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갈5:7,8)

 

누룩은 순식간이 온 덩이에 퍼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바람이나 신드롬, 혹은

거부하기 어려운 큰 물결이나

유행과 같다 할 수 있다.

 

왜 사람은 이같은 누룩에 취약한가?

그것은 육신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자 성향이다.

누룩이 한 번 일어나면 그것은

사람사이에서 유행병처럼 번져간다.

 

왜 그리스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했는가?

바울은 너희가 진리를 잘 순종하더니

왜 진리에 순종치 않게 하는

누룩을 받아들였느냐며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한 사람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을 향해 사는 것이다.

그의 음성을 듣고 따르려면

육신이 잠잠해야만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반드시 희생제물의 죽음이 요구되듯이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자기 존재에 대한 죽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제사나 예배의 기본적 조건이다.

 

사람의 본성은

선악을 아는 지식을

자기를 위해 사용한다.

그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탐욕적이다.

자기 만족을 위해 쉬지 않는 존재이다.

그가 어떤 바람을 노출되면

그는 쉽게 요동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순식간에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로 살아야 하는

복음을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복음을 받아

오직 그리스도로 사는 일에는

자기 존재를 부인하고 버려야 하는 포기와

그리스도가 그의 믿음을 시험하는

인내가 요구된다.

그것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육신이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는

본성이 죽어가는 연단의 과정이다.

 

그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다

어떤 사람들이 쉽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면

그것은 곧 누룩처럼 쉽게

참된 믿음을 경주하는 사람들에게

누룩처럼 번져가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누가 믿는 사람들을 요동시켜

그들을 믿음에게 떠나게 하였든지

그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호된 표현을 사용했다.

 

사람들은 그 본성이 이기적이므로

쉬운 길을 좋아한다.

넓은 문과 좁은 문이 있지만,

사람들은 급행료를 치르고라도

빠른 결과를 보기를 원하고,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를 멀리한다.

 

그러나 자기 존재가 버려지는

복음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으려면

자기 십자가라는 미련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옳아 보이는

길이라 해도 파멸을 면치 못하게 되고,

요동케 한 원인 제공자는

큰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쉬운 길을 좋아한다.

어찌 누룩의 영향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쉬운 길에 대한 미혹을 떨치고

그런 영향에 쉽게 반응코자 하는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좇는 것은

그리스도께 칭찬받는 일이다.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그들의 누룩은 개인의 경건과 열심, 노력,

그리고 선한 일을 권면하고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열정과 사랑을 추구한다.

육신은 그같은 누룩에 쉽게 반응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하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경고한 이 누룩은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만해 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육신대로 살고자 하지 않는 복음의 진수를

사실상 잘 모르기 때문이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그점을

강조하기는 커녕

바리새인의 누룩을 강조하여

더 크고 많은 열심과 헌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들을 보라.

누룩에도 종류가 많다.

이제 시작하는 강한 누룩이 있는 한편,

강하게 시작되었다가 이미 퇴색기에

접어든 누룩도 있다.

가장 나중에 시작된 누룩일수록

그 힘이 강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려는 자들이다.

자신들의 의로움과 참됨,

그리고 진정성을 주장하며

자기 열심과 의지와 열정으로 행하게 된다.

곧 그리스도께서 경고했던 누룩이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가?

무교병과 같은 그들에겐 누룩이 없다.

그것은 유행병처럼 퍼지는 성질인

누룩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5:7)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은

순수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인데,

누룩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는

그의 본성적 성향을 의미한다.

바울은 그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육신에서 나는 노력이나 열정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누룩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육신에 속한 생명을 버리셨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의 십자가 죽음은

곧 육신에 속한 우리의 것으로서,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가

아무리 옳고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육신대로 사는 것에 대해

심판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를 믿는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우리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멸시하고 부인하는 결과나 다를바 없다.

 

십자가를 향해 가는 자들이여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드리고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짊어지고

그가 인도하시는대로 따라가자.

비록 그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고,

확증되는 바가 없이

마치 안개속을 소경과 같이 더듬거리며

행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가 가증히 여기시는

타락한 우리 생명에서 나는 육신에 속한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다시 취하지 말자.

 

우리는 오직 그리스만을 바라자.

누군가 우리를 비난하고 미련하다 해도

'그에게 맡기면 그가 이루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행하자.

그의 희생되심을 내 것으로 여기고

우리 자신이 앞장서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육신의 누룩을 제거하자.

 

그가 끝내 그의 약속을 우리에게

이루시도록 그를 긍휼하심과 은혜를 바라고 그의 안에서 행하자.

어떤 증거도 없이 그의 약속만을 믿고

행하는 것은 그를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고

그와 같아지는 놀라운 은혜와 믿음의

길임을 명심하자.

 

보라. 그가 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