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교육기관

 

1) 회당(Synagogue)과 산헤드린

 

주전 586년 유대인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 전 

그들의 예배 중심지는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그러나 포로 후에 유대인들은 그들이 거주하던 바벨론에서 

지역 공동체를 형성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해야 했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드릴 수 없어 대신 회당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다. 

회당은 바벨론에 끌려가기 전에도 존재했으나 

바벨론 포로시기에 보편화 되었다. 포로로 끌려갔던 디아스포라 유대들은 

회당을 종교교육 및 회합의 장소, 종교재판 등의 장소로 사용했다. 

포로 이후 회당은 유대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있었다.

 

팔레스틴에서 유대인의 통치기구는 산헤드린이었다. 

산헤드린은 대제사장 지도 아래 주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으로 구성되었다. 

산헤드린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함께 앉는다”(Sit together)라는 의미이다. 

비록 로마 통치 하에 있었지만, 민족 및 종교적인 문제 모두에서 

유대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다스렸다.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팔레스틴 밖의 유대인들도 산헤드린의 권위를 인정했다.

 


2) 유대인의 회당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자주 가르치셨다

(마 4:23; 9:35; 13:54; 막1:21; 3:1; 눅 4:15-16; 6:6; 13:10). 

바울 사도 역시 전도 여행 중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행 14:1; 17:1-3, 17; 18:4,19,26; 24:12). 

회당은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각 도시에 설립하여 유지하고 운영하였다. 

예수님 당시엔 예루살렘과 갈리리 지방에 많은 회당이 있었다고 전한다

(Ⅰ마카비 5:21-23). 

회당은 그 도시에 사는 유대인들의 사교 장소였으며 율법을 가르치고 

조상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수시키는 교육적인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회당은 성전의 대행 역할을 했는데 특히 성전과의 거리가 먼 지역에서는 

회당을 지어 성전을 대신하여 이용한 것이다. 

회당에서는 희생제물 대신 율법을 연구했고, 

제사장 대신 유대의 율법학자(Rabbi)가 봉사했다.

 

각 회당마다 회당장이 있어(막 5:22) 회당의 모든 순서를 진행시키며 

어떤 문제가 있을 때는 회당장이 지도자 역할을 하고(눅 13:14), 

회당에 새로운 사람을 소개하는 일도 회당장이 맡았다(행 13:15). 

회당에서 건물과 기물을 관리하는 관리인이 있었는데, 

그의 임무 중의 하나는 안식일의 시작과 종료를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 당시 산재해 있었던 회당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복음 전파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바울 사도 역시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유대인들과 토론도 하였던 것이다(행 13:5, 15-43; 19:8). 

이런 긴밀한 접촉으로 회당에서 행해진 의식이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 자연히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기독교의 예배가 처음에는 회당에서 행해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야고보서는 기독교회를 위해서 기록된 서신이다. 

그런데 약 2:1-2절은 기독교회가 회당에서 모인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

 

 

 

 

 

2. 유대 종파

 

1) 바리새인(The Pharisees)

 

예수님의 지상 사역 시에 가장 많은 질책과 비난을 받은 

유대인의 종교적 당파가 바리새파이다. 

바리새인들은 신약 시대에 가장 큰 세력을 소유하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당파로서, 

그들의 이름은 “Pharash”(분리하다)라는 동사에서부터 기인됐다. 

그들은 분리자였는데 좋은 말로 표현한다면 유대주의를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한 열심분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카비 시대(The Maccabees: B.C. 167-63) 직후에 

분리주의의 한 당파로 시작을 했으며, 주전 135년경에는 

유대주의 안에 깊은 뿌리를 내린 단체로 등장하였다.

 

바리새인들은 구약 전체를 정경으로 받았고, 

풍요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구약을 해석했다. 

그들은 외적인 관습을 철저하게 지켰는데(마 23:23; 눅 18:11), 

규정된 대로 철저하게 금식을 지켰으며(눅 5:33; 18:12), 

기도를 하는 데도 내면적 충실보다 외적인 전시 효과를 더 노렸다(눅 18:9-14). 

그들은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행 26:5; 빌 3:5), 

유전과 전통을 철저히 지켰고(막 7:3, 5-8), 

탐욕이 많았으며(눅 16:14), 

잔인한 핍박자들이었다(행 9:1-2; 빌 3:5-6). 

그들은 외적인 관습을 철저하게 지킨 나머지, 안식일 준수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거나(요 5:9,14; 9:13,16) 

이삭을 잘라 길가에서 먹는 것까지 안식일을 범하는 죄로 규정하게 되었다

(마 12:1,2; 눅 6-11).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은 사실을 

안식일을 범하는 네 가지 죄로 생각했다. 

첫째, 밀 이삭을 자르는 것은 추수하는 죄요. 

둘째, 이삭을 손으로 비빈 것은 타작하는 죄요. 

셋째, 껍질을 불어 날린 것은 키질하는 죄요. 

넷째, 먹기 위한 이 모든 행위는 음식을 장만하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외에도 바리새인들은 천사와 영들의 존재를 믿었고, 

영혼의 불멸과 죽은 몸의 부활을 믿었다(행 23:6-10).

