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되게 믿으려 맘을 단단히 먹은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주변으로부터 외톨이가 되어가면서

전에 없던 고난이 생기고, 주변이 나를 핍박하는 일이 생기면서  

이를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도 기대한 응답이 없으니

혹시 내가 주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에 대한 엄청난 오해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다루는 스타일은

몸에는 좋으나 먹기 싫은 쓰디쓴 보약 스타일로 다가옵니다. 

결코, 처음은 달콤하고 시원하나 몸을 상하게 하는

콜라나 사이다 같은 청량음료 스타일로 다가오지 않으십니다. 

그런 이유를 다음과 같이 나눠보고자 합니다.      

 

쇳덩이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쇳덩이가 비싼 이유는 쇳덩이로 무엇인 가를 만들었을 때의 상황을

고려하여 비싼 것입니다. 

그 비싼 구리가 구리 자체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구리로 전기 부속품을 만들었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납니다. 

그렇다면 쇳덩이와 구리를 그냥 두면 저절로 효용 가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집니까?

두드리고, 펴고, 담금질하고, 모양을 잡아갈 때 비로소 

유용한 제품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연마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냥 쇳덩이이고 구리 덩어리일 뿐입니다.

주님께서도 믿는 자들에게 이처럼  

구부리고, 펴고, 담금질하고, 모양을 잡아갑니다. 

이 과정을 연단이라고 합니다. 

쇳덩이가 연마 없이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듯, 

믿는 우리들 역시 주님으로부터 연단 없이는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끔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냥 쓰시면 되지 뭘 불필요하게 연단하냐고 생각합니다. 

연단이 왜 필요합니까... 훈련이 안 된 권투선수가

링 위에 오르면 바로 상대 선수에게 쓰러집니다. 

믿는 자들 역시 연단이 안 되면 

마귀로부터의 치명적인 공격에 다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가 물질로 유혹하면 넘어갑니다. 

마귀가 명예로 유혹하면 넘어갑니다. 

마귀가 성공으로 유혹하면 넘어갑니다.

이렇게 마귀의 유혹으로부터의 내성을 기르지 않으면 

무능한 우리로서는 다 쓰러지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에 대한 내성을 기르기 위함이 바로 연단이라는 도구입니다. 

이것은 마치 

교만하게 우뚝 선 나무는 거센 비바람에 뿌리가 뽑히거나 부러지지만 

겸손한 작은 관목이나 들풀은 아무리 바람이 거세도 

뽑히거나 부러지지 않고 견디는 것과도 같습니다. 

거센 바람결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며 살아남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시편 66편 10-12절)

 

아주 똑똑한 40세의 젊은 모세는 동족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동족을 괴롭히는 공사 감독관을

주먹으로 때려 죽게 했습니다. 

인간적 기준으로 보면 그만한 능력과 지혜를 겸비한 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낙제점입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봤을 때 능력이 출중하고 지혜롭고 박식하면 

뭐하겠습니까... 

그렇게 분을 참지 못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모습으로   

어떻게 그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연하게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태도로 인도하려 들었다가는 며칠도 못지나 조그만 일에도

분을 참지 못하고 동족과 다투기만 하다 제풀에 쓰러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모세를 광야로 몰아넣어 

1-2년도 아닌 무려 40년 동안 혹독하게 연단하십니다. 

그렇게 연단 받은 모세는 우뚝 선 나무에서 겸손한 들풀로 바뀝니다.

매우 겸손하고 인내심이 강한 자로 변했습니다. 

모양만 그럴듯할 뿐 못쓰는 그릇에서, 쓸만한 질그릇으로 바뀐 것입니다. 

나이 80이 돼서야 쓰임 받을만한 재목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쓰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단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입니다. 

 

요셉도 십수 년을 지하 감옥에서 연단받으며

엄청난 영적 성장이 있었기에 큰 나라인 애굽의 국무총리로

그 역할을 지혜롭게 잘 수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국무총리가 지녀야 할 자질과 능력이 저절로 생기는 게 절대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런 연단 과정이 그를 정금으로 만든 것입니다.  

 

단지, 쓰임의 차이에 따라서 모세처럼 40년 가까이 연단하시기도 하고 

짧은 연단 과정을 거치는 사람도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연단은 있었지만 이런 분들에 비하면 

조족지혈 정도의 깜도 안 되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것도 힘들다고 죽네 마네 하면서 눈물로 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러운지... 

