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 4:5)

위 말씀을 근거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이르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초림 시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천국과 회개를 선포한 사실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눅 1:17)

 

  하지만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예수님의 재림 곧 마지막 심판의

때를 가리킵니다.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자손을 많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 시키는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엘리야의 역활을 상당

부분 성취시켰지만, 위 말씀은 초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우리 시대에도 온전히 성취되어야 하는 예언입니다.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옛날 엘리야가 살던 때는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득세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뒤로하고 바알을 섬기던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그 나라를 책망하며 회개하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한 엘리야는 바알을 섬기던 선지자들을 진멸하고

바알을 섬길 것인지 여호와를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고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왕상 18:21)

 

  주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엘리야의 심령을 가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속에 취해 잠들어 있는 현대 기독교를 향해 회개를 촉구하며 교회를

개혁시키는 역사를 행하고 계십니다. 잘못된 진리를 가지고 영적으로

암흑에 빠진 타락한 교회를 책망하고, 세상이 불러주는 자장가에 졸고

있는 교회를 깨워 많은 사람들을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하는 사명을 가진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 지구 곳곳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고….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회개는 죄에서 돌이키고 다시는 그런 죄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단한

후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곧 성령의 열매입니다.

열매는 거듭난 자의 품성을 의미하고 그 품성이 외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느 교파에 속했든지 어느 교회에

다니든지 성령의 열매가 없으면 그는 구원받은 자가 아닙니다.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다. 한번 구원을 영원하다” 아무리 주장해도 소용없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나와 회개하기를 원하면서 우리가 어찌

하여야 합니까? 물을 때 그는 “예수만 믿으면 되니까 아무 염려하지 말라!

가만있으면 된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에게도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군병들에게도 “사람들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 하지” 말라 명하며 이웃

사랑과 거룩한 생애(성화)와 심판을 강조했습니다. (눅 3:9-14)

 

  혹여 세례 요한을 행위 구원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라고 말한 사도 바울도,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예수님도 행위구원자로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오늘날 성경적인 회개를 외치면 율법주의자나

행위구원자로 취급 받는 참으로 어이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았을 때 그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것처럼, 우리도 바벨론 교회들이 허문 참된 복음과 진리를 회복하고

잠자는 주의 백성들을 깨워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개혁을 통해 참된 교회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 (계 18:1-5)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한 것이나 교회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는 것으로

구원이 결코 보장되지 않습니다. 십자가 은혜는 회개가 동반되어야 하고

회개가 없으면 심판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울면서 용서만 비는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악을 다 제해버리겠다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회개는 내 힘이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받아야 가능합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인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지금은 성령으로

거듭나 엘리야의 심령을 가진 세례 요한들이 힘써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주님의 재림을 예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 이 남은 자손에 합류

하는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