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3:12-19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1. 서론.

1) 은총과 은혜

(1) 신앙생활을 수십 년 했다 하지만 아직도 타인에게 

   그 차이를 설명하지 못하는 신앙 용어들이 있습니다.

   한글이 어려운 것인지, 

   한자에 대한 지식이 짧아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신앙적 용어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은총과 은혜입니다.

(2) 은총과 은혜는 어떻게 다를까요? 

    이에 대해 자신있게 답을 할 수 있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거의 비슷한 뜻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성경에서는 은혜와 은총이라는 말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은혜와 은총으로 번역된 ‘헤세드(חֶסֶד)’는 

    ‘선함, 친절, 경건, 긍휼, 인자’의 뜻으로 

    ‘변함없는 사랑’ 또는 ‘끝까지 변함없이 행해지는 사랑’을 말합니다.

     또한 은혜와 은총으로 쓰이는 말 ‘헨(חֵן)’이라는 단어는 

    ‘호의, 자비, 긍휼, 은혜’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베푸는 과분한 호의를 나타냅니다.

(4)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 구약에서는 

     ‘헤세드’라는 단어와 ‘헨’이라는 단어를 

     은혜, 은총, 자비, 인자, 긍휼, 인애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5) 오늘 우리가 봉독한 출애굽기 33장에서도 

     헨과 헤세드가 혼용되어 은혜와 은총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헨’이라는 말이 13절에서는 ‘은총’으로 

     19절에서는 은혜로 번역되었고, 

     사무엘상 10장 2절에서는 ‘

     헤세드’라는 단어가 ‘은총’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처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 구분

(1)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애써서 구분해야 한다면, 

    구약시대에는 주로 은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고 

    신약시대에는 은혜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2) 구약시대에 쓰인 은총이란 말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의미(wisdom)가 강조되어 

    은총이라고 사용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favor)과 선하심(goodness), 

    그리고 미덕(beauty)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사랑과 혜택 등을 말합니다.

(3) 이에 반해 신약시대에 주로 사용된 은혜라는 말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말하려고 할 때 은혜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4) 이처럼 은혜와 은총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주시는 하나님 쪽’에서 보느냐, 

     ‘받은 인간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은총을 사용했고, 

     은혜를 사용했을 뿐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2. 본론.

1) 그러나 은사는 조금 다르게 사용됩니다.

(1)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은총을 받았다’라는 말은 

    본문 13절에서 보여지듯 

   ‘주의 목전에서 은총을 입게 하시고’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당신의 눈에 들게 하시고’) 이처럼 ‘은총’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갖는 사랑, 총애를 가리키며, 

   하나님이 인간을 바라보시는 눈빛, 

   그 마음을 가리킬 때도 사용됩니다.

(2) 은총은 드러나는 하나님의 행동이나 활동을 

    구체적으로 가리키기보다 하나님께서 품고 계시는 

    근본적인 마음, 사랑을 가리킵니다.

    거저주시는 사랑입니다.

    인간편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허락되는 하나님의 사랑이 은총입니다.

(3) 이에 반해 은사는 

    은총과 은혜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사는 ‘카리스마(Χάρισμα)’로 거저 주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은총의 결과로 또한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우리 안에서 거저 생겨나는 어떤 효과가 은사입니다.

(4)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받는 

    특별한 축복과 사랑, 총애가 은총이라면, 

    은사는 하나님께 받은 은총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나타난 능력을 의미합니다.

    은총과 은사를 빛과 그림자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빛이 사물을 비추면 그때 사물의 그림자가 나타납니다.

    빛이 활동할 때 나타난 결과가 그림자이듯이 

    하나님의 사랑인 은총이 우리를 통해 활동할 때 

    함께 나타나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은사입니다.

    빛이 하나님의 은총이이라면 

    그림자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 말할 수 있습니다.

(5)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정 능력이 발휘되어 지도력을 갖는 것’을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 즉 은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카리스마, 즉 은사란 은총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은총의 결과가 은사입니다.

    즉 성령을 통해 나타난 능력을 은사라 합니다.

(6) 은사는 특이하고 열광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때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결과입니다.

