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신앙은 

말씀과 성령으로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마음과 민첩한 행동이다!.


저는 모든 인간은 나름의 "신앙"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신(神)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라 할지라도 "무신앙"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신앙을 "어떤 궁극적 가치에 대한 헌신"이라고 하는 

일반적 정의(定意)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신의 존재는 부정할지언정 

자신이 궁극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그 무엇인가는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고 "돈"이나 "어떤 이념" 

혹은 "특정한 사람"(예를 들어 정치인이나 연예인, 운동선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면 

무엇이 참다운 신앙인가를 묻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신앙은 우리의 궁극적 가치를 형성해 주는 뿌리라고 하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어떤 신앙을 갖는 것에 따라 

우리 인생의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그릇된 신앙을 가짐으로 해서 자신 뿐 아니라 

온 가족, 심지어는 사회를 파괴하는 무서운 일이 

빈번히 발생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신앙"을 기반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오쇼 라즈니쉬의 한 우화는 그릇된 신앙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보여줍니다. 

한 양치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지독한 욕심쟁이라 양을 다른 누구에게도 뺏기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양들은 자신들을 도살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피했고, 기회만 오면 도망치고자 했습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양치기는 양들에게 마술을 걸었습니다.

 

모든 양들로 하여금 

"너는 양이 아니다. 두려워 말라"고 최면을 걸었습니다. 

어떤 양에게는 사자라 했고 어떤 양에게는 호랑이, 

심지어는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최면에 걸린 양들은 진짜 자신이 양이 아닌 양 착각했습니다. 

그들은 양치기의 말을 믿고 "나는 양이 아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최면이 성공하자 양치기는 마음 놓고 양들을 도살할 수 있었습니다.

양들은 동료 양들이 죽어가는 현장에서조차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양이 아니므로 

결코 죽지 아니할 것이고 지금 죽는 양들은 양들이라 

당연히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달아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릇된 신앙은 이처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 

"행복한 약속"의 최면에 걸려 패망의 현장에 서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편과 같습니다. 

아편 중독이 가져다 줄 깊은 폐해의 함정 속에서도 

순간의 기쁨에 취해 있는 모습은 그릇된 신앙의 모습에 

취한 사람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인은,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의 궁극적 가치를 가져다주는 

자신의 신앙이 옳은 것인가를 냉철하게 비판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어떤 형태의 양치기 마술의 피해자가 아닌가를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성경주석가 워렌 위어스비 (Warren Wiersbe)는

신약성경을 강해하면서 세 가지 종류의 신앙을 말합니다.

 

첫째는 맹신(dead faith)요,

둘째는 광신(demonic faith), 그리고

셋째는 참 믿음(dynamic faith)입니다.

 

맹신은 자기에 갇힌 신앙입니다. 

믿기는 믿되 자기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자신을 넘어 타자로 위임하지 않은 제한된 믿음입니다. 

말하자면 형태가 어찌되었던 자기 자신이 신앙의 중심에 

서 있는 자기애(自己愛)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광신은 자기를 넘어 타자로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맹신과 다릅니다. 

광신은 자기를 부인하고 

타자에로 전적인 헌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그것은 포장된 것일 뿐 궁극적으로는 자기애의 확장일 뿐입니다. 

엄청난 능력이 동반되고 심지어는 기상천외한 기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자기 혹은 자신의 그룹을 넘어가는 사랑으로 승화되지 않습니다. 

세상과는 달리 자기 혹은 자신들의 공동체만의 구원을 추구하는 

또 다른 형태의 자기애인 것이지요.

 

Wiersbe는 제 3 의 신앙, 곧 진정한 신앙에 대해 말합니다. 

이 신앙은 참다운 신앙의 대상과 끊임없는 교류가 이루어지는 신앙입니다. 

이 신앙은 "진리"에 근거한 신앙이기에 사람을 

"자기 최면"으로 유도하지 않습니다. 

거짓된 최면으로 "자기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애를 향한 욕망을 철저하게 부수고 

참다운 자기 부정(否定)으로 인도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향한 집착으로부터 "자유"하게 합니다. 

즉,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 그대로입니다.

 

이런 참다운 신앙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게 하며 

자신의 허물을 직시하게 합니다. 

자신을 둘러싼 온갖 거짓된 최면을 넘어 참다운 자기를 돌아보게 합니다. 

리고 마침내 우리를 참다운 진리로 온전히 귀의하게 하며,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이 신앙은 자기애의 다른 표현인 맹신과 포장된 자기애의 다른 표현인 

광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것은 "자기애"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부인했기에 "자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어느 무엇도, 강제할 수 없는 자유한 자입니다.


맹신, 광신이 우리 주변에 득세하는 시대입니다. 

거짓된 양치기가 최면을 걸어 자신의 영혼을 도적질하는데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두려운 시대입니다. 

정신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깨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맹신 광신을 넘어 "진신"(眞信)"으로 우리 자신의 영혼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고마운 말씀을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