 

주님께서 진행하시는 연단은 단지 고생시키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연단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오해로, 힘든 연단의 과정에서 

주님께서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닌가 꼭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주님만 믿고 의지했는데 주님마저 날 버렸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세상이 날 버린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주님께서 날 버렸다고 생각하니 엄청난 좌절감이 밀려왔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주님의 깊고 넓은 뜻이 있었음을 깨달았고

주님께서 날 버리지 않고 계속 옆에서 보호하고 계셨음을 알았을 때 

얼마나 살맛이 나는지 고난이 기쁨으로 바뀌었고,  

다윗처럼 춤이라도 추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주님께 관심받는다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입니다.  

 

남자들은 거의 군에 다녀오는데 저 역시 그랬습니다. 

강한 군인으로 키워내기 위해 정말 혹독하게 훈련시킵니다. 

약한 훈련은 오합지졸만 생산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가혹할 정도로 훈련시킵니다. 

유격훈련 기간이라도 되면 훈련장으로 향할 때 

마음속에 얼마나 긴장되고 조마조마한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되는 느낌입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빨강 모자를 푹 눌러쓴 조교들이 정신없이 몰아칩니다. 

저는 원래 기관지가 약해서 제가 제일 싫어했던 가스실에 들여보내 

엄청난 기침과 함께 눈물 콧물 다 빼놓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남자라면 누구나 다 받을 만한 훈련만 받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교관과 조교들은 그 상황을 계속 지켜보면서 부상자가 안 나오도록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주님도 마찬가지 십니다. 

계속 지켜보시며, 관리하시고, 감당할만한 연단만 주십니다. 

단지 사람이 그것을 오해하여 주님이 날 버린 줄 알고 

원망만 하는 것입니다.

 

제게 상담하는 분들 중에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하시면서 

슬픔에 잠겨 상담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주님이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많이 사랑하기에 주시는 연단이고

그것이 사랑하는 양들을 다루시는 주님의 방법일 뿐입니다.

즉, 주님의 사랑표현이라는 말씀입니다.

연단의 상황에 처한 분들은 실망하지 마십시오.

연단은 이제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쓰임받을 사람이 마귀의 미혹과 공격에 넘어감을 방지하기 위해

마귀에 대한 내성을 강력하게 기르시는 과정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예방주사라는 의미입니다. 

하오니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힘들겠지만 오히려 더 기뻐하고 주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미련했던 저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좌절하는 상황이 없길 바랍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편 71절)

 

연단 받으면서 가장 먼저 찾아오는 변화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스케일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특히, 이웃 형제를 바라보는 눈이 매우 달라집니다. 

주변을 통한 마귀의 파상공세로부터 대처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더더욱 겸손하게 바뀝니다.

무엇보다 굉장한 인내심이 축적되기에 어지간한 것에도

거의 흔들리지 않는 내성이 생깁니다.

세상 말로 표현하면, 내공이 생겨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중심을 잡고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연단은 고생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최고급 은혜입니다. 

이런 연단의 은혜는 마귀로부터 보호받으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믿음의 삶을 살고, 

주님의 일을 두려움 없이 하며,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천국을 향해 침노하는 연료가 됩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연단은 힘들지만, 그 열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합니다. 

거칠었던 내가 정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즉 육적 불순물이 제거되어 온전하고 깨끗한 영으로 만들어지는 

귀한 과정입니다.  

연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연단의 신호가 왔다면 주님께서 만지고 계심을 깨닫고 기뻐하십시오. 

이 시기는 오직 기도로 주님께 의지하며 매달려야 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께만 의지하십시오. 

이런 귀한 모습을 보일 때 주님은 기뻐하시며 더욱 품어주십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장 3-4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제의 믿음보다 오늘이 더 큰 믿음이 되어야 하고 

오늘보다 내일의 믿음이 더 좋아야 합니다.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믿음은 주님께 책망받습니다.  

후퇴하는 순간 주님은 반드시 회초리를 드십니다.

그래도 계속 후퇴하면 주님도 그냥 두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만드신 사람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로마서 1장 28절)

 

주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가장 큰 저주입니다.

그것은 지옥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더욱 발전해야 합니다. 

장성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될 때까지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몸에 지방질만 낀 사람은 병원균으로부터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온갖 질병이 걸릴만한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혹독한 훈련으로 지방을 빼고 근육질로 바뀐 사람은 건강합니다. 

연단과 고난은 불필요한 영의 지방을 빼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근육을 키워야 건강한 영을 유지합니다.   

연단은 나에 대한 주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연단)을 두려워하시지 말고 기쁨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장 10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1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