    물론 내용은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7) 그 내용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은 탁월한 통솔력을 가졌고, 

    어떤 사람은 남을 위로하는 능력을 가졌고, 

    어떤 사람은 언변이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일을 추진하는 능력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말주변은 없지만 마음이 부드럽고 따스해서 

    누구와도 잘 지내고 

    상대방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8) 이처럼 다양한, 그러나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은사로 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의 은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때 

    성도로서 체험하고 갖게 됩니다.


2)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를 위해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1)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면 

   성도들은 저마다 다른 은사을 받았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은사를 어떻게 인정하는가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받은 은사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가, 

   주님을 위한 주님의 능력으로 인정하는가입니다.

   자신의 것으로 여기면 은사는 교회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고 주님께 꾸중을 듣습니다.

(2) 또한 성도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다른 사람의 은사와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교하면 열등감이나 우월감이 생깁니다. 

   열등감이든 우월감이든 이 두 가지는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은사의 ‘크고 작음, 많고 적고’의 판단과 

   ‘더 좋아 보이는 은사’라는 말은 

   하나님의 잣대가 아닌 우리 인간들의 잣대일 뿐입니다.

   은사의 가치는 그것을 주신 분, 곧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3) 성도들이 살펴볼 기준은 

   누가 더 크고 좋은 은사를 받았는가가 아닙니다.

   성도들은 저마다 다른 은사를 받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받은 이 은사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은사를 허락하신 것은 

   공동체, 즉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내용은 

   주님께 받은 은사를 교회,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는가,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가입니다.

(4)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은사가 필요합니다.

   은사의 종류나 크기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은사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충실히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시선에 따라 움직이고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5)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란 어떤 영토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은사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음을 증거하는 징표가 될 것입니다.



3. 결론.

1) 이처럼 은총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특별한 축복과 사랑입니다.

(1) 그리고 은사는 

    하나님께 받은 은총을 드러내는데 필요한 능력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빛이 사물을 비추면 그림자가 나타납니다.

    이를 하나님의 은총과 

    카리스마(은사)에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빛은 하나님의 은총이며 그림자는 카리스마 - 은사입니다.

(2) 우리가 빛이신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그림자가 생깁니다.

    즉 은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그 그림자는 전적으로 빛에 의해 생기고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3) 카리스마의 주도권은 빛이 되시는 주님께 있습니다.

    내 능력, 힘과는 무관합니다.

    그저 나는 빛되신 주님 앞에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시간에 따라 해의 위치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듯 

    주님이 나를 비추면 나는 주님에 의해서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어 냅니다. 

    다양한 은사를 쏟아내게 되는 것이지요.

(4)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은사가 사라져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빛의 위치가 바뀌면 그림자의 모양도 바뀐 것처럼 

    은총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방향이 바뀌면 

    내게 나타나는 은사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 뿐입니다. 

    그럼으로 은사가 사라졌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사도 바울의 고백

(1) 교회를 섬김으로 덕을 세우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맞는 은사 - 달란트를 허락하십니다.

    그 모습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어떤 이는 사도의 직책을 은사로 받았고,

    어떤 이는 예언자의 직책을 은사로 받았으며,

    어떤 이는 교사의 직책을 은사로 받았고,

    어떤 이는 기적의 은사를 받았고,

    어떤 이는 치유의 은사를 받았으며,

    어떤 이는 봉사의 은사를 받았고,

    어떤 이는 지도의 은사를 받았고,

    어떤 이는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며,

    어떤 이는 해석의 은사를 받았다.

    이처럼 우리가 받은 은사는 

    결국 그리스도 안에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준다.

(2) 하나님은 모든 이들에게 은총을 허락하십니다.

    다만 그 은총을 깨닫는 자는 

    자신의 그림자가 은사인 줄로 알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빛되신 주님께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추려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충성하며 헌신하면 주의 은사는 

    더욱더 또렷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3) 그런 점에서 은사를 받는 성도들은 

    더욱더 감사하며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삶, 오직 주님의 뜻을 바라보는 

    믿음의 자리에 서야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령의 은사를 

    더욱 또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4) 받은 은사를 잘 깨닫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번에 할 수 없으면 두 번에, 

하루에 할 수 없으면 사흘에, 

일 년에 갈 수 없으면 평생을 통해 

혼자서 백 보가 아닌 함께 일 보를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