 것(주님을 향한 사랑)이니라" (마태복음 25장 40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이웃 형제)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사랑치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아니한 것(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니라" 

(마태복음 25장 45절)  

 

'주님을 사랑한다는(믿는다는) 고백...' 

이 고백에 대하여 진정 부끄럼 없는 고백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꼭 기억하셔야 할 게 있는데.. 주님은 우리의 입술 고백을 원하는 게 아니라. 

심장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뜨거운 영의 고백을 원하십니다. 

입술 고백은... 내 의지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영의 고백은... 내 의지가 아닌, 내 안의 성령님 의지로 고백 되는 것이기에 

거듭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주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니까 

불편해하면서 그저 기계적으로 하는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은 사랑하라 하셨지 불편해하면서 억지스럽게 뭘 하라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의 기계적(율법적) 제스추어에 불과합니다. 

사랑은 반드시 주님이 함께해야 합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사랑한다고)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태복음 15장 8절) 

 

사랑이라는 본질적 의미는... 

마음에도 없으면서 기계적인 어떤 베풂이나 표현이 아닙니다. 

상대를 향한 내 심령의 중심이 뜨겁게 데워져서 그것이 그대로 내 상대에게

진실로 표현되는 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삶을 통해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내 자식과 부모를 향한 인륜적 사랑은 악인도 할 수 있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과 내 이웃 형제들에 대한 사랑은... 주님의 임재가 없으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절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 바라볼 때...  

부모가 자식들에게 요구하는 최고의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부모 자식 간 서로 사랑하듯.... 내 자식들 간에 서로 사랑하며 잘 지내는 것 

그것 외에 부모 입장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게 최고 바램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 역시, 아주 단순합니다. 

나(하나님)와 너희간... 진실된 사랑으로 묶여 믿음의 관계가 형성되듯

네 이웃과 서로 사랑하며 잘 지내다가 천국에 오라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죄책감으로 영적 침체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그를 회복시키기 위해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한 것도 있지만, 

실제는 베드로의 사랑을 더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주님과의 사랑 관계가 매듭지어져야 믿음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화답하여 주님께 사랑을 고백했을 때... 주님과 베드로 간에

오간 그 감격이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심령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66권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사랑'입니다. 

누군가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어마어마한 영적 퍼포먼스를 보여줘도, 

엄청난 찬양 실력을 보여줘도, 가난한 내 이웃에게 매일 뭔가를 베풀어줘도,  

그 안에 진실된 사랑이 없으면... 다 의미 없는 제스추어에 불과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랑의 표현은 하면 할수록, 그 위력을 발휘하며 얼음장 같은 원수도 녹이며, 

성도들 간 더욱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고, 천국에 더욱 가까워지게 합니다. 

사랑은 내 능력을 다해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여, 주님과 내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은 거듭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거듭나 성령께서 성령의 열매를 주시기에 주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주님만을 사랑하는 수직 관계만 성립되는 게 아니라, 

주님과 형제를 동시에 사랑하는.. 수직과 수평 관계가 다 성립되어야 합니다. 

즉, 수직 없는 수평은 없으며, 수평 없는 수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절대 주님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영적 순리입니다. 

사랑의 영인 성령이 내 안에 오셨는데 내 이웃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목이 터져라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무리 고백해도,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신기루 같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성도들은 그 형제도 사랑하게 되어있고, 

내 형제를 정말 사랑하는 성도들은, 반드시 주님에 대한 사랑도 진실입니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 성령을 먼저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평생 따뜻한 심장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들만 눈에 보이다가 

천국에 갈 것이고, 또 천국에서도 영원히 사랑만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