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주시는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일까요... 

가장 귀한 은혜는.. 나를 부인하고 회개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즉, 십자를 통과하도록 이끌어, 그분과 내가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 죄인을 연결시키는 통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애통한 심령을 통하여, 

자기 죄성을 주님 앞에서 쏟아내는 회개입니다. 

회개란, 먼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 알고 

애통한 맘으로 이 더러운 죄에서 돌이키도록 해달라고 

주님께 절박한 심령으로 청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그 간절함을 보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와 자기 부인이 없으면, 그분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회개는... 구원받는 믿음 형성의 필수 조건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장 17절) 

 

십자가 복음의 용광로였던 초대교회 때를 보십시오. 

회개를 빼면, 도무지 아무것도 성립될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오직 회개와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곧 회개와 자기 부인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회개가 있는 곳에는 여지없이 성령의 능력이 임하였고, 

회개가 곧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앙 풍토는 어떻습니까... 

언제부터인가, 회개의 십자가 복음 말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내 입술로 주님을 시인(?)만 하면,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준다는 

정체불명의 값싼 은혜에 장악되기 시작하면서, 

마치, 천국은...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 하며 가는 곳쯤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불같은 회개 선포의 말씀이 이제는 매우 어색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희미해진 것입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 때는 불같은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았지만, 

이 시대는 핍박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인들에게 거룩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라는 옷만 입었을 뿐, 

그 옷을 벗기면 허다한 불신자들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있어야 성령의 임재로 인해, 능력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회개가 없으니 성령의 임재가 없을 수밖에 없고, 

형식적 종교 생활로만 일관하게 되니, 거룩함의 능력이 아니라, 

노아의 때처럼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장 38~39)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오직, 철저하게 나를 부인하는 회개뿐입니다. 

회개가 빠진 기도는 이방인의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회개가 없으면... 아무리 기도해도 

겉도는 느낌이 들어 뭔가 꽉 막힌 답답함이 나타납니다. 

회개가 없으면 열심히 예배를 드려도 주님의 임재가 전혀 없는 

이방인의 공허한 행사에 그치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은 회개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사람은 절대 고쳐 쓸 수 없다고 합니다. 

묘하게도 그 말은 성경의 진리와 일치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원죄로 태어난 사람이 스스로 고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형 수술을 해도 사람 DNA 염색체는 절대 바뀌지 않듯, 

아무리 믿음 있는 척해도, 회개가 없으면 죄성의 본질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DNA를 전면 바꾸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회개는 속사람을 깨어나게 하여, 그 본질을 확 바꾸는 것입니다. 

모든 영적 문제도 회개한 후, 은혜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 안에 오신 성령께서 내 안에 가득했던 어둠을 

밀어내며, 거룩한 능력의 빛으로 내 심령을 감싸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없는 예배, 기도, 봉사는... 더러운 몸을 그대로 둔 채, 
새 옷으로만 갈아입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회개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합니다. 

필연적으로 주님의 거룩한 간섭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무슨 계기를 통해 나를 간섭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을 간절히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구한다는 의미는... 

그저 입술로만 '회개합니다'란 추상적인 요구가 아니라, 

나는 악한 죄인이오니 이 죄인을 이 악한 죄의 올무에서 벗어나 

거룩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실상의 영적 간청입니다. 

그 간청 속에는... 예전 과거의 죄성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단호한 결단이 포함된.. 마치, 절벽에 매달린 자의 절박함입니다. 

이럴 때, 그 결단이 입술만의 잔치가 아닌, 진실이라면 

성령을 보내주셔서, 내 안을 점령하고 있었던 어둠의 속성들을 

몰아내는 것이 바로 회개이자 거듭남입니다. 

 

그런데 회개가 되는 사람과 

회개가 안 되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회개하는 사람은 늘 성경을 깊이 읽으며 내 정체를 보게 됩니다. 

하여, 내 죄가 너무 싫어 끊임없이 내 죄성을 고발하며 

여기서 벗어나길 애통히 간구하게 됩니다. 

애통한 마음이 없으면, 그 마음조차 달라고 구하게 됩니다. 

또한, 내 입장이 아닌, 주님 입장에서 나를 보려고 하기 때문에 

당연히, 성경이 증거하는 온전한 회개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회개가 안 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성경을 깊이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독교인이니까 종교적 의무감으로 읽든, 아예 읽지 않든 

하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모습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회개의 마음이 없으니 성령이 임할 리 없고, 

성령께서 임하지 않으니 늘 그러하듯 육의 열매만 가득 맺다가 

심판의 그날에 주님의 진노만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꼭 기억하십시오. 

주의 성령은 진실로 회개하는 심령에게 임하십니다. 
주의 성령은 거룩 그 자체이기 때문에 죄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동행하다 천국에 가려면... 회개는 필수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당연히 다시는 죄를 범하려 하지 않겠지만,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이라도 

살아 호흡하는 동안에는 공중권세 마귀로 인하여 

늘 죄의 유혹에 놓이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애통했었던 것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죄에 대하여 매일 죽노라며 

자신을 점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 

가장 큰 은혜는 회개가 되어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고, 

가장 큰 불행은 회개가 되지 않고 있다가 호흡이 끝나는 겁니다. 

회개가 안 되는 것은 주님의 책임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잠 8:17) 

그러므로... 

회개가 안 되는 이유는 주님을 간절히 찾지 안았기 때문이고, 

회개가 되는 것은 실상의 간절함으로 주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는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고, 

이 땅에 사는 그 누구도 결코 벗어나지 못할 과정이 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호흡이 끊기면 이미 늦습니다... 

부디~ 꼭, 회개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