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 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 7 : 22 – 23)

 

성경에서는 교만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지으신 천사장 루시퍼가 교만하여져서

사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다 아실것입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능력 있는 자리에 있다할지라도

교만하면 그 사람은 사탄의 앞잡이가 될수 있다는

것이지요.

 

교만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교만한 가료유다가 자신을 죽이고,

교만한 우리가 이웃을 살리기는커녕 정죄하며

죽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만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누어 봅니다.

 

성경에서는 교만 “ 하면

"패망의 선봉" 즉 확실하게 망한다 합니다.

 

위의 본문 말씀에서 말하는 영원히 망할 사람들은

불신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선지자,

귀신을 쫒고,

권능도 행한 자들입니다.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복음전한 자들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망할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내가"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앞세우면서..

우리가내가 했다는 것입니다..

 

교만의 자리는 다름 아닌 중심을

나 자신에게 우리에게 두었다는 것이지요.

 

내 생각에는,,

내가 보기에는,,

내가 상처 받았다,,

내가 기도했더니,,

내가 이렇게 섬겼다,,

우리가 이렇게 했다,,

 

디모데후서 3장말씀에 나열된 모든 것의 초점이

우리의 중심에는 인본주의가 깊게 스며들어 있지요..

신앙안에까지 넘 깊게 들어와 있어서

정말 말씀앞에서 분별하지 않음 속게 되어 있습니다.

 

인류최조의 범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경홀히 여기면서 시작되었지요.

그 후예가 하는일들이 인본주의 문화, 문명,, 바벨성,,

오늘날 모든 목적이 되었지요.

우리가 좋아야,,

우리의 이름을 지면에 높이자!

 

모든 출발점이

나 

우리 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이지요.

 

우리가 사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아닙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자리는 십자가 아닙니까?

참된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통치하시고

살아주시는 삶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교만의 자리는

하나님“ 의 자리에

내가“ 앉은 자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쉬지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기도처럼 우리 또한 이것 때문에

무릎 꿇어야 하고,

울어야 하고,

부르짖어야 하지 않을까요?

 

교만한 사람은

내가"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사람의 삶속에는 원망과 상처로 얼룩져서 

그 아픔을 안고 미움속에서 판단정죄속에

자기자신까지 죽이며 행복해야할

부부가정동역공동체에 속해서도 행복할수 가 없답니다.

 

 그 중심에는 내 눈이 밝아진 선악과“ 의 결과만 있지요.

우리로 시작하면

늘 선악의 열매을 따먹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본성이 그렇게 태어난 존재이기에..

 

내가 중심이 되어선 결코

하나님 나라의 평강과 생명의 흐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 자리를

내가“ 라 하는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시대 신앙생활의 모든 혼란의 원인은

사단이 먹인 너의 눈이 밝아 질 것이다 하는

선악지식열매 때문이지요.

 

그래도,, 내가

부활의 “십자가”

내가가 없어진 자리입니다.

 

자신이 부인되어지지 않고는

그 십자가로 남도 죽이고

자신도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자리는

평안과 감사와 섬김과 용서와 사랑이 흐르는 자리이지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이 임마누엘 해 주신

요셉스데반바울과 십자가를 진 믿음의 선배들은

오직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교만의 자리에 있습니까?

겸손의 자리에 있습니까?

 

내가에서 주님으로 바꾸는 훈련을 오늘부터 시작해 봅시다.

교만의 선봉에 서있던 저 자신 오늘부터

오직예수로 시작하렵니다.

 

“십자가”의 주님

부활하신 주님

오늘도 함께 살아주시는 주님

내가 아닌

주님이 살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