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되시도록 하기 위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분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포기하는 삶,

아버지의 뜻에 절대적으로 굴복하는 삶,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이

완벽한 평화와 기쁨을 주는 삶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모든 것을 드렸지만

아무것도 잃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신뢰함과 의지함을 높이 여기시고,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들을 행하시고, 그리스도를 높이셔서

자신의 오른편 영광의 보좌에 앉히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그렇게 낮추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들을 섬기는 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겸손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든지,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든지

그저 하나님께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을 따라

자신 안에서 일하시도록 순복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이

매우 귀한 가치와 유효성을 갖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 이러한 마음 상태, 영과 성향으로 행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로 결단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러한 성향으로 데려가신다.

 

우리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진정한 자기부정은 이것이다.

 

곧 우리의 자아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득 채워주셔야 할 텅 빈 그릇일 뿐

그 자체로 아무것도 선한 것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과,

우리의 자아가 무엇이 되고자 주장하거나 무엇을 하고자 주장할 때

그 주장을 한순간이라도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바로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다른 모든 것보다 자기부정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되시도록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참된 겸손의 본질과 뿌리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겸손과 관련하여 너무도 피상적이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점을 깨닫지 못하였거나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떻게 겸손해졌고

어떻게 온유해졌는지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한다(마 11:29).

 

예수님께서 진정한 겸손이 발원하는 곳이 어디인지,

그 힘을 얻는 곳이 어디인지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이가

하나님이심”(고전 12:6)을 아는데서,

참된 겸손이 기원하고 힘을 얻는다고 가르치신다.

 

우리의 자아를 완벽하게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임을 아는데서,

참된 겸손이 기원하고 힘을 얻는다고 가르치신다.

 

하나님의 영의 역사에 순복하여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역할임을 아는데서

참된 겸손이 기원하고 힘을 얻는다고 가르치신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계시하고 나누어주고자 하신 삶,

곧 죄와 자아에 대한 죽음을 이루는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삶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높은 삶이고

우리 힘이 닿기에는 너무도 먼 삶이라는

현실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것을 느낄수록 우리는

이러한 삶을 예수님 안에서 구해야 한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이러한 삶을 살아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이러한 삶을 갈망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본성을 아는 지식’이라는 거룩한 비밀을 추구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순간마다

모든 이들 안에서 모든 것들을 이루는 분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