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평생동안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누군가를 의식치 않고.. 유아독존처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여론을 의식하고, 회사원은 상급자를 의식하고.. 등등

이렇듯 각자 연관된 사회시스템 속에서 수없이 서로 의식합니다. 

왜 의식합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흠 잡히는 걸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서로 의식하면서, 주님은 왜 의식하지 않습니까... 
그분을 향한 믿음이 있다면 어찌 주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당에서는 감춰진 자신의 육적 모습을 흠 잡히지 않기 위해 
서로 의식하면서 말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사람은 뚜렷한 실체를 느끼기에 의식할 수밖에 없지만, 

안 보이는 주님은 당장 실체를 못 느끼기에 의식치 않는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사람은 두렵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은 두렵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속 마음까지도 모두 통찰하는 주님을 의식하고 있다면(믿음이 있다면)... 
코람데오의 주님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곧, 그분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이론으로만 받아들였을 뿐, 영적 실상으로 받아들인 적 없기에 
나타나는 현상이고, 이는 곧 허상의 믿음이란 증거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두려워하고 사랑함)이 지식(믿음)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의식치 않음)하느니라 (잠언 1장 7절)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라기 1장 6절) 
 

위 말씀의 요지는... 

실상적 삶으로는 공경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그저... 

립서비스로만, '주여주여 내 주님을 공경하나이다' 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말과 행동이 전혀 다름을 지적한 주님의 따끔한 일침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내세우는 주장이 있습니다. 

"어허~ 무슨 소리야!!, 원죄의 습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어찌 죄를 안 범하고 살 수 있어... 그러니 십자가 은혜가 필요하지... 
아무리 믿어도 육의 본능이 있는데 어찌 맨날 주님을 의식하며 사는가... 

나는 죽어도 그렇게는 못 살아!!........ " 

안 된 말씀이지만, 성경 어디에도 이런 늬앙스의 말씀은 전혀 없습니다. 

사람의 육적 생각일 뿐입니다. 
이처럼, 이런 마음에 잡힌 사람들은 애초에... 

죄의 찔림도, 회개할 마음도, 그분을 의식할 마음도 없습니다. 
십자가 은혜로 자신의 육을 퉁치려는데.. 어찌 마음이 찢어지겠습니까... 
어찌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애통의 마음이 올라오겠습니까... 
어찌 뜨거운 눈물의 회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마음을 찢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기 육을 합리화하며 

배 째라는 식의 길로 갑니다.(신앙 글에 이런 표현을 써서 송구합니다.

이 표현이 가장 리얼하게 느낄 것 같아서 그렇게 함을 용서하십시오.) 
반면에,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그분 앞에 죄를 지었다면...

이에 너무 마음이 찔려 
이 죄인이 주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나이다' 하며 
다윗처럼 죄에 대해 너무 괴로워 애통함의 눈물로 회개의 길을 갑니다. 
이것이 바로 똑같은 죄를 지어도 혼적 지식으로만 주님을 아는 사람과 
거듭나 영으로 주님을 알며 의식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굳건한 성도라면... 주님께서 
원치 않는 죄들을 피하려는 성향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관성에 이끌려 죄의 근처에 갔다가도 
주님을 의식해, 내가 왜 이럴까 하며 
마음을 찢어 회개하는 영성이 깊히 각인되어있습니다. 
모든 걸 보는 주님 앞에, 내 치부(죄를)를 은밀히 감출 수도 없을 것이고, 
아담과 하와처럼 억지스럽게 숨는다고 숨기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찢어 회개하는 이유는... 
주님을 의식하는 것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십자가 은혜가 너무 깊어, 차마 그분을 실망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내 죄로 인해 실망할 걸 생각하니... 내 맘이 너무 괴로운 겁니다. 
하여, 심장이 찢어지는 괴로움으로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육신의 부모가 나를 애지중지 잘 키워 주셔서 
지금의 내가 있도록 만들었다면 
그것에 너무 감사하여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을 실망시켰다면 부모님 얼굴을 뵙기 민망해 
너무 괴로울 것이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려는 마음이 확고히 들어설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부모를 실망시킨 자신이 너무 어리석어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공통으로 지닌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은혜를 뻔히 알면서도 
그분 앞에서 죄를 범하였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이것이 온전히 믿는 이의 진짜 영성입니다. 

