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비보셋은 다윗의 절친한 친구 요나단의 아들입니다

성경은 큰 전쟁이야기뿐만 아니라 어떤 개인의 하찮아 보이는 이야기도

모두 그 속에 우리 구속의 경륜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 각도에서

므비보셋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절뚝발이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

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의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 나이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하더니 급히 도망하므로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삼하 4:4)

아마 어린 므비보셋이 깊은 웅덩이나 낭떠러지에 떨어지며 무릎 뼈가

상한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도 마귀의 깊은 지하 감옥에 떨어져(타락하여)

불구자(죄의 종) 가 되어 올바르게 길을 걷지 못하는 절뚝발이들 입니다.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삼하 9:3)

므비보셋이 몰래 숨어사는 것을 안 다윗 왕은 그를 불러오라고 합니다.

다윗 왕으로부터 호출된 므비보셋은 “이제 나는 죽었구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여 왕 앞에 나아가 엎드려 머리를 땅에 대고 벌벌 떨었습니다.

우리들도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 이었습니다. (엡 2:1).

그럼에도 왕이신 주님이 죄인인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우리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주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종이 여기

있나이다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삼하 9:6-7)

다윗과 요나단은 깊은 우정의 언약을 맺은 사이입니다.(삼상 18:3, 20:16)

우리도 아무 자격이 없는 무익한 종이지만 주님 앞에 엎드려 굴복하여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구주로 받아드리고 주님께서 맺으신 새

언약 안에 거하여 거듭나면 (렘 31:31-33),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

주님께서 베푸시는 진미의 음식을 항상 먹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니이까” (삼하 9:8)

므비보셋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다윗 왕의 놀라운 관대함에 큰 충격과

함께 감격과 감사함으로 자신을 죽은 개로 낮추며 위와 같이 외쳤습니다.  

만일 우리들도 므비보셋처럼 주님께 저렇게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다면,

절대로 주님 말씀과 계명에 불순종하거나 범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이들이 주님의 크신 자비와 은혜를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며 뻔뻔스러워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십자가의 감격과 감사가 사라져

경건의 모양만 가진 바리새인들처럼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말씀과 계명에 불순종하고 범죄하는 유일한 이유는 주님의

상에서 양식(말씀)을 먹으며 주님과 함께 살고 있지 않기에 주님의 크신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요일 3:6)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므비보셋이

왕의 식탁에 앉아 왕자들 중 하나로 특권을 누리며 은혜의 생명의 떡을

먹으면서 어떻게 그 사랑을 베푼 왕께 불순종하며 범죄할 수 있겠습니까 …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요일 3:1)

우리가 불구자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온전한 자로 변화되는 길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지 깨닫는 일입니다. 이것이 므비보셋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원동력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을 공로가 전혀 없는 나를 왜 왕자로 공주로 대우해

주시는지 … 그 사랑과 감격과 감사를 결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우리는 십자가를 멀리서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 밑으로 가까이 나아가

나를 위해 피와 물을 쏟으며 돌아가신 주님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을 진정 아는 사람은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소원을

두고 기쁨으로 주님의 뜻을 행하게 됩니다. 내 노력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이끌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시144:3-4)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똑바로 바른 길을 가지 못하는 절뚝발이로서 저

므비보셋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매일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불구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사 하늘나라로 데려가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나의 존재를 바로

보고 깨달아 겸손하게 주님의 뜻만을 따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롬 5:5) 되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해 세상과 나를 부인하고 온전히 주님께 굴복하여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