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마귀)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은 후...

사람은 영의 거룩한 속성이 잠들고, 육의 악한 속성이 형성됩니다. 

교만, 탐욕, 정죄, 판단, 다툼, 분노, 불만, 미움, 시기, 자존심, 비난, 거짓, 가식, 

위선, 빈정거림, 용서하지 않는 마음... 즉, 마귀의 속성들입니다. 

이것을 자아라고 통칭하는데, 마귀가 선악과로 심어준 이 악한 자아는 

얼마나 끈질긴지, 주님 곁에 가는 그날까지 집요할 정도로 나를 괴롭힙니다. 

이것이 바로 죄를 유발시키는 육의 속성(죄성)이며 천국행 길을 방해합니다.  

이 자아를 떨쳐내는 것은 그 누구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도... 

결국, 이 자아(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자아를 떨치고 가는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고,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자아를 버리고자 결단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9장 23절) 

 

자아는 내 능력으로 절대 떨쳐낼 수 없습니다. 

어떤 복잡한 기계도, 기계 스스로 고장 난 부분을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그 기계를 만든 사람만이.. 그 기계를 알기에 제일 잘 고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직 나를 만드신 주님만이 제일 잘 고칠 수 있습니다. 

즉, 주님의 은혜가 임해야만 해결될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주님을 구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구하고 구하면..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주님께서 이끌기 때문입니다. 

 

자아에 대해 간략 말씀드렸습니다.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육의 리더쉽과 영의 리더쉽입니다. 

육의 속성(마귀 속성)과 주님 속성(성령의 열매)의 절대적 연관성 때문입니다.  

리더쉽은 상대가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사람을 대하는 습성을 말합니다. 

 

육의 리더쉽은... 

상대에게 내가 정한 육적 룰의 틀에 들어오도록 강요하는 리더쉽입니다. 

즉, 주님의 방식이 아닌, 나의 인본적인 방식대로만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리더쉽은 나로 인해, 상대를 매우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마치 새에게 계속 쪼이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상대는 괴로운 다툼을 피하고자, 그저 이끌려주는 척할 뿐이지, 내면으로는 

상대 의도대로 마냥 이끌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그만의 기준과 룰이 확고한데 

내가 정한 룰대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겠습니까... 

그래서 육의 리더쉽은... 늘 충돌이 있고, 다툼이 있고,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서로 자신에게 있는 기준만이 옳다며, 상대의 룰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을 분열하게 만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이런 육의 리더쉽을 가진 분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조차도, 내가 나를 다스리려 하면 죄가 되는데, 

하물며... 어찌, 내 기준을 앞세워 다른 사람들을 컨트럴하려 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자아가 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의 리더쉽은 무엇입니까... 

내 안의 주님(성령)이 주체가 되어 나를 통해 그분의 속성(성령의 열매)으로 

상대를 대하는 방식... 즉, 내 룰이 아니라... 주님의 룰로 상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정한 룰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거부할 명분)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이 성령의 열매로 사람을 대하는데

어느 상대가 이를 거부하며 다툼과 스트레스와 고성이 있겠습니까... 

하여 이같은 걸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담아 대하는 얼굴에는... 침을 뱉을만한 명분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여, 주님의 룰로 사람을 대하면... 

상대도 나를 함부로 생각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이끌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의 리더쉽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직접 말씀하십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너희(거듭난 그리스도인)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성령께서 빛나시게 함)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내가 상대하는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주님의 룰/성령의 열매)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주님을 닮은 모습)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4-16절) 

 

위 말씀은... 내 룰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맡기고, 그분의 룰로 상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습만 갖추면, 굳이 내가 뭐라 안 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이끌립니다. 

주님을 닮은 거룩한 모습이 나를 통해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의 리더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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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올린 말씀을 복기하며 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정한 룰의 기준대로 이루어지길 원하기에 

어딜 가든  쌍방간 항상 고통과 스트레스와 다툼과 정죄판단을 몰고다닙니다. 

