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죄의 종(거듭나지 않음)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죄는 어쩔 수 없다 함)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지옥)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거듭남)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성령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로마서 6장 20-22절)  

 

위 말씀은... 

너희가 거듭나지 않았을 때는 죄와 더불어 있었기에 

죄의 자유함을 만끽했었고.. 인간은 어쩔 수 없다 하며 육으로 살면서 

지옥으로 향했었으나, 이제는... 

거듭나 죄로부터 해방되어 죄를 거부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구원)이라고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시절 거듭난 성도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많은 교인들이 자신은 입술로 주님을 시인했기에 

거듭난 줄 알고 위 성경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했을 때, 엄청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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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분들은 육(죄)과 세상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자유함이란 것을 잘못 이해하면 엄청난 오류에 빠집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자기 부인도, 회개도, 거듭난 적이 없었으면서도.. '나는 입술로 주님을 

시인했으니, 이제는 그리스도의 보혈 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당연히 죄로부터 자유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여, 짓는 죄에 대하여 부끄럼이 없으니

마음을 찢는 눈물의 애통한 회개가 나올 리 없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평소, 성령의 아홉 가지 거룩한 속성(열매)이 아니라, 

거듭나지 못한 육의 증상들이 삶에서 꾸준히 쏟아집니다. 

 

누가 무시하면 부들거리며 그대로 되돌려주길 다짐하고, 

너무 쉽게 자존심 상해하며, 

나보다 뭔가 뒤처진듯한 사람을 보면 내려다보려는 마음이 올라오고, 

그 반대로, 남이 나보다 잘되면 시샘이 올라오며,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뭔가를 계속 이루고, 꾸미고, 추구하게 되고, 

나와 이념과 사상과 관념이 다르면 정죄 판단 하고 싶어 못 견디며, 

분노, 혈기, 미움이 계속 올라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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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육이 습관적으로 올라오는데도 나는 믿음 안에서 자유하다 한다면... 

그는 성경에서 증거하는 진짜 자유함이 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에 붙잡혀 자유함이 없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는 늘 죄 가운데 살면서도 죄로부터 자유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모순을 영적 자유함으로 오해하며, 지옥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모습이 습관적으로 나오겠습니까... 

근본적으로, 거듭남이 없어서 

형제를 먼저 생각하는 긍휼과 사랑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이고,  

예수님의 보혈 피로.. 나에 대하여 죄가 죽었다고 잘못 이해한 겁니다. 

즉, 죄에 대하여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정확히 기억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 내가 죽는 것이지, 죄가 나에 대해 죽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지금처럼 회개와 거듭남 없이, 은혜안에 자유함을 

육(죄)의 도구로 악용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아래과 같은 경고의 말씀을 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은혜로 죄를 '퉁' 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장 1-2절)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죄)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베드로전서 2장 16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려고 (영적)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죄)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장 1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라디아서 5장 13절) 

 

위 말씀들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이 시대에 유행하는 교리처럼, '인간은 원래 연약하고, 죄의 덩어리라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며 전하고 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죄로부터 자유하다 주장하면서 육의 모습으로 살려는 사람들은 

마치... '야호~ 이제부터 자유다' 하며... 

내 맘대로 살려는 무법 주의자와 매우 흡사한 것입니다. 

사람은 죄의 덩어리라 어쩔 수 없다 하며... 은혜를 방패막이 삼아 

주님 말씀에 벗어나 사는 것이 죄에서 자유한 것입니까? 

육적 자유분방을 영적 자유함으로 대단히 큰 오해를 하는 분들입니다. 

하여, 이런 분들에게 십자가(자기 부인, 회개, 거듭남)의 도를 말하면... 

큰 거부반응을 나타냅니다. 

왜 그럴까요, 육은 빛을 밀어내고, 빛은 육을 밀어내는 영계의 법칙이 

작용하여, 내 안의 육이 십자가의 도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17절) 

 

그렇다면, 진짜 영적인 자유함은 무엇입니까... 

위에서 언급한 육에 억매인 모습에서 점차 해방되어가는 것입니다. 

즉, 누가 무시해도 분노하여 되갚지 않고, 그를 불쌍히 여길 줄 압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내 원수를 용서하려고 합니다. 

내가 매우 부족함을 알기에 나를 높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미련이 없기 때문에... 모든 걸 배설물로 여깁니다. 

상대가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정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주님께 맡기고 조용히 뒤로 물러납니다.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 인정하므로 남들을 향한 교만이 없어집니다. 

내 유익을 위해 남들에게 거짓증거 하지 않습니다. 

이기심이 없음으로... 

내 상황보다 남을 먼저 돌보려는 긍휼한 마음이 잔잔하게 올라옵니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분노, 혈기, 미움의 속성이 점점 소멸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근본적으로... 

거듭났기에, 내 형제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 

세상과 죄에 대하여 내가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가... 어찌 육이 펄펄 살아서 움직이겠습니까... 

오히려 이 사람들은... 죄가 접근해도 주님의 은혜에 힘입어 

죄를 짓는 것보다, 죄에서 멀어지는 게 훨씬 더 편한 분들입니다. 

즉... 

죄에 대하여 매우 큰 불편함을 느끼며, 거룩함에는 익숙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꾸미는 육신의 죄악로부터 자유한 것입니다. 

이는 거듭나 주님의 은혜 안에 있음으로 해서 가능한 현상입니다. 

이게 진정 주님의 은혜안에서 자유한 모습입니다. 

거듭났다고 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성도마다 성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듭난 자는 이런 길을 갑니다. 

세상의 죄가 이들을 잡아 죄의 구렁에 밀어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과 세상의 것으로부터 내 영혼이 자유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자유함의 진리를 온전히 깨닫는 분들에게 큰 복이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우리는 진정 자유해야 합니다.

자유함의 진리를 잘못 이해하여 육체(죄)의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사람은 원래 죄의 본질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마귀의 궤계입니다. 

사람은 원래 주님을 닮도록 선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마귀의 미혹에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하여 죄인이 되었을 뿐입니다. 

하여, 원래의 선함으로 회복(거듭남)시키려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부르심(복음의 말씀)에 응답하여... 

그분께 문을 여는 사람(자기를 부인, 회개하는 자)이 거듭남의 은혜를 

입어 진정한 자유함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육의 장막을 두르고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은... 

죄의 유혹이 늘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거부하면서도, 육에 끌려 죄의 근처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현상을 어쩔 수 없다며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은혜에 힘입어... 애통함의 마음으로 옷을 빨개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주님께서 진정 기뻐하는 성도입니다. 

하여... 

주님께서도 흰옷 입은 거듭난 자도 매일 옷을 빨라 하신 이유입니다.  

이런 성도가... 애통히 회개하는 세리나 다윗처럼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며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애통히 회개하는 세리의 길을 가려고 결단하십시오.

주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 세리가 그러했었듯... 

우리를 지켜보듯 하다가 반드시 만나주실 것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거듭난 성도)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고린도 후서 3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