 

바리새인들의 결점은 지나치게 외적인 의를 강조한 반면(눅 7:36-50), 

영적인 실재를 깨닫지 못했다(요 3:1-10)는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의식적으로 지키는 데 강조를 두었고(마 15:1-9), 

구약의 본뜻을 왜곡하여 적용했다(마 15:1,9). 

또한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는 사람을 방해하는 잘못을 범했고(요 9:16,22),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된 메시야로 영접하지 않았다(마 12:24-33).

 

바리새인들 중에는 자신을 의롭다 하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은 위선자들이 많았지만 

니고데모와 같은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추종했으며

(요 3:1-8; 7:50-52; 19:39-40), 

바리새인으로서 회개 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의 복음 전도자가 된 

바울의 예(例)도 있다(행 9장; 빌 3장).

 


바리새파에 관한 요세푸스의 기록

 

바리새파는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고, 사치스럽게 살지 않았다. 

그들은 전승된 교리에 따라 살았으며,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율법대로 살았다. 

그들은 노인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제안을 감히 반박할 엄두도 내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은 모든 것은 운명(섭리)에 의해 움직여진다고 생각하면서도, 

인간으로부터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은 영이 불멸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그 뒤에는 처벌과 보상이 있다고 믿었다…

영원한 감옥은 악한 영의 운명이며, 

반면 선한 영은 소생하여 다시 살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고 믿었다. 

이런 견해 때문에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Josephus, Ant., 18.1.3.12-13).

 

 


2) 사두개인(The Sadducees)

 

사두개파는 부자들의 당파로 특히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지주들의 당파였다. 

전통에 의하면 그들의 이름의 기원은 다윗왕과 솔로몬왕 시대에 대제사장이었던

 “사독”(Sadok)으로부터라고 전해진다. 

사독의 아들들은 포로 시대에도 제사장 직분을 맡았다

(왕상 1:32; 대하 31:10; 겔 40:46; 44:15; 48:11). 

사두개인들은 그리스도 당시에도 성전을 중심한 하나의 당파로 활약했다. 

바리새인들보다는 수자적으로 열세였으나 

그들은 정치적으로 기회를 잘 포착한 기회주의자들로서 

언제나 집권층의 편에 서서 그들의 정치적 이권과 영향력을 유지했다. 

그들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당시에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회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사두개인들의 신학은 합리주의적인 신학이었고 

초자연적인 요소를 배격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들은 천사들이나 영들의 존재를 믿지 못했고, 

육체의 부활도 믿지 못했다(행 23:8). 그들은 또한 영혼 불멸을 믿지 못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파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행 23:6-9), 

때로 예수님의 사역을 반대하기도 했다(마 16:1,6,12; 22:23).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반대에 비하면 대단치 않은 것이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과 충돌한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몸의 부활에 관한 예수님과의 논쟁이었다(눅 20:27-33). 

그들은 모세 오경(Torah)에만 최종 권위를 부여했고, 

구약의 다른 부분의 책들은 모세 오경보다 권위가 낮은 것으로 취급하였으며, 

메시야 대망 사상에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두개파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

 

사두개파는 영혼이 육체와 함께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준수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교리는 일부에 의해서만 받아들여졌다. 

그렇지만 그들 대부분이 고귀한 신분에 속한 사람들이다…

(Josephus, Ant., 18.1.4.16-17)

 

 

3) 서기관(The Scribes)

 

서기관의 기원은 제사장 겸 학사(서기관)였던 

에스라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느 8:9). 

그들은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공회의 일원들이었다(마 16:21; 26:3). 

그들은 기록된 율법을 보존하며 구전으로 내려오는 법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구전으로 전해 오는 법을 기록된 율법보다 

더 우월하게 생각했다(막 7:5-13). 

그들은 교사로서 성전에서 가르쳤으며(눅 2:46), 

율법사로 알려졌다(마 22:35). 서기관들은 그 당시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합세하여 

예수님을 처형하게 했다(막 14:43, 53; 눅 22:66).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마7:28-29).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서기관들에게 진노를 퍼부으셨다(마 23:2,13,14,15,23,27,29). 

그들은 사회 계층의 높은 위치를 좋아했고(마 23:6; 막 12:38; 눅 11:43; 20:46),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그 당시 상류층 사람들이 입고 다녔던 

통으로 짠 옷을 걸치고 다녔다. 

서기관들 중 어떤 이는 그리스도를 신뢰했지만(마 8:19)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배척했다(마 21:15).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핍박하는 것과(행 4:5)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동참하였다(행 6:12).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사관 비교1)

구분 바리새파(초자연주의자) 사두개파(자연주의자)
1.역사관 하나님의 예정과 또 이것이 인간의 의지와 일치됨을 주장 하나님의 예정을 부인하고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
2.종말관 영혼의 불멸과
육체의 부활을 믿음
부활을 부인
3.영적존재 천사와 악마의 존재를 믿음 천사와 악마의 존재를 부인
(행 23:8 참조)
4.종교의 권위 기록된 성경(구약)과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미쉬나(Mishinah)를 인정
기록된 성경인 구약,
특히 모세오경만 인정하고 모든 구전을 부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