이것은 천국에 합당한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를 기준에 두고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들면, 나는 전혀 문제가 없고, 

상대만 문제 있는 것으로 분석해.. 나를 정당화하는 무서운 현상이 생깁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자신을 심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내 눈의 들보는 정당화하면서, 남의 눈 티를, 내 룰로 빼내려 하면 안 됩니다. 

상대 역시 내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에 꽂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내 눈 속의 들보를 꺼내달라고 주님께 매달리십시오. 

자기를 부인하라는 뜻입니다. 

그저, 말로만 '자기 부인, 자기 부인' 외치는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실상 내 육적 기준으로 만든 룰들을 다 버리고 주님의 룰로 채워져야 됩니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태복음 5장 41절) 

 

우리는 일반적으로... 

누가 오 리를 가자고 하면, 내 기준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에 

어이없다는 듯 상대를 바라보며 십 리를 동행하기는커녕,  왜 그쪽으로 가냐 

훈계하며 상대방을 휙 돌려세운 후, 내가 가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 합니다. 

그 사람이 왜 오 리를 가자고 했는지 그 사람 입장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만 소중히 여깁니다. 

이런 모습은... 기독교인이라면 모두 버려야 하는 마귀의 속성들입니다. 

왜 오 리를 가자 하면, 십 리를 가라 말씀하셨는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상황의 중심이 내가 아닌, 그를 사랑하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사랑하기에, 오 리는 물론, 십 리도 갈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리를 가자 할 때 십 리를 가주는 게 주님의 리더쉽입니다. 

 

물의 흐름을 관찰해보십시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주님께서 정한 이치입니다. 

내가 높은 곳에 위치해 내 룰대로 물줄기를 다룬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줄기는 이를 외면하며, 낮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흘러갈 뿐입니다.  

가장 낮은 바다까지 가서야 잔잔하게 되어 흐름을 멈춥니다. 

마찬가지로... 

내 룰로 남을 다루려는 것은, 높은 곳에서 물줄기를 다루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방식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게 아니라, 물처럼 떠나게 합니다. 

그러나, 가장 낮은 곳인 바다(주님의 방식)에 내가 위치하면... 

내가 어찌하지 않아도 물은 나를 감싸며 자연스레 모여들도록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정한 빛과 소금의 법칙입니다. 

거듭나면 나를 통해 그분의 룰(영의 리더쉽)대로 이끌어가십니다. 

주님을 전혀 몰랐을 때는.. 누구나 세상 방식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을 알았다면 주님의 방식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거듭남 없이 주님의 룰로 사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박하게 주님을 구하고 또 구하며, 끝까지 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포도나무에 접붙임 당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 15:5) 

 

아무리 내 의지와 기준대로 상대를 바꿔보려 한들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무슨 능력으로 사람이 사람을 바뀌게 한단 말입니까...  

오히려 상호간 트러블과 스트레스만 생겨 괴로울 뿐입니다. 

부드러운 권면은 좋겠으나, 집요한 강요는 부작용만 불러옵니다. 

오직 주님께서 터치해야만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가 할 것은... 오직 주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와 간구 뿐입니다. 

그것도 내 기준이 아닌, 주님의 기준으로 바뀌도록 말입니다.  

 

부디, 주님의 방식을 따라가십시오. 

물의 상류(내가 주인이 되어)에 위치하여 물의 흐름을 제어하려 하지 말고, 

가장 낮은 곳인 바다(주님 방식)에 위치하면, 그게 사람을 대하는 리더쉽이고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천국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육의 리더쉽은... 바리새인 같은 냉정함이 자리 잡고 있지만, 

영의 리더쉽은.. 주님의 따뜻한 사랑이 가득하기에, 얼음 같은 사람도 녹이는 

엄청난 영적 능력이 담겨있습니다. 

이처럼, 내가 변화되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바뀝니다. 

세상이 실제로 바뀌어서 대하는 방식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육의 잣대에서 

주님의 잣대로 그 기준이 확고히 바뀌었기에 내 방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믿는 이들의 능력이자 리더쉽입니다.