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님을 믿으며 

간혹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가령...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 즉시 믿음이 100% 완성되어 구원받는 줄 압니다. 

예를 들면... 어떤 죄에 대하여도 전혀 요동치 않고 굳건하다 확신하는데,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삶 속에서 육의 속성이 뜨문뜨문 올라오면 

나는 주님을 확실히 믿는다고 하면서, 

'왜 이런 모습이 나올까...' 하며 자신에게 실망하여 괴로워합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나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옛사람의 모습이 점점 소멸해가는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거듭나 주님을 영접하자마자... 

믿음에 관한 모든 것들이 100% 완성됨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을 향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계속 성장하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에베소서 4장 13-15절)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브리서 5장 14절) 

 

위 말씀이 바로 그것을 증거합니다. 

위 말씀은 입술로만 '주여' 하는 종교적인 사람에게 전한 말씀이 아니라, 

당시의 진정 성령으로 거듭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한 말씀입니다. 

즉, 이 시대도 그때처럼 그런 성도에게만 해당됩니다. 

이처럼 새 생명을 얻었다고... 

단번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의 젖을 먹고, 더 성장하면 죽 같이 무른 음식을 

섭취하게 되며, 더욱 성장하면 거칠고 단단한 음식도 먹게 되듯 

내 영도 새롭게 태어나면 

육체의 성장 과정처럼 되어간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이게 거듭난 심령의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고 꼭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영성이 정체되거나 퇴보하는 과정도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두려운 현상입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히브리서 5장 12절)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6장 4-6절) 

 

이처럼, 누구는 영적 성장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영적으로 퇴보하여 심각하게 되는 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어른이 되기까지... 매일 성장시킬 음식을 먹어야 하듯, 

성령으로 거듭나면 끊임없이 기름을 준비하며, 깨어있어야 하고, 

매일 은혜를 먹으며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침노하는 이들은 매일 주님께 은혜를 구하며, 

성장동력의 은혜를 하루라도 먹지 못하면... 육신이 배고파 힘든 것보다 

심령이 더 배고파 괴로워한다는 것입니다. 하여, 성경을 매일 읽게되고, 

본질적으로 합당한 신앙 글들을 안 읽으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본입니다. 

 

그렇다면... 

갓 변화된 사람은 어떤 상태가 되는 것일까요... 

옛사람일 때는... 화나면 못 참고 그대로 쏟아내는 성격의 사람이었지만, 

변화되면, 자비의 마음이 분노의 마음을 이기도록 점점 이끌어줍니다. 

사랑과 긍휼의 열매가, 미워하는 마음을 이기도록 이끌어줍니다. 

인내와 절제의 열매가, 육(죄)으로 끌려가는 마음을 눌러 저지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내 안에서 행하시는 주님(성령)의 은혜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육)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주님 성품)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11장 19-20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장 13절)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내하는 경우는 믿지 않는 자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물론... 인본적으로 보기에는 충분히 그럴 것이라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거듭난 성도와 안 그런 사람의 속사람 차이는 분명히 다릅니다. 

거듭나지 않은 이가 참고 인내하는 것은... 

그순간 안 참으면, 파장이 커질 걸 우려한 인간적 계산심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속에 있는 분노의 속성이 근본적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다시 찾아오면 

또 상대를 탓하며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이렇듯 또 부들거림이 올라와 

계속 육의 속성에 잡혀있게 되니, 영적 자유함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변화된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상대가 아닌, 자신만을 돌아보고 애통히 가슴을 칩니다. 

'나는 왜 이모양일까' 하며 자신을 탓하는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육적으로 분한 심리 상태가 

마음속에서 점차 힘을 잃고 소멸해가며, 영적 자유함이 찾아옵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하여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점령해 들어갑니다. 

이것이 성장하는 모습이며 이는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역사(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되기 전과 후의 근본적 차이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6장 13절) 

 

믿음의 내공이 엄청날 것 같은 그 유명한 바울 사도가 

도대체 뭐가 부족하여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며 괴로워했겠습니까... 

이 땅에 사는 한,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죄로 속박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바울은 주님 은혜로, 죄에 대해 날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 모습이 바로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심령 상태의 표본이란 것입니다. 

죄성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며, 그 사라진 자리에 거룩으로 채워갑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처럼... 주님의 은혜로 날마다 심령의 빈공을 채워가며 

끈질긴 육(죄)의 속박으로부터 점점 자유롭게 되어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악과로 스며든 이런 악한 육의 속성들이 

거듭날 때 들어온 성령의 9가지 선한 열매에게... 점차적 패배해 갑니다. 

이는 곧, 육이 점점 죽어가며 성화 되어간다는 의미이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며,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는 성도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은... 단 하루라도 주님을 찾지 아니하면 견딜 수 없어 하며, 

매일매일 주님 은혜에 목말라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믿음이라는 것은 점차적으로 성장해가는 것이지 

다 된 완성형이 아니란 것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장 12절) 

 

그러므로 

구원이나 휴거 교리가 어떻고, 뭐가 어떻다고 하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복음의 말씀을 접했다면 갈급하게 주님을 구하고 찾아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여 

육이 죽고 영이 사는 거듭남이 먼저입니다. 

여러 지식을 머리에 입력했다고... 그 지식 자체가 구원시키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아무리 여러 가지 지식을 머릿속에 입력시켰어도 

변화 받기 전에는 이 모든 것들은 다 배설물이란 것입니다. 

즉, 휴거 지식이 많다 하여 휴거되는 게 아니고, 

구원 교리에 대해 빠삭하게 안다고 하여 구원되는 것이 아니며, 

666 짐승 표에 대해 이런저런 지식이 많다 하여 그걸 안 받는 게 아니며, 

세상 소문과 난리와 현상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거기에서 구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새 생명으로 변화 받아야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하여, 거듭난 성도는 더욱 성장해야 하며, 

아직 주님을 못 만난 분들은 주님 만나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죽어서 구원받든지, 살아 휴거되든지, 이 모든 건 거듭나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변화된 성도는 이런저런 교리적 지식을 몰라도, 이 땅에서부터 

주님 인도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다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께서 그(진리) 방향으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니, 부디 세상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부디~ 주님께만 집중하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 날이 정말 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