그저 습관적 입술로만... 주님 은혜에 감사하다고 하면 무엇하겠습니까... 
일상의 삶에서는, 입술 고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데 말입니다. 
은혜에 감사함은... 내 입술로만 감사한다고 하는 립서비스가 아니라, 
삶에서 묻어나는 평소 영성으로 증거되는 것입니다. 
 
배은망덕(背恩忘德)이란 말이 있습니다. 
은혜를 망각하고, 은혜 베푼 사람을 배신한다는 뜻입니다. 
또는 키워주신 부모님 은혜를 망각하고 불효한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이란 말이 있습니다. 
은혜에 감사하여 끝까지 잊지 않고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나는 주님께... 배은망덕의 사람인지, 결초보은의 사람인지 살피십시오. 
천국은, 거듭나 결초보은하는 거룩한 성도들이 가는 곳이지, 
입술로만 사랑, 은혜, 믿음, 감사 외치면서 
정작 평소의 삶에서는 배은망덕 하는 이들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 입술로는 주님의 은혜가 어떠니 하면서도 일상의 삶에서는 
배은망덕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자식을 낳은 부모가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매의 눈처럼 살피듯... 
주님께서도 세상을 만드신 후, 사람의 모든 걸 면밀히 살피고 계십니다. 
육신의 부모도 내 자식이 잘 성장하여 진심으로 부모님을 사랑하고, 
형제끼리 사랑하며 잘 지내는 걸 최고의 낙으로 여기듯 
우리를 만드신 주님께서도...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이웃 형제들과도 서로 사랑하며 잘 지내는 걸, 큰 기쁨으로 여기십니다. 
사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최고의 기쁨이자 바램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장 30-31절) 
 
주님 은혜에 진정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시선(공의)과 은혜(사랑)를 늘 의식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즉, 코람데오의 주님 시선을.. 늘 두렵고 떨림으로 의식하는 성도들만이 
주님과 내 형제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영성이 박혀있습니다.

그러나...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사람들은 
그저 은혜만 받으려 할 뿐, 결코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듭니다. 
삶에서는 여전히 육의 모습을 고수한 채 살아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다못해, 남녀 사이도 사랑하면, 서로에게 잘 보이려 상대를 의식하며 

어떡하든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이처럼... 남녀 관계든, 주님과의 관계든...

서로 사랑하면 반드시 삶으로 표현되게 되어있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 걸 다 아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심령, 의도)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21장 2절)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의 영성은... 실상으로 펼쳐지는 삶이지, 
머릿속의 이론과 립서비스로만 좌지우지하려는, 허상의 것이 아닙니다. 
영의 세계관이 현실의 세계관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삶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육적인 영성 소유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성령으로 거듭난 영성 소유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지옥)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천국)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인정,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 8장 5-8절) 
 
그래서 거듭나 거룩한 영성을 지닌 이들이 
현실 세계관인 일상적인 삶에서도 거룩함이 흘러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증거하는 믿음이라 하고, 믿음의 삶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육의 영성을 지닌 사람들이 평소의 삶에서, 그 영성 그대로
육의 모습이 흘러나오는데... 
아무리 '주여 주님을 믿습니다' 외친들 이걸 믿음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바울 사도가 경고한... 된 적도 없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허상의 믿음입니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온전한 믿음이 아니면서)
된 줄로(온전한 믿음이라)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갈라디아서 6장 3절)
 
온전한 믿음의 영성은... 
평소의 삶에서 반드시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어있고,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하여 배은망덕이 아닌, 결초보은하여 끝날까지 
그분을 의식하며 그분의 거룩한 마음을 품으려고 합니다. 
나의 현재 영성은 배은망덕의 영성인지, 결초보은의 영성인지 돌아보고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 끝까지 결초보은의 영성으로 가시길 
간절히 권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