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충신의 표본으로 알려진

포은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가

자식들의 훈육을 위해 지었다는 시조가 있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고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예전에는 예수쟁이도 그러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들을 때는 매우 불쾌하고 힘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참 고맙고 그립습니다.

이젠 더 이상 세상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온갖 부패와 부정 속에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있습니다.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타협하면서 세상에 취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혜고 이것이 승리라고 노래합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예수쟁이가 그러냐는 소리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섞여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뚜렷이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타협하거나 그 불의를 취하지 않아야합니다.

물과 기름이 절대로 섞이지 않는 것처럼

또 빛과 어둠이 공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섞여져서는 안 됩니다.

요한은 이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요한일서 4장 4~5절)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적시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자신의 믿음만 굳세면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적당히 세상과 함께 해야 세상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옳은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더러움은 쉽게 묻어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은

믿음이라기보다는 자기 합리화나 교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크게 두 부류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교인으로,

교회에 출석만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만 교회에 나와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조용히, 적당히,

원만하게 교회 생활을 즐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부류의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말로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성도로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며 

더 헌신하고, 봉사하며,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로 구별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직 성도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성도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같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우리들이 늘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구별된 삶을 살고 싶지만,

어떤 때는 주변의 상황들이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라고 하면서

세속 문화에 동화되어 살아갑니다.

한 그리스도인 자매가 상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자신을 지키려면

상당한 힘과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동료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속적이고 저속한 말과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처음에는,

동료들의 습관에 자신도 젖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혹은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말이

입에서 흘러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녀는

그들의 생활방식에 함께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신의 마음에 전혀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오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놀라게 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지킨 순수함을 한 선배 그리스도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듣고 있던 그 선배는

그녀에게 이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무리 더러운 곳에나 진흙 속을 다녀도

비둘기가 결코 더러워지지 않고

항상 깨끗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비둘기의 날개에서 끊임없이

세척제 역할을 하는 기름이 흘러나오기 때문이야.

비둘기가 이런 방식으로 깨끗함을 유지하듯

우리 마음이 항상 말씀에 충만해 있으면

성령의 기름이 우리 죄를 씻어

죄의 더러움에서 순결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자기가 소속된 곳이 어디인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비 그리스도인과 똑같이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허식일 뿐입니다.

주일 예배를 통하여 믿음이 고양되고,

할렐루야 대회에서 눈물 콧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았다. 해도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세상에 익숙해지면 믿음은 식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말과 입(혀)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통해서,,,

말씀에 순종함을 통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함(순종)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만 왔다갔다 하면서

입술로만 그리스도인이라 하지 말고

순종의 삶과 열매로 그리스도인임